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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Oct 10. 2023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도쿄 워홀일기 14 (2023/09/16)

오늘은 오래간만에 늦게까지 늦잠을 잤다. 그리곤 느지막이 일어나 그 상태로 한참 핸드폰을 하다 오늘 예매해 둔 지브리의 새로운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러가기 위해 집밖으로 나왔다. 시부야에 있는 도호 시네마에서 예약을 했던지라 지하철을 타고는 곧바로 시부야로 향했다. 나온 김에 밥도 영화관 근처에서 해결하고 싶어 아무것도 먹고 나오질 않았더니 배가 너무 고파 뭘 먹어도 다 맛있게 느껴질 것만 같았다. 역시 도착한 시부야는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극 I인 나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곧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습성이 있어 도착하자마자 급격하게 피로감이 몰려오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기분을 느꼈지만, 일단 배가 너무나도 고파 빠르게 주변을 스캔하며 괜찮아 보이는 음식점을 찾았다. 그러다 나폴리탄을 파는 가게를 발견하고는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심야식당’이라는 일본 드라마에서도 종종 나왔던 나폴리탄을 보며 ‘무슨 맛일까’ 하고 매번 궁금해했었는데, 마침 나폴리탄 가게를 발견하여 난 고민할 것도 없이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화면에 떠 있는 수많은 종류의 나폴리탄을 보며 ‘어떤 것을 먹을까’ 하고 고민을 하던 중 오늘은 왠지 치즈가 당겨 치즈 나폴리탄으로 주문을 했다. 역시 혼밥시설이 잘 되어 있는 나라답게 1인 좌석이 많았다. 나 또한 그중 한자리를 골라 앉고서는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구경을 했다. 그러자 요리가 금방 나왔다. 맛있어 보이는 비주얼을 보면서 자그맣게 ”いただきます(이타다키마스)“를 속삭이며 포크를 들고서는 돌돌 말아 면을 한 입에 넣는데, 내가 입에 넣자마자 강렬하게 처음 들었던 생각은 바로 ‘너무 맛있다!‘ 였다. 내가 간 곳이 맛집이었던 것인지 나폴리탄의 맛이 원래 이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너무나도 맛있었다. 모양은 스파게티 같은 것이, 그렇다고 맛은 또 스파게티 하고 다른 것이,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맛이지만 굉장히 맛있었다. 그래서 허겁지겁 나폴리탄을 먹으며 배를 채웠다.


밥을 다 먹고 밖에 나와서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처음 제대로 와보는 신주쿠를 이곳 저것 구경했다. 그러다 영화 시간이 가까워져 곧장 영화관으로 향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키오스크로 미리 예매해 둔 티켓을 뽑고 기다리다 드디어 15:50분쯤에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들어가 보는 외국의, 일본의 영화관에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두리번거리며 내가 예매한 F14 좌석을 찾아 앉고서는 주변을 둘러보는데, 좌석은 사람들로 거의 꽉 차 있었다. 이미 나온 지 꽤 된 영화라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을 기대하고 온 것이었는데, 그런 나의 기대가 무색하게도 많은 사람들로 영화관은 북적북적거렸다. 오랜만에 나온 지브리의 신작이라서 그런지 그 열기가 오랫동안 이어지는 것 같았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처럼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광고를 했다. 일본어로만 나오는 그 광고들을 보고 있자 왠지 기분이 묘했다. 그러다 드디어 그 지브리만의 특유의 오프닝인 파란 토토로 장면이 나오며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자막 없이 영화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만약 알아듣지 못한다면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다행히 영화의 70-80%는 이해할 수 있어 내용의 흐름을 이해하는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래도 종종 모르는, 알아듣지 못하는 문장들과 단어들이 나올때면 너무나 궁금하고 아쉬웠다. 그러면서 과연 내가 여기서 1년을 산다면 돌아갈 즈음에서는 이 영화를 다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일까 하는 그런 의문도 들었다. 영화는 2시간 반 동안 상영이 되었고, 노래를 끝으로 영화가 끝이 났다. 일본은 영화의 노래가, 그러니까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에 앉아있어야만 하기 때문에(그것이 매너이기 때문에) 영화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앉아서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지켜봤다. 노래까지 드디어 다 끝이 나고서야 불이 켜졌는데, 불이 켜지자마자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입을 열어 영화에 대한 소감을 같이 온 다른 사람들과 나누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 그 순간만큼은 이 따끈따끈한 소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그래도 그렇게나 보고 싶던 영화를 봐서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영화는 시공간의 이동이라는 내용도 있어서 그런지 보면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는 영화도 떠올랐다. 그러면서 부분적으로 다른 하야오 감독의 여러 작품들도 떠올랐다. 역시 지브리만의 특유의 그림체도 볼 수 있어 너무나 좋았고, 하야오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느껴져서 좋았다.


그런데, 이게 정말 하야오 감독의 마지막 영화라는 생각을 하니, 앞으로 다시는 하야오 감독의 새 영화를 못 본다는 생각을 하니 아쉬우면서도 조금 슬퍼졌다. 이제 이 영화를 끝으로 나온 영화들만 돌려봐야 한다는 것이 정말로 실감이 나는 기분이었다. 부디 하야오 감독이 은퇴번복을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아쉬움을 간직한 채 영화관에서 나와 역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가는 길에 우연히 서점을 발견해 들어가서 구경을 하는데 , 거기서 우리나라 책이 일본어로 번역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너무나 신기하면서도 반가웠다. 내가 읽은 책들이 일본어로 쓰여 있는 그런 처음 보는 풍경을 보니 생소하면서도 너무나 신기했다. 그러면서 ‘일본어 실력이 늘어 언젠간 일본어 책도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한참을 기웃거리며 서점 구경을 하다 나와서는 지하철을 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영화의 여운을 느끼고 싶어 영화에 나왔던 노래들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오니 어느덧 시간은 9시가 되어있었다. 재밌게 보낸 하루여서 그런지 시간이 금방 지나가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오늘 하루는 그렇게나 가보고 싶었던, 보고 싶었던 일본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볼 수 있어 너무나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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