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서사 05] 벌거벗은 겨울나무의 문장
벌거벗은 겨울나무의 문장
박순동
여름날의 무성했던 초록과 가을의 화려했던 작별 인사를 모두 바닥에 내려놓고 나서야, 나무는 비로소 제 몸의 진짜 곡선을 드러냅니다. 치장을 포기한 나무의 몸은 쓸쓸하다 못해 처절합니다. 하지만 저 앙상한 가지들은 허공을 할퀴는 것이 아니라, 갈 수 없는 하늘에 닿으려 애쓰는 간절한 손가락들입니다.
벌거벗는다는 것은 감출 것이 없다는 고백이며,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선언입니다. 살을 에이는 칼바람이 골수를 헤집고 지나가도 나무가 꼿꼿할 수 있는 이유는, 가장 소중한 생명의 핵심을 땅속 깊은 뿌리에 숨겨두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쓸쓸함도 이와 같아서, 겉으로는 말라가는 듯 보여도 안으로는 당신이라는 이름의 수액을 단단히 지키고 있습니다.
봄이 오기 전까지, 나는 이 쓸쓸함을 훈장처럼 달고 눈보라 속에 서 있을 것입니다.
26. 1. 17. 순동. 북한산 우이령길을 걸으며, 길을 따라 같이 걸어가는 겨울나무들이 비워냄으로써 오히려 자신을 지켜내는 겨울나무의 쓸쓸함을 지켜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