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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Nov 25. 2023

방황

주절거림

나는 ‘방황’이라는 단어가 좋다, 아니 좋아졌다. 어릴 적에는 이 단어가 왠지 모르게 싫었는데, 지금은 이상하게 이 단어가 좋다. 사전에서 찾아본 ‘방황’은 ‘분명한 방향이나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함, 이리저리 헤매어 돌아다니는 상태’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 의미를 보자 나는 언제나 나의 인생에서 방황 중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순간도 방황을 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의미를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가자 더욱 명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항상 어렴풋하게만 느껴왔던 그 감각이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항상 방황을 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던 과거의 나와 그렇게 기억하려고 한 현재의 내가 드디어 연결된 느낌이었다. 그것에 결국 나는 입으로 숨을 쉬듯 “아.. 나는 방황 중이었구나” 하고 소리를 내어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항상 어쩌면 금기시된 말처럼 속으로만 삼키던 이 말을 내뱉자 이상하게 이 단어가 포근하고 따뜻하게만 느껴졌다. 무언가 이해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외면하고 있던 ‘방황’을 마주하자 드디어 그동안 복잡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나는 알면서도 계속해서 그 사실(방황)을 부정해 왔던 것 같다. 그것을 마주 보기가 두렵고 사실을 직시하는 순간 마주 보게 되는 현실이 무서워 항상 피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방황’을 마주 보자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그렇게 두렵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좀 더 나를 이해하는, 이해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 떠도는 시간들이 어쩌면 값지게 느껴졌다. 이 방황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조금의 기대감도 들었던 것 같다. 더 나아가서는 방황의 시간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찾아가는 이 시기가 고통스럽지만 고통스럽지 않게 느껴졌다. 방황 끝에 나를 찾는다면 기꺼이 이 방황을 견디며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방황’이라는 단어가 싫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깎고 고통을 주고 상처를 입히고 후회를 하며 이 방황을 견뎌서 조금 더 나은 나의 미래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 방황의 끝이 궁금해졌다. 이 방황 끝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지. 나의 방황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그 방황의 끝을 홀로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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