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서사 06] 낡은 목도리와 지나간 연인
낡은 목도리와 지나간 연인
박순동
서랍 깊숙한 곳, 빛바랜 목도리 하나를 꺼냅니다. 코를 대면 아직도 그해 겨울의 냄새가 납니다. 찬 바람을 핑계로 당신의 목에 둘러주었던 그 온기, 서로의 코끝이 빨개지도록 걷던 명동의 뒷골목, 그리고 우리를 축복하듯 내리던 진눈깨비들. 이제 당신은 내 곁에 없지만, 당신이 남긴 계절은 매년 어김없이 나를 찾아와 문을 두드립니다.
지나간 연인은 잊히는 것이 아니라, 계절의 틈새에 숨어 있다가 찬바람과 함께 불쑥 나타나는 손님 같습니다. 이제는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약속들이 눈 녹은 물처럼 마음 바닥을 적십니다. 당신을 사랑했던 나는 그 겨울에 두고 왔기에,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그리워하는 것인지 아니면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내 생의 가장 아름다운 겨울은 이미 당신과 함께 흘러갔고, 나는 그 파편들을 모아 시린 손을 녹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6.1.21. 순동. 추운 겨울 그 기억이 삶을 지탱하는 온기가 되어 따뜻해 짐에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