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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보라 Oct 30. 2022

병동 생활 1

우욱.     


마취가 풀리자 힘을 줄 때마다 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이 옆구리를 타고 겨드랑이까지 파고들었다. 양 쪽 겨드랑이를 절개하고 그 안에 림프절까지 잘라냈으니, 말 그대로 '칼에 베인 아픔'.    

 

귀에 익은 음악이 옷장에서 흘러나온다. 수술받으려고 병실을 떠날 때 넣어 둔 휴대폰 벨소리다. 발신자는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엄마. 보호자 없이 수술받고 나온 딸을 염려하는 엄마 마음이 옷장 바깥으로 울려 퍼진다.      


전화를 받으려고 몸을 일으키다 다시 누웠다. 한 손으로 침대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니 팔에 힘이 들어가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한쪽만 수술했으면 다른 손을 지지대 삼아 수월하게 일어났을 텐데. 양 쪽을 찢어놓으니 어느 손도 움직이기 어렵다. 투명한 밧줄에 묶인 느낌. 휴대폰 꺼내기를 포기했다. 


병원 침대는 각도 조절이 가능하니 팔에 힘을 덜 주고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침대를 세우면 자동으로 몸이 세워질 테니. 리모컨을 찾으려고 고개를 앞뒤 좌우로 움직였다. 하필이면 손을 뻗어도 잡기 어려운 머리 위 벽면에 달려 있다. 침대 리모컨도 포기다.     


그렇다면 티브이 리모컨은 어디에 있나... 침대 옆 의자 위에 있다. 반가운 마음에 팔을 뻗어본다. 으으으으윽. 조금 더, 조금만 더, 5cm만 더!!!! 잡으려는 마음이 커질수록 고통도 커졌다. 결국 티브이 리모컨도 포기.  

   

이 날부터 병동 생활 내내 효자손 챙겨 오지 않은 걸 눈물을 흘리며 후회했다. 그게 있으면 웬만한 물건들은 슥슥 끌어당길 수 있었을 텐데.     



간호사님이 들어왔다. 간호간병 통합 병동이라 의료진들이 자주 내 상태를 확인했다.(적어도 한 시간에 한 번) 4시간 안에 꼭 소변을 보라며, 불편한 곳은 없는지 물으셨다. 침대 리모컨이 필요하다고 했다. 선생님은 벽에 달린 리모컨 줄을 당겨 내가 잡기 쉽도록 침대 옆 난간에 고정했다.  

    

"이제 푹 쉬세요. 000 환자님."     


"저, 저기요. 선생님."     


떠나는 간호사 선생님을 다급히 불렀다.     


"선생님, 정말 죄송한데요... 저기 의자에 있는 티브이 리모컨 좀 주실 수 있나요?"     


바쁘신 분에게 이런 부탁을 하다니. 전생에 양반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간호사님은 흔쾌히 도와주셨지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말하는 게 미안하고 불편했다.      


창 밖의 나무들이 하나둘씩 검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의료진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1인용 병실은 풀벌레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고요함이 낯설다. 아직 친하지도 않은데 스멀스멀 내 몸에 올라오자, 어깨가 들썩이며 눈물이 났다. 수술은 잘 끝났는데. 욱신거리긴 하지만 견딜 만한데. 암 덩어리도 다 제거했는데. 좋은 일만 있는데 목구멍에서 자꾸 뜨거운 게 올라왔다. 1인실이라 남 눈치 볼 필요가 없어서 그랬을까. 한참을 소리 내어 울었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봐도 방송이 하나 같이 재미없다. 이런 날은 유쾌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배꼽 빠지도록 웃고 싶은데. 지나가던 시민이 강호동 씨에게 "어머님이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1박 2일' 덕분에 많이 웃었어요." 라며 감사 인사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분 말고도 꽤 많은 사람이 강호동 씨에게 비슷한 얘기를 했다. 입원해보니 1박 2일이나 무한도전이 환자들에게 얼마나 고마운 프로였을지 짐작이 갔다.     

 

마취가 풀리면서 통증이 심해졌다. 참아볼까 했지만 [아프면 참지 말고 진통제를 맞으세요]라는 안내문이 떠올라 간호사 선생님을 불렀다. 진통 주사를 놔주셨다.(암센터는 유방암 수술 후 무통 주사를 달지 않는다) 진통제가 들어가자 정신이 들었다. 옷장까지 기어가 비밀번호를 풀어 휴대폰을 꺼냈다. 엄마랑 동생에게 연락을 했다. 양쪽 팔이 다 고생이니 문자 보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밤 11시 30분. 기다리던 첫 식사가 나왔다. 미음이나 먹겠지 했는데 쌀죽이 나왔다. 깨가 들어가서 엄청 고소했다. 수술 후 몸 상태가 괜찮아서 그런가? 꿀맛이다. 템플스테이에서 발우 공양하는 관광객처럼 깨끗이 그릇을 비웠다. 배가 부르니 마음이 편안하다.(배고파서 울었나)           


다음 날도 몸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병원에서 준 '수술 후 팔 운동법'을 보며 스트레칭을 시도했다. 팔을 45도 이상 올리니 극한의 당김이 느껴졌다. 진통 주사를 두 번 맞았다. 다행히 입맛은 죽지 않아서, 주는 밥을 다 먹고 수술 전 남겨 놨던 조각 케이크까지 깔끔히 해치웠다. 이젠 살았구나 싶었는데, 문제는 그다음 날 새벽에 찾아왔다.      


밤새도록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아프고 속이 메슥거리더니 새벽이 되자 토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간호사님을 불렀다. 소화제와 구토 방지제를 먹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속이 계속 울렁거렸다. 차라리 다 게우면 시원할 텐데, 구토 방지제 효과가 너무 좋은 건지 손가락을 목구멍 깊숙이 찔러도 신물만 살짝 올라올 뿐 반응이 없었다. 간호사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15분에 한 번씩 들어와 상태를 물으셨다. '지금은 괜찮으세요?" "아니요."를 세 번 정도 주고받을 무렵, 어둑했던 창 밖이 환해지며 내 속도 가까스로 진정됐다.      

     

그러자 이번엔 목이 아팠다. 어릴 적부터 편도가 약해 몸이 안 좋으면 잘 붓고 열이 난다. 마취 때문에 기도에 관을 삽입했더니(삽관) 목에 상처가 난 건지,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을 씹는 것 같았다. 또 간호사님을 호출했다. '탄툼'이라는 가글액을 주셨다. 목이 아픈데, 웬 가글일까 했는데, *그린과는 차원이 달랐다. 병원에서 인후통 환자에게 쓰는 소염 진통제였다. 목 통증은 가라앉았는데, 다시 속이 메슥거렸다. 이번엔 대체 왜!!! 가글 약 주의사항이 눈에 들어왔다.      


<부작용으로 구역, 구토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수술이 가장 쉽다'라고 말하는 환우들이 있다. 2박 3일 만에 퇴원해서 일주일 만에 일상생활하는 사람도 있고, 수술 직후부터 몸이 너무 가벼워 병동을 몇 바퀴씩 걸어 다녔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수술 후에 느끼는 몸의 변화는 환자마다 천지차이다. 다른 사람보다 회복이 더딜 수 있다. 남과 비교하며 우울해하지 말자. 사람마다 체질도, 수술 절제 범위도 다 다르다.      

     

자기 자신을 세상의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말라.      

자신을 남과 비교하는 것은 자신을 모욕하는 행위이다.     

-빌 게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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