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산 Oct 29. 2022

기억의 시작

엄마의 착한 두꺼비

1) 엄마의 착한 두꺼비


나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5살 정도부터 시작된다.

시골 초가집 주위로 자그마한 나무들이 이웃집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집 뒤꼍에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백합과 여러 가지 꽃들이 심어져 있다. 어머니는 늘 새벽에 일어나 하얀 보자기를 머리에 동여매고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식구들이 모두 방에 모여 식사를 할 때도, 부엌에서 쟁반 위에 한두 가지 반찬을 올려놓고 혼자 밥을 드실 때가 많았다.

엄마의 부엌문을 열면 심술 사나운 팥쥐에게 구박받는 착한 콩쥐의 이야기가 맴돈다. 구멍 난 물독을 막고 있던 두꺼비가 밤마다 착한 콩쥐를 위해 온갖 궂은일을 다 해 주었다고 했다.

‘진짜 두꺼비가 있을까?’

우리 집 물독 밑에도 착한 두꺼비가 있으면 좋겠다. 엄마에게 맛난 반찬을 가져다주면 좋겠다. 엄마 일을 대신해 주면 더 좋겠다. 엄마는 콩쥐처럼 밤새도록 온갖 힘든 일을 다 했다. 그런 착한 엄마를 두꺼비만 모르고 있나 보다. 물독을 밀어 보지만 꿈적도 하지 않는다. 부지깽이로 쑤셔보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물독 밑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두꺼비를 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를 따라 부엌에 딸린 광으로 들어섰는데, 신기하게도 전에 보지 못하던 묵직한 고깃덩어리가 매달려 있었다.

“어? 저거 누가 갔다 놨어요?”

“글쎄다. 착한 도깨비가 그랬나...”

할아버지의 손에는 얇은 칼이 들려 있다. 껍질을 살짝 베어 내니 검붉은 살이 보인다. 한 점을 떼어내 맛을 보시더니 맛있다 하시며 내게도 한 점 주셨다.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지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두꺼비가?”

부리나케 부엌으로 뛰쳐나갔다. 역시, 물독 옆에 물 자국이 보였다. 구멍을 막고 있던 두께비가 밤에 몰래 고깃덩어리를 걸어둔 게 틀림없을 거다. 그날 밤 이불속에서 동생에게 콩쥐의 착한 두꺼비 얘기를 해줬다.

“착한 엄마를 위해 밤에 몰래 고기를 가져다 두었어. 콩쥐 두꺼비는 이제 엄마의 두꺼비야.”

그다음 날부터 동생은 가끔 늦은 밤에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지깽이를 들고 여기저기 두드리고 있었다. 어느 날 동생이 신이 나서 소리쳤다.

“형아! 일리와 봐. 콩쥐가 왔었나 봐!”

광에는 가오리연 모양의 물고기가 매달려 있었다. 우리 집 부엌에는 엄마의 착한 두꺼비가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어린 내게 셀 수도 없이 많은 동화를 들려주셨다. 그중에서도 착한 두꺼비 이야기를 제일 많이 해 주셨는데, 할머니께 혼났을 때 그리고 아버지한테 핀잔을 들으셨을 때 주로 그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마다 나는 어머니 품에 안겨 잠들곤 했다.


2) 할아버지의 영악한 거위


집 앞 개울가에는 무서운 거위가 살고 있다.

어느 장날에 할아버지가 사 오셨는데, 개울가에 풀어놓으면 혼자서 송사리도 미꾸라지도 잡아먹고, 집도 잘 지키는 영악한 동물이라고 뿌듯해하셨다. 새끼를 낳으면 잘 키워서 시장에 내다 팔아 호미도 사고 자전거도 사고 내 운동화도 사주신다고 하셨다. 새끼가 또 새끼를 낳으면 우리 집은 금방이라도 부자가 될 것 같았다.

오늘은 거위와 친해봐야지!

골방에 있던 감자 한 개를 들고 살살 다가가 툭하고 던져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날개를 부르르 쳐들더니 사납게 달려들었다.

“엄마~”

고무신이 날아가도록 도망쳐 보지만 할머니가 계신 부엌까지는 너무 멀었다. 할머니가 비명을 듣고 황급히 뛰어나오셨다.

“아이고 우리 손자 죽네!”

그 사이에 엉덩이를 여러 번 깨물렸다. 엉덩이가 찢긴 듯 아파왔다. 여기저기 부르튼 엉덩이를 보시더니 할머니가 버럭 소리를 지르셨다.

“저놈의 거위는 왜 사온 겨?”

눈치를 보시던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사나워서, 거위도 닭도 모두 다 사납게 활개 치고 다닌다고 구시렁거리셨다. 그날 밤, 흐릿한 등잔불이 켜진 안방에는, 생일날처럼 여러 개의 상이 펼쳐져 있었다. 옆에 있는 양은솥에는 여태껏 보지 못한 엄청 큰 닭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어찌나 큰지 다리가 솥뚜껑을 밀고 나왔다. 동생 국그릇에도 큰 다리 하나가 담겨 있다. 어머니가 환하게 웃고 계셨다.


다음 날 동생이랑 나무 막대를 하나씩 들고, 거위를 혼내주려 개울가로 찾아 나섰다. 다리 밑 여기저기 풀숲을 헤치며 두리번거려도 거위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숨은 걸까? 그다음 날엔 멀리 아래 마을 논에도 가 봤지만 거위를 찾을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할아버지가 개울가에 새끼 거위 두 마리가 돌아왔다고 귀띔해 주셨다. 엄마 거위가 내년에 온다고 새끼 두 마리를 먼저 보내 줬을 거라 하셨다.

허겁지겁 개울가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오리 두 마리가 놀고 있었다.


할아버지 말씀대로 참 영악한 거위다.

지금은 우리 집을 지켜주지 못하겠지만 어딘가에서 송사리도 미꾸라지도 잡아먹고, 내년에는 새끼를 열 마리나 낳아서 돌아올 거다. 어쩌면 백 마리를 데리고 올지도 모른다.


3) 할아버지와 전설


뜨거운 여름날엔 정자나무 그늘에 동네 할아버지 세 분이 모이신다.

쟁반 위에는 막걸리가 든 누런 주전자가 비스듬히 놓여 있다. 아삭한 초록 오이와 혀가 얼얼할 것 같은 고추도 보인다. 거나하게 취기가 오르신 할아버지가 오늘도 신비한 이야기를 꺼내신다.

“아주 예전에 말이여, 수염이 긴 도인이 나타나 이르기를 ‘증조할아버지의 3대손에 유명한 장군감이 한 명 태어날 겁니다. 허나, 그 아이가 장성할 때 까지는 험난한 세월을 마주하게 될 겁니다.’라고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단다.”

“그랬지요. 암만”

옆에 계신 다른 할아버지가 맞장구를 치신다.

“네가 바로 그 사람일지 몰라.”

매번 듣는 똑같은 이야기지만 늘 신기했다. 이야기 속에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이 있었고 보릿고개가 있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나의 험난한 수난 시대가 있었다. 내가 3대손이니 그 도인의 말이 정말 딱 맞아떨어진다.


우리 큰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던 해에 그 전설을 들려주었다.

“네가 바로 그 사람일지 몰라.”

뭔가 느낀 게 있는지 머리를 끄덕였다. 아마도 나보다 더 큰 꿈을 꾸게 될 거다. 그 인물이 자신이라 믿고 더 열심히 공부하겠지. 그러면 분명 큰 인물이 될 수 있을 거다.

몇 년이 지난 후 작은아이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런데 아빠, 형이 있잖아”

작은아이의 한마디가 내 머릿속을 뒤 흔들었다.


태어날 때부터 나는 할아버지의 장손으로 살았다. 점잖아야 되고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중압감 속에 살아왔다. 동생을 시골집에 남겨두고 엄마와 둘이 서울로 전학을 갔고, 꼴찌를 하면서도 판검사를 꿈꿔야 했다. 기가 죽어 말 수가 줄어드는 나를 보고 아버지는 점잖고 과묵하다고 흐뭇해하셨다. 불만이 있을 때도 아버지께는 말도 한마디 못 하고 애꿎은 어머니만 탓하고 살았다. 그런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또다시 그런 시련을 물려주려 하고 있었다. 그 후부터는 더 이상 그 신비한 전설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