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itary Specification
인류가 만물의 영장인 이유를 묻는다면 지난날을 되돌아볼 줄 아는 성정이라 답할 것이다. 옛 것을 향한 헌사는 풍부한 문화를 일구는 주역인데, 이번 피프티패덤즈 신제품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프랑스어로 존중을 뜻하는 오마주hommage를 완벽히 구현해낸 시계가 아닐까 싶다.
1953년 세상에 나와 올해로 70주년을 맞은 최초의 다이버 워치 ‘피프티패덤즈FiftyFathoms’.
패덤fathom은 수심을 측정하는 단위로 약1.83m다. 물속에서 작동하는 시계에 대한 기준이 정립되지 않았을 때 고안되었다는 점에서 피프티패덤즈가 풍기는 역사적 의의는 상당히 깊다. 이 위인의 일흔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블랑팡이 내놓은 세 번째 한정판 시계가 사진 속 ‘피프티패덤즈 70주년 Act 3’다.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빈티지 시계인가 싶을 정도로 엔틱한 외모와 오마주 요소인 6시 방향의 원형 로고다.
새로운 피프티패덤즈는 1950년대 블랑팡에서 제작한 ‘밀스펙MIL-SPEC 피프티패덤즈’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밀스펙 워치는 미군에서 진행한 내구 테스트에 합격한 유일한 시계. 당시 UDT와 네이비 실 대원들에게 공급되어 군용품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밀스펙Military-Specification은 미 국방부의 군 표준 규격을 충족하는 제품으로 군사 작전에 활용할 수 있을 정도의 내구성을 갖춘 장비를 뜻한다. 둥근 투톤 로고는 수밀성 표시기Watertightness Indicator이자 군납품이라는 인장印章. 침수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기능으로 시계 내부로 수분이 유입되면 반원 형태인 흰 부분이 붉은색으로 변한다. 1950년대 밀스펙 피프티패덤즈에 처음 탑재되었는데, 70년이 지난 오늘날의 피프티패덤즈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수분 표시기는 이젠 기능보단 군에 납품했다는 역사를 향한 블랑팡의 자신감 넘치는 오마주에 가깝다.
블랑팡은 바다에 헌신하는 의지를 적극 후원하는 이니셔티브인 블랑팡 오션 커미트먼트(BOC)를 운영하는데, 수거한 어망을 재활용해 만든 스트랩은 바다를 바라보는 그들의 정신을 잘 나타낸다. 바다와 블랑팡, 해양 환경 보호와 블랑팡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궁금한 게 항상 많은 인류는 바닷속에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수중 사진 촬영을 위해선 다이버 워치의 개발이 필수였다. 이는 자연스레 블랑팡이 심해 세계와 가까워지는 결과를 낳았고, 바다를 향한 BOC의 열정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바다를 보호하는 활동과 시계를 착용하는 행위는 유사한데, 당장의 삶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 눈앞 현실과 동떨어진 무언가에 깊은 관심을 쏟는 데엔 상당한 여유가 필요하다. 그게 시계든 환경 보호든 말이다. 그러나 직시한 터전 너머로 던져온 물음표를 바탕으로 느낌표를 찾아내는 건 우리가 살아온 방식. BOC와 새로운 피프티패덤즈는 수많은 물음표 중 하나일 테니 가치 판단이나 쓸모를 논하는 건 잠시 접어두고, 묵묵히 박수를 보내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