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25년도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학기 말은 항상 미뤄둔 진도 빼기, 성적 처리, 업무 마무리로 눈 코 뜰 새가 없다.
이맘 때 쯤이면 아이들도 연말 분위기에 한껏 들떠
학교 자체가 들썩들썩하다.
(들썩하다는 표현 만으론 모자라다. 우당탕쿵쾅? 쿠르쿠르쾅쾅?)
예전에는 크리스마스 이브 즈음엔
겨울방학을 하곤 했었는데
학사일정이 길어진 건지, 쉬는 날이 많아서인지
여름방학도 짧디 짧았는데, 방학을 너무 늦게 하는 건 기분 탓인가?
내가 속한 학교는 아직이지만, 요즘 대부분의 초등학교들은 1월 방학도 꽤 많은 편이라,
지칠 대로 지친 학기 말 마무리가 하루하루 버겁다.
그래도, 1학기 때와 마찬가지로 방학 전 3일 정도를 할애하여 우리 반 겨울 캠프를 계획한다.
그 동안 해보고 싶었던 활동을 투표로 선정하여 시간표를 구성하고, 제법 송년회 분위기도 나게
우리 반끼리 송년 맞이 작은 음악회나 발표회를 연다.
마지막 날엔 무조건 <한 해를 마무리하며>를 주제로 서클을 연다.
열정 가득했던 신규시절엔 자료실에서 진짜 양초와 모래상자를 준비해
캠프파이어 같은 촛불의식을 치르기도 했지만,
요즘엔 촛불 모양 휴대용 전구도 잘 나와 제법 촛불잔치의 느낌이 난다.
그렇다. 학창시절, 수학 여행가면 빠지지 않았던 .마지막 날 캠프화이어와 촛불의식!
여전히 아날로그 감성인 40대 교사는 잘파세대(Z+Alpha 세대)인 초등 아이들에게
감성어린 추억을 선물하고 싶다.
촛불 모양 전구를 들고 둥글게 모인 아이들,
어두운 조명 아래, 음악이 흐른다.
세상엔 우리들 보다 가지지 못한
어려운 친구들이 많습니다
지금도 힘들어하고 있을
그 친구들을 위해 이 노래를 부릅니다
힘내라 얘들아
힙합 비트 위에 얹어진 따스한 가사는
추운 겨울을 녹이는 따뜻한 가사로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었다.
지금 보니 말이 안 될 정도로
거짓말, 니가 필요해, 하늘색 풍선....
지오디의 팬이 아니더라도 국민 명곡들이 이렇게나 한 앨범에서 쏟아졌다니, 새삼 박진영이라는 프로듀서의 능력이 놀랍다.
왜 이렇게 사는게 힘들기만 한지
누가 인생이 아름답다고 말한건지
태어났을 때부터 삶이 내게 준 건 끝없이
이겨내야 했던 고난들 뿐인걸
그럴때마다 나는 거울 속에
나에게 물어봤지 무얼 잘못했지
도대체 내가 무얼 잘못했길래
내게만이래 달라질 것 같지 않아 내일 또 모레
인생이 지치고 힘들 때,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살고 있는데 나만 힘든 것 같고,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벌 받나 싶고, 희망이란 단어조차 꺼내기 힘들 때,
가사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 앞에 고개 숙이지마라 기죽지 마라
그리고 우릴 봐라
지치고 힘들 땐 내게 기대
언제나 네 곁에 서 있을게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너무 어두워 포기하고 절망할 때,
주저앉아 있지 마. 촛불하나 켠다고 뭐가 되겠어라고 말하지마. 촛불 하나는 또다른 촛불 둘, 셋, 넷... 그래서 어둠은 사라지게 될 거야.
가사는 공동체의 연대를 통해 한 개인이 어떻게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 노래를 부르는 우리가 너의 힘이 되어 준다고 약속한다.
놀랍도록 따뜻하고 뭉클하다.
하지만 거기서 난 포기하지 않았어
꿈을 잃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 노력하다 보니 결국 여기까지 왔고
이제 너희들에게 말해 주고 싶어 너희도 할 수 있어
어둠의 터널을 지나온 사람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옆에서 해주는 따뜻한 위로의 말.
그래서 더욱 힘이 있는 듯하다.
아이들이 후렴구에서 손을 머리 위로 들어
박수를 친다. 누군가 먼저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게 분위기를 희망차게 유도하는 아이들이 있다.
30개의 초가 반짝이며 어지럽게 흔들린다.
명곡은 세월이 지나 40이라는 세대 차이에도 불구하고
심금을 울리고, 가사 그대로
마주보는 서로를 위로해준다.
미리 지난 주 글쓰기 과제로 내준 주제.
반드시 아래의 내용이 꼭 들어가도록 안내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느낀 소감,
자신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다짐,
선생님,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
그냥 한 해를 마무리하며 라는 제목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선생님, 친구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기 쉽다.
"자, 선생님부터 시작할게요. 우리 꿈사랑 친구들을 처음 만났을 때,
언제 1년이 가나...솔직히 좀 버거운 날도 있었고 힘들기도 했었는데...
1년이 후딱 지나갔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반을 만들자고 했었는데, 모두 노력해줘서 고맙고,
우리 반을 사랑이 넘치는 반으로 만들어줘서 고마워.
한 해를 돌아보니, 선생님이 너무 직설적으로 무안을 준 친구도 있는 것 같고,
좀더 참았어야 했는데 감정을 터트린 적도 있는 것 같아서 미안하네.
선생님한테 이름 많이 불린 친구들에겐 특히 미안하고.
그래도, 선생님의 애정어린 마음이 담겨 있다는 거 알아줬으면 좋겠어.
우리 꿈사랑 친구들,
많이 사랑하고 올 한해를 잊지 못할 거 같아."
말하는 도중 살짝 울컥해져서 멈추는 순간,
아이들 표정을 보니 이미 눈이 벌개진 아이들이 몇몇이다.
보통은 여자 아이들이 훌쩍거리기 시작하고,
돌아가며 발표를 시작하면
감성이 풍부하고 눈물이 많은 아이들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한다.
이럴 때 꼭 장난꾸러기 남자아이들 몇몇은 옆친구 옆구리를 꾹꾹 찌르며
'쟤 봐라, 운다'고 알려주는가 하면,
'00이 왜 울어요?'하고 실실 쪼개어 무르익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 싶게 지들이 발표할 타이밍에서
가장 장난꾸러기로 속을 썩인 아이들일수록 더 많이 훌쩍거리며 우는 걸 본다.
"제가 장난이 심해도 선생님과 친구들이 저를 받아주어서 감사했습니다"
"선생님, 저를 애정어린 눈으로 봐주시고, 잘못을 고쳐주셔서 고맙습니다."
"친구들아, 내가 너희들 활동을 방해해서 미안해.
그리고 나를 이해해줘서 고마워. 남은 기간만큼은 잘 지내자."
특히 심한 장난으로 선생님과 친구들을 힘들게 했던 친구가 하는
마음으로 고백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모두가 다함께 울음바다가 된다.
나를 시작으로 두 개의 원을 만들어
그 동안 진심을 전하지 못했던 친구 한 명, 한 명과 악수하며 고마움과 미안함, 덕담 등을 표현하는 시간이다.
나는 주로 여자 아이들과는 포옹을, 남자 아이들과는 악수를 하며 그 동안 못했던 말들을 해주곤 한다.
"선생님이 00 덕분에 1년 버틸 수 있었어. 네가 있어서 우리 반이 더 빛났던 것 같아."
"00아, 미안해. 선생님이 상처주는 말 했다면 사과할게."
"00이는 우리 반 해피 바이러스야. 너로 인해 행복했어."
조금은 말하기 쑥스러운 표현도
방탄소년단의 <소우주>곡을 틀면 자연스럽게 표현하게 된다.
이 노래는 전주부터가 별가루를 뿌린 듯 반짝인다.
끝나는 분위기, 마무리 하는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BTS가 콘서트에서 팬송으로 마지막 부분에 부르는 노래여서 그런가?
https://youtu.be/Iq6RdCTLBd8?si=-YCMjyZ7MUQpqMeE
반짝이는 별빛들 깜빡이는 불 켜진 건물
우린 빛나고 있네 각자의 방 각자의 별에서
어떤 빛은 야망 어떤 빛은 방황
사람들의 불빛들 모두 소중한 하나
어두운 밤 (외로워 마) 별처럼 다 (우린 빛나)
사라지지 마 큰 존재니까
Let us shine
각자의 방에서 빛나는 별로 우린 모두 소중한 하나야.
어두운 밤에도 외로워하지마, 별처럼 우린 다 빛날거야.
<촛불하나>와 가사가 다르면서도 같다.
어두움을 밝히는 건 하나 하나의 촛불이 사라지지 않고 모였을 때, 도시의 불빛, 사람이란 불빛이 빛나기에 도시가 아름답다는 것.
어쩜 이 밤의 표정이 이토록 또 아름다운 건
저 어둠도 달빛도 아닌 우리 때문일 거야
You got me 난 너를 보며 꿈을 꿔
I got you 칠흑 같던 밤들 속
서로가 본 서로의 빛
같은 말을 하고 있었던 거야 우린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빛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빛
밤이 깊을수록 더 빛나는 별빛
서로를 보며 위로받고 숨을 쉬고,
각자에게 있는 빛을 알아봐주고, 존중해줄 때 모두가 빛난다는 것
공동체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통해
상대의 눈이 있기에 알아봐주고, 빛이 나게 도울 수 있다는 것
<소우주>의 가사에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이들에게 사과할 기회를,
고마웠지만 표현하지 못했던 친구에게 감사할 기회를 주는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한 해의 묵은 감정을 정리하고, 교감하는 시간.
묵은 감정의 찌꺼기들을 잘 매듭지을 때,
누구를 만나든 좀더 성숙하고 발전된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