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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보라 Oct 30. 2022

병동 생활 2

"[회진 안내]     

잠시 후 000 선생님 회진 예정입니다.     

국립암센터 드림"     


아침마다 회진을 알리는 톡이 오면 곧 의료진들과 함께 주치의 샘이 나타난다.       


"상처는 잘 아물고 있네요... 한 번 보시겠어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직 상처를 마주 볼 자신이 없다. 달라진 내 모습을 보는 게 겁이 났다.      


오전엔 유방암 환자들을 위한 교육이 있었다. 나랑 같은 병으로 수술한 환우들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얼굴만 봐도 가슴이 아렸다. 속으로 몰래 기도했다. 하나님, 제발 이 분들 회복 잘돼서 건강하게 다시 일상생활하게 해 주세요.      


아직 오지 않은 환우들을 기다리다 한 분과 대화를 나눴다. 모자 쓴 모습을 보니 항암을 마치고 수술하신 듯했다. 말간 얼굴과 목소리가 퍽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나랑 이름이 같았다. 같은 이름에 같은 병이라니. 친밀감이 급 상승했다. 잠깐의 대화에서도 고난을 이겨낸 사람의 단단함이 느껴졌다. 온갖 염려를 미리 대출해서 징징대려는 나에게 "미리 앞서 가지 마세요."라고 단호하지만 따뜻하게 말씀하셨다.  

     

유방암 교육은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첫 시간은 유방암의 정의 및 수술법, 재건, 항암, 방사에 관한 내용이었다. 중간에 유방암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지 전조 증상(피부 변화, 유두함몰, 통증, 만져지는 종괴 등)에 대해서도 배웠는데, 수술까지 끝난 상황에 이걸 아는 게 의미가 있나 싶다가 혹시 모를 재발(아~상상하기도 싫다)에 대비하란 뜻인가? 싶어 열심히 들었다.   


두 번째 시간에 영양 교육이 이어졌다. 역시 환자들 대부분이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다. '00 먹어도 되나요? 00은 먹으면 안 되나요?'라는 질문이 번갈아가며 쏟아졌다. 이후에도 몇 번 병원에서 영양교육을 들었는데, 결론은 같았다. "만병통치약은 없으니 5대 영양소를 골고루, 균형 있게 '음식'을 통해 섭취하세요."  양방에선 즙이나,약초,엑기스 등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 듯했다. 영양제만 몇 개 추천하는 정도. 튀김 같은 고지방만 조심하면 된다.(그게 제일 맛있잖아요.)     


음식은 골고루 영양가 있게     

과도한 지방 섭취(튀김류 조심) 자제     

다양한 색상의 채소 먹기(색깔에 따라 기능이 다름)     

알코올 섭취 제한     

건강보조식품 섭취 주의     

체중관리 규칙적인 운동     

-국립암센터 임상 영양실-

     

두 시간의 교육이 끝나고 병실에 오니 허기진 것처럼 손발이 떨렸다.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나 환자 맞구나. 겨우 두어 시간 있다 왔는데도 몸이 후들거렸다. 밥이 올 때만 기다렸다.      


병원밥은 '기본 식단'과 '선택식단'으로 나뉘어 있는데, 식단표를 받아서 원하는 메뉴에 표시하면 다음 식사 때 먹을 수 있다. 기내식 메뉴판을 보는 것 같아 잠시 설렜다. "소고기로 하실래요, 치킨으로 하실래요?" 하고 스튜어디스가 물으면 고민할 필요 없이 둘 다 시켜서 신랑이랑 나눠 먹었는데.         

     

기본 식단과 선택 식단표. 국이랑 밥이 당겨서 선택 식단은 한 번도 신청하지 않았다.


병원 밥 체질인가? 생각보다 음식이 너무 맛있었다. 제왕 절개 수술하고 먹던 병원 밥은 모든 음식에 물 탄 듯 '밍밍함' 그 자체였는데.  이번엔 없던 입맛도 돌아올 만큼 간이 세고 김치도 매웠다. 유방암 환자는 소화기에 문제가 없어서 그런 건지. 우리 집 반찬보다 짜다. 이건 환자식이 아니라 그냥 보통 사람 식사다. 그것도 짭짤하게 먹는 일반인용. 그래도 환자식이 맞는 것 같은 게 모든 반찬이 잘게 잘려있다. 덕분에 씹기가 수월해 음식이 술술 넘어간다.        

병동 생활 중 가장 큰 기쁨, 병원밥

   

   

밤에는 여전히 깊이 잠들기 힘들었다. 몸 보다 마음 때문이다.  기쁘지도 우울하지도 않은 설명하기 어려운 지점에 가 있는 감정. 한밤중에 눈뜨면 멍하니 창밖을 본다. 얼비치는 달빛 덕분에 은은한 스탠드 조명을 켜 놓은 듯 병실이 밝다. 조금은 편안해진다. 달이 위로해 주는 기분.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다. 풀벌레가 귓가를 맴돌며 자장가를 부른다. 다시 잠에 빠진다.     


  

달이 정말 예뻤는데 사진에 잘 안 담기네.


병원에 있는 동안 수술 부위를 소독받았다. 상처 난 피부에 소독약이 스며들면 무척 쓰린데,  꿰맨 부분을 조심스럽게 '톡톡' 눌러가며 소독해 주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꾹꾹' 압력이 느껴질 정도로 눌러대던 선생님도 있었다. 의사한테 드레싱은 단순 처치겠지만, 환자 입장에선 다르다. 소독솜을 통해 전해오는 미세한 손길만으로도 이 분이 어떤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예상을 깨고 남자 선생님이 더 섬세했다.)     


병실 청소를 하러 여사님이 오셨다. 화장실과 방을 둘러보시더니, 진짜 병실 깨끗이 썼다며 칭찬하셨다. 살면서 청소로 칭찬받아 보긴 처음이다.(결혼하기 전이나 후나 같이 사는 멤버들 중 정리정돈은 늘 꼴찌였는데. 보고 있나 신랑?)      

     

세상사 마음먹기 나름이라며 가슴 그까이꺼 떼 버리고 씩씩하게 살라고 하시는 말에 눈물 슥슥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사님은 건강이 좋지 않아 수술도 많이 하고 당뇨도 있지만, 청소일을 하며 장애가 있는 남편을 평생 수발 중이라고 하셨다. 인고의 세월을 겪어낸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강한 힘이 있었다.       

 

내일이면 퇴원이다. 멋진 정발산 풍경도 이젠 안녕. 병원 생활 내내 산이 주는 위로가 컸다. 흩날리는 벚꽃 잎이 창가에서 춤출 때는 황홀감에 아픔을 잊었고, 연노랑에서 초록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나무들을 볼 때는 생명력에 감탄했다.     

 

상처도 잘 아물었고 배액관도 뗐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퇴원하면 될 텐데 돌아가 밥 할 생각 하니 아찔하다.(배*을 좋아하는 불량주부입니다) 병원에서 남이 해 주는 밥 먹을 때는 끼니 돌아오는 게 그렇게 기다려지고 설레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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