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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환 Oct 22. 2023

두 친구

가치를 공유할 정도로 가까운 친구가 있다는 건 축복 받은 일이다. 스위스 시계 제조사 태그호이어TAG Heuer와 독일 자동차 회사 포르쉐Porsche는 막역한 사이를 자랑한다. 시계와 자동차가 무슨 친구냐는 단세포 마인드는 내려두길. 조금만 살펴보면 두 회사의 교집합이 상당히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교한 기계공학의 결정結晶이라는 피상적인 공통분모 뒤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까레라carrera’라는 이름. 스페인어로 ‘경주’를 뜻하는데, 태그호이어의 컬렉션이자 포르쉐 911의 트림trim이다. 까레라의 우렁찬 엔진과 까레라의 정교한 무브먼트가 전달하는 동력엔 꿈과 열정이 깃든 역사가 묻어 있다.

 

 

20세기 중엽 멕시코 전역을 누비는 악명 높은 레이스 ‘까레라 파나메리카나Carrera Pan Americana’. 잭 호이어는 2천 마일 이상을 달리는 이 강렬한 레이스로부터 영감을 받아 손목에 착용할 수 있는 크로노그래프(경과 시간 측정계)를 고안해 1963년 출시했는데, 이 시계의 이름이 까레라.

 

까레라 파나메리카나를 휩쓴 건 ‘포르쉐 356’. 엔진의 실린더를 지면과 수평으로 배치하는 방식을 택했다. 무게 중심이 낮은 수평대향 4 기통 엔진을 바탕으로 포르쉐는 높은 주행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레이스에서 석권할 수 있었다고. 자동차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356. 훗날 포르쉐 356은 그 유명한 ‘911’로 이어지게 된다.

포르쉐의 양산 차량에 ‘까레라’가 붙게 된 건 1973년 무렵. 까레라 파나메리카나에 출전한 포르쉐 356의 고성능 모델에 사용하던 이름이 까레라였는데, 이를 따 양산 차량에 ‘911 까레라’란 이름을 붙였다.

 

‘911 까레라’는 자연 흡기 엔진을 실은 911을 의미했고, 터보 엔진의 911은 ‘911 터보’라 칭했다. 시대가 변하고, 환경을 생각한 다운사이징(엔진의 배기량을 줄임)이 주류를 꿰차자 모든 911에 터보 차저가 탑재되었다. 911의 트림을 의미하게 된 까레라는 오늘날까지 포르쉐의 예쁜 엉덩이에 새겨져 오고 있다.

 

‘E-퍼포먼스’라는 이니셔티브 아래 포르쉐는 순수 전기차 타이칸taycan을, 태그호이어는 스마트 워치 커넥티드connected를 앞세워 시장을 향해 새로운 출사표를 던졌다. 변화하는 국면을 함께 맞을 수 있다는 건 돈독한 역사를 공유했기 때문. 한치 앞도 예상하기 힘든 내일을 꿈꾸며 맞잡은 두 손은, 서로의 분야에 최선을 다하는 두 친구의 우정은 꿈과 열정을 가득 안고 써내려가는 역사의 한 획이다.

 

오십 년 이상이 흘렀지만 현행 911에는 아직 수평대향 6기통(F6) 엔진이 함께한다. 정통파를 고수하기 때문에 포르쉐고, 전통을 이해한 사람들은 포르쉐에 열광한다. ‘911 까레라’의 스티어링 휠에 얹은 왼손. 그 손목 위를 두른 ‘태그호이어 까레라’. 축복의 역사를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란 증거다. 둘 중 하나라도 있다면 남은 하나를 꿈꾸고, 둘 다 없다면 전부를 꿈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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