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는 여자는 아니지만
이선영/ 시 쓰는 여자
시를 쓰기 전에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여자
시를 쓰기 전에
이불을 깔았다 개고 걸레질을 하는 여자
시를 쓰기 전에
밥을 안치는 여자
시를 쓰기 전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 여자
상한 음식을 손으로 쓸어 담으면서
음식이 상하는 만큼 나날이 상해 간다고 느끼는 여자
시를 쓰기 전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여자
아이 실내화를 빨고
숙제와 준비물을 챙겨야 하는 여자
시를 쓰기 전에
돈을 벌고 돈을 내야 하는 여자
시를 쓰기 전에
시를 읽어야 하는 여자
읽으면서 시란 정말 알 수 없다고 푸념하는 여자
읽으면서 시를 써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여자
읽으면서 써 온 반생과 써야 하는 여생을 후회하곤 하는 여자
푹푹 한숨 쪄 내는 여자 퉁퉁 불어 투덜거리는 여자
이윽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여자
하루가 저물면
시는 쓰지 않고
식탁 의자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여자
어디다 시를 두고 온 사람 모양
골똘히 아래만 보고 있는 여자
머릿속은 가득하지만 시만 들어있지 않은 여자
뒤숭숭한 세간들 사이로 시만 실뱀처럼 빠져나간 여자
차 있으나 늘 텅 비어있는 여자
이선영, <시 쓰는 여자>, 시집『60조각의 비가』, 민음사, 2019
지난 주에는 일이 많이 바빴다. 챙겨야 할 아이들이 있어 야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시일이 촉박한 업무를 다 끝내지 못하면 일거리를 싸들고 퇴근한다.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봐주고 재우고, 집안일도 대충 마무리 하고 나면 10시 반이나 11시. 그때부터 다시 일을 시작한다. 아이를 낳고 복직하면서부터는 몇년째 이런 식으로 바쁜 시기를 넘겼다. 아이가 있는 것도 내 사정, 남편이 없는 것도 내 사정, 지극히 개인적인 내 사정들 때문에 책임감없이 굴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주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의 아니게 신세를 지게 되는 일들이 꼭 생기게 되므로, 가능하면 어떻게든 내 업무는 내가 하려고 한다. 그렇게 사흘인가 나흘을 보내고, 금요일 오후엔 반차를 쓰고 아이들을 하원시켜 2박3일 서울 나들이를 다녀왔다. 아이들은 오래 전부터 해외여행과 비행기 타령인데 그렇게까지 할 만한 심적, 물적, 시간적 여유는 없어서 대신 서울을 다녀왔다. 즐겁고도 고단한 여행이었다. 기차나 숙소에서 보려고 책을 한 권 가져갔는데 펼쳐보지도 못했고, 브런치 글도 한 편 못 썼다. (그렇다. 나는 지금 그에 대한 변명을 하는 중이다.)
나는 시 쓰는 여자는 아니지만 이선영의 시에 나오는, 시를 쓴다는 저 여자의 마음을 백만번 천만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살림도 육아도 밥벌이도 온전히 내 몫. 내 선택이자 내 운명. 엄마이자 주부이자 직장인으로 해야 할 일들이 차고 넘친다. 미룰 수도 안할 수도 없는 일들, 결코 줄어들지도 않는 일들이 매일 매시간 비슷하게 반복된다. 매일 청소기를 돌려도 매일 먼지가 쌓이는 것처럼, 매일 밥을 해도 또 해야 하는 것처럼, 아이들이 잠들고 일어나는 것처럼, 돈을 벌고 쓰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처럼, 모든 일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 속을 떠밀려 다니다 보면 고작 이런 글 하나 쓰는 것도, 읽고 싶은 책 몇 장 읽는 것도 쉽지가 않다. '내'가 보이지 않는 나의 하루 속에서 나는 나날이 상해간다. 날짜 지난 우유곽처럼 점점 부풀어 오른다. 조만간 터질지도 모른다. 악취를 풍기며 주변까지 망쳐버릴지도.
가장 슬픈 건 그거다. 할 일이 많고 시간이 없고 몸이 힘들다는 사실보다 슬픈 것, 그건. 막상 하루가 저물어도 시는 쓰지 못하고 식탁 의자에 앉아있기만 하는 여자, 시를 잃어버린 여자, 넘칠만큼 가득 차 있지만 텅 비어버린 여자. 그런 여자의 뒷모습이다.
시 쓰는 여자도 아니면서 나는 그 여자가 나인 양 바라본다. 시가 뭔지도 모르면서 시 쓰는 그 여자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한다. 그녀와 내가 웅크려 앉은 몸 주위로, 외로움이 먼지처럼 굴러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