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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수필가 May 11. 2024

"우리들의 천국을 보다"

나를 웃게 했던 그 특별했던 시간들의 불이 켜지다.

아주대학교 연극반 아몽

사회자의 “신랑 입장”이라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와 아들이 손을 잡고 무대 가운데로 나란히 입장을 한다. 신랑 아버지를 보며 나는 그의 대학 생활이 떠올랐다. 

신랑 아버지인 B군, 그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동생과 학교를 교대로 다녔다. 휴학계를 내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서로의 등록금을 마련했다. 그런 식으로 학교 생활을 마친 그는 휴학을  많이 했다. 거기다 군대 현역까지 마치며 힘겹게 졸업했다. 가난했던 이 학생은 대학에서 사치스럽게(?) 연극반에서 활동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모순된 서사이기도 하다. 안 그런가? 연극이 무슨 밥을 해결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연극을 하려면 무대와 조명이 갖추어져야 했다. 그런데 80년대에 학교 형편은 연극 무대가 강의실이나 다름없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환경을 갖추기 위해 연극반 반원들이 청계천 전자 상가에 가서 조명 재료를 구입하고 ‘디머기’라는 조명 컨트롤 시스템도 직접 만들었다. 디머기란 일종의 조명 전원 스위치였다. 디머기에 각 조명등을 연결해서 조명을 만들었다. 조명이 없는 야외 노천극장 등에 이 디머기를 제공하여 동아리 수입을 올려주기도 했다. 때로는 타 대학 연극반이 빌려도 갔다. 연극반의 부수입원 역할을 디머기가 톡톡히 했던 것이다. 그 역할의 중심에 오늘의 B군이 있었다. 그래서 조명하면 바로 그가 떠오른다. 

 

연극반에서 엠티를 간다 해도 B군은 돈이 없었고, 회비제로 맛난 것을 사 먹을 때도 늘 돈이 없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언제나 의기소침하지 않고 당당했다. 목소리는 컸고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이런 태도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지금까지도 궁금하다. 

B와 나는 아주 진한 연극 한 편을 삼 개월 정도 함께 했다. 연출과 기획자 사이였다. 연출 첫날, 첫 일성은 ‘주일날은 연습 없다’라는 말이었다. 연극 팸플릿에 연출의 변을 적은 제목도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시작했다. 대학생 시절에도 보기 드문 믿음을 갖고 있는 학생이었다. B 하면 떠오르는 두 번째 이미지가 바로 크리스천이었다.

또한 그는 내가 겪은 대학 연극반원들 중에서 가장 프로다운 연출가였다. 열정과 성실성 책임감 등에 모두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다. 얼마나 철저했는지 연극 주인공의 가냘픈 몸매를 만들기 위해 배역을 맡은 후배 여학생의 식단까지 관리할 정도였다. 

 

나는 오늘 그때 디머기를 만지며 스탭을 했던 B가 아들을 결혼시키는 자리에 와 있다. 2시간여 진행된 결혼식, 호텔 같은 분위기와 화려한 꽃들, 일반 결혼식보다 조금 더 호화로워 보이는 것 말고는 그리 차이가 없어 보이는 이 풍경 속에서 나는 왜 특별함이 느껴졌을까? 그런데 나만이 아니었나 보다. 이토록 격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을까 할 정도로 여느 결혼식보다 더 뜨거운 축하의 박수 소리와 지인들의 응원이 쏟아졌다. 나도 그랬다. 눈물이 났다.


그 시절을 함께 했던 나의 선배이자 가난한 대학생이 이제는 굴지의 사업가로 성장해 동종 업계에서는 우리나라를 넘어 아시아 최고의 대표가 된 모습을 보니 더욱더 만감이 교차한다. 식사가 끝나고 그 시절을 함께했던 나의 동기, 선후배와 차 한잔 나누는 자리는 나의 대학 시절과 그 특별했던 순간들, 그 행복을 공유하는 우리들의 시간이었다. 나는 B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굳건한 믿음과 당당함, 상대방을 호감 있게 대하는 평화로움은 그가 의지하는 하나님이 있어서일 것이라 분명 믿는다. 반면 나를 웃게 했고 건강하게 했던 우리들의 천국은 바로 그 시절과 사람들이었기에 지금 다시 마주친 이 자리에서 행복의 불이 켜지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B의 디머기는 오늘도 하느님과 함께 작동했다. 매사에 감사하고 실천적인 삶, 나는 그에게서 오늘도 그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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