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빼다 박은 아이 따위 꿈꾸지 않기. 소식에 놀라지 않기. 어쨌든 거룩해지지 않기. 상대의 문장 속에서 죽지 않기.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는 연습을 하자. 언제 커피 한잔 하자는 말처럼 쉽고 편하게, 그리고 불타오르지 않기.
혹 시간이 맞거든 연차를 내고
시골 성당에 가서 커다란 나무 밑에 앉는 거야. 촛불도 켜고
명란파스타를 먹고 헤어지는 거지. 그날 이후는 궁금해하지 않기로.
돌진하는 건 재미없는 게임이야. 잘 생각해. 너는 중독되면 안 돼.
중독되면
누가 더 오래살까? 이런 거 걱정해야 하잖아.
뻔해,
우리보다 융자받은 집이 더 오래 남을 텐데.
가끔 기도는 할게. 그대의 슬픈 내력이 그대의 생을 엄습하지 않기를, 나보다 그대가 덜 불운하기를, 그대 기록 속에 내가 없기를.
그러니까 다시는 가슴 덜컹하지 말기.
이별의 종류는 너무나 많으니까. 또 생길 거니까.
너무 많은 길을 가리키고 서 있는 표지판과
너무 많은 방향으로 날아오르는 새들과
너무 많은 바다로 가는 배들과
너무 많은 돌멩이들
사랑해. 그렇지만
불타는 자동차에서는 내리기.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허연, 시집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문학과지성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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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고 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둘 다 말하지 않아서 모른다. 다만, 2025년 9월 26일에 처음으로 손을 잡고 팔짱을 낀 것은 기억한다. 2022년 1월에 일로 알게 된 사이. 몇 년을 일로만 엮여 있었다. 그러다 2024년 6월 즈음부터 당신이 가끔 나와 내 아이들 안부를 묻고, 내게 필요할 법한 것을 챙겨주고,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분다고, 눈이 오면 눈이 온다고, 그러니 조심하라고 해주었다. 그리고 혹시 괜찮으면 같이 점심을 먹자고, 근처에 있으니 차 한잔 하자고, 날이 좋으니 잠깐 걷자고,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었으니 구경을 가자고... 잊을만 하면 그렇게 연락을 해왔다. 그때마다 나는 외출을 달고, 조퇴를 달고, 두세번인가는 연차를 내고 그를 만났다. 짧으면 20분, 길어봐야 8시간짜리, 대낮에만 가능한 만남이었다. 누구도 고백하지 않은 어정쩡한 관계의 뜸한 데이트를 무려 1년 넘게 한 후에야, 이것을 '연애'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주에는 그와 처음으로 섹스를 했다. 나는 무려 8년만에 하는 관계여서 마치 첫 경험을 한 여자처럼 며칠 밑이 아팠다. 마흔 살이 넘으면 연애도 별일 아닐 줄 알았는데 의연해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연애와 관련된 모든 세포가 리셋된 듯, 그와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끌어안고 키스를 하고 섹스를 하고. 단계마다 몸이 떨리고 심장이 터질듯 요동쳤다. 다 사라지고 없다고 생각했던, 사랑받고 사랑하고픈 욕구가 그로 인해 새로이 발견되고 채워지고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는만큼 한편으론 슬퍼진다.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두 딸이 있듯, 그에겐 두 아들이 있다. 우리는 직장과 육아와 가사 사이에서,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과업과 미래의 불안 사이에서 꿈꾸듯 연애한다. 꿈꾸듯 하는 연애는 더없이 즐겁지만, 꿈이란 걸 알기에 그만큼 슬프다. 가끔 만나 이렇게 즐겁기만 하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는 중이지만, 차가워지고픈 머리와는 다르게 마음은 자꾸 뜨거워진다. 애정이 깊어질수록 욕심이 커진다. 자꾸만 그가 내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서로에게 현실이 되는 순간, 서로의 생활이 얽히기 시작하는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나는 안다. 우리에겐 이제 우리가 아닌 너무 많은 것들이 매달려 있다. 나는 우리 아닌 다른 모든 것, 그리고 그가 아닌 나 자신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결국 끝이 좋을 리가 없다. 이런 생각으로 지내다보면 자연스레 이별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부디 모든 것이 서서히 식어 이 연애에도 자연스런 끝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가장 사랑하는 때에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슬픈 일이구나, 새삼 깨달으면서.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줄은 모르고, 이런 생각을 하는 줄은 모르고, 그는 쿨쿨 자고 있겠지. 그가 보고싶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의 자는 모습을 보고 싶다. 딱하고 고된 하루를 품듯 잠든 그를 꼭 안아주고 싶다. 항상 나를 예뻐해주는 그. 이젠 누가봐도 예쁘지 않은 나를 구석구석 예쁘다 해주는 그. 어디 있다가 이제야 나타났냐고 틈만 나면 노래하는 그. 여전히 내가 그를 직책으로 불러도, 한번도 서운한 내색없이 내게는 '자기야'라고 불러주는 그. 하루에도 몇 번씩 괜찮냐고 묻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그. 집안일도 바깥일도 힘든 내색없이 해내는 그. 무엇보다, 아들들에게 누구보다 다정한 아빠인 그. 결코 사사로운 감정과 욕심으로 아이들에게 상처주지 않을 그. 선하고 고마운 당신.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는 너무 뜨거워지지 않으려고 노력해. 많이 사랑하지만 내려야겠다고 생각해. 사랑하는 당신. 그래서 당신은 결국 나의 생활이 아닌, 노래가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