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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보라 Oct 30. 2022

퇴원, 집으로

병원비 정산

2022년 4월 17일. 퇴원일이자 예수님이 무덤에서 살아나신 부활절이다. 나도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든다.    

  

서울 상급 병원들은 부분 절제 시 2박 3일, 전절제를 해도 5박 6일 안에 퇴원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배액관을 달고 퇴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는데 암센터는 달랐다. 7박 8일 만에 퇴원 안내를 받았다. 

     

처음엔 7박 8일 너무 긴 거 아냐? 싶었지만 의사 선생님 판단이 옳았다. 수술 후 4일 동안은 아파서 힘들고, 5일째 되는 날부터 좀 살 것 같더니 6일째 되어서야 정신이 나고 7일째 되니까 팔에 힘이 들어갔다. 만약 나보고 5일 만에 퇴원하라고 했으면 혼자 짐도 못 싸고 울면서 간호사님께 부탁할 뻔.        


충분히 휴식을 취한 덕에 배액관도 다 떼고 가벼운 마음으로 퇴원한다. 캐리어 위에 올라타 엉덩이로 짐을 꾹꾹 눌러 지퍼를 닫은 후 마지막으로 병실을 둘러봤다. 창 밖에 정발산은 오늘도 다채로운 옷을 입고 봄 향기를 내뿜는다. 나도 곧 지상에 내려가 봄 내음에 취할 수 있겠지.      


간호사님이 오셨다. 안내문을 주시며 퇴원 후 주의사항과 퇴원 수속과정에 대해 설명하셨다. 


샤워는 배액관 제거 4일 후부터 가능함.

통목욕, 사우나 금지.

처방해 준 진통제는 8시간마다 복용(아플 때만 먹기)

수술부위 출혈, 통증, 발열 있는지 살피기.

다음 외래까지 가급적 수술용 압박 브라 착용하기     

     

퇴원 후 건강관리 안내문


설명을 마친 간호사님이 나간 지 십 분도 안 돼서, 또 다른 간호사님이 들어왔다. 마스크 밖으로 명랑한 기운이 세어 나오던, 그래서 인상에 남던 간호사님이었다.      


"오늘 퇴원이시라면서요? 퇴원 잘하시라고 인사하러 왔어요."   

  

응원 단장 같은 씩씩한 목소리가 기분 좋게 병실을 가득 채웠다. 세상에... 바쁘실 텐데 일부러 시간을 내서 오시다니.     


생기 넘치는 그녀 덕분에 내 기분도 살짝 부푼다.      


병원에 있어보니 '간호사'라는 직업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쉽지 않을 꺼라 짐작은 했지만 소명의식 없이는 도저히 못할 직업이었다. 아픈 사람에게 아픈 말을 들어야 하는 직업. 성질 급한 환자가 "벨 눌렀는데 왜 이렇게 안 오냐?"라고 데스크까지 찾아와 면전에서 짜증 내도 묵묵히 들으며 달래줘야 하는 직업. 밤샘 근무도 힘든데 일하는 내내 환자들의 신음소리를 들어야 하는 직업.(밤이 되면 더 아픈지 환자들이 자주 간호사를 호출했다.)        

놀라운 건, 그럼에도 간호사 선생님들 대부분은 씩씩하고 밝으셨다. 프로란 이런 거구나, 감탄했다. 나라면 하루 종일 피곤에 절여진 얼굴을 한 채, '꼭 해야 할 일'외엔 움직이지 않으며 '솔'이 아닌 '낮은 도'정도의 목소리로 환자들을 대했을 텐데.(그럼 잘렸으려나?)     


병실을 나와 병동 입구에 가니 나처럼 보호자를 기다리는 환자 분이 있었다. 오늘 퇴원하는 유방암 환우였다.  곧 그분의 남편이 오셨다. 팔에 커다란 깁스를 하고. 딱 봐도 짐 하나 들어줄 수 없는, '도움이 크게 안 되는' 보호자였다. 근데 그 모습을 보며 '그래도 부부밖에 없네. 웬만하면 싸우지 말고 서로 돕고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결국 내 옆에 가장 오래 남아 있을 사람. 배우자란 그런 존재다. 팔이 부러졌을 망정 수술한 아내의 보호자가 되는 사람. 짐 하나 못 들어줘도 출가한 자식보다 편한 사람.    

 

병원비를 정산하러 수납 창구에 갔다. 그런데 정확한 진료비가 아닌 '가퇴원 금'으로 금액을 산정한다. 일요일은 보험 심사가 안되기 때문에 일단 가퇴원 금을 내면, 일주일 내로 보험 심사를 해서 정확한 액수를 다시 알려준다고 했다.(이때 추가금, 또는 환불금이 발생할 수 있다.)      


가퇴원 금은 3,340,000원이었다. 정확한 금액은 아니라고 해서 환불금을 받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만 오천 원 정도 추가 금액을 냈다.ㅠㅠ    

 

병원비 대부분은 '병실 사용료'였다. 1인실은 보험 적용이 안 된다. 1인실 비용: 38만 원(1박)*7일= 2,660,000.  그러니 실제 수술비랑 식대, 처치비는 다 합쳐도 70만 원 언저리다.      

7박 8일 동안 잘 쉬게 해 준 고마운 1인실, 안녕!


일주일 만에 세상 밖으로 나갔다. 병실에서 아스라이 흩날리며 춤추던 벚꽃이 지고 있었다. 창문을 내리고 손을 뻗어 봄바람을 쓸어본다. 손가락 사이사이가 간지럽다. 뺨을 스치는 바람과 햇빛, 일주일 만에 맛보는 바깥공기가 새삼스럽다.      


집에 오니 부엌 싱크대에서 반질반질 윤기가 난다. 거실 소파는 흐트러진 쿠션 하나 없이 단정하다. 하얀 이불이 가지런히 정돈된 안방은 호텔방 같다. 수술하러 오기 전, 많은 환우들이 집안꼴을 걱정한다. 특히 유방암 환자는 주부들이 많아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염려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가 없을 때 우리 집은 가장 깨끗하다.      


이전에도 이렇게 깨끗했던 적이 있었다. 애 낳고 몸조리하러 친정 갔을 때. 한 달 만에 돌아오니 신랑 혼자 사는 집에서 광이 났다. 마룻바닥이 어찌나 반짝거리던지. "너네 집은 너만 잘하면 돼."라며 같이 왔던 엄마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생각해보면 정리정돈 습관은 유전이나 환경, 교육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정리 왕, 깔끔 왕이 있다면 2관왕을 차지하셨을 울 엄니 밑에서 컸지만 나는 자주 책상을 어지럽혔다.(사실 책상 말고도 많이...) 한 번은 아버지가 보다 못해 책상 정리를 하셨는데, 실수로 실과 공책을 버리시는 바람에 적반하장으로 짜증을 낸 적도 있었다.     

가끔 정리안 된 집을 보며 구시렁대면 신랑이 조용히 한 마디 한다. "음... 다 네가 어질러 논 거잖아...."  

   

오후에는 시어머님과 시누이들이 병문안을 왔다. 우리 며느리에게 이게 무슨 일이냐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어머님은 장어랑, 김치찜, 간장게장 등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손수 만들어 오셨다. 언니들은(평소 시누이를 언니라고 부른다) 명이나물이며 총각김치 같은 밑반찬에 과일, 꽃까지 들고 왔다. 눈물 나게 손 편지에 위로금까지 담아서.      


자주 만나며 살갑고 끈끈하게 지내는 사이는 아니지만 가족은 가족이다. 어렵고 힘들 때 이런 가족이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하다.    

  

언니들이 준 꽃과 과일(이제껏 먹어본 과일 중 제일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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