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하세요
지인이 시골에서 얻어 왔다며
노란 옥수수를
한가득 가져다준다
옥수수
벌써 옥수수의 계절인 건가
옥수수
내가 사랑하는 옥수수
노란 옥수수를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고
옥수수 옥수수
입으로 발음하는 것도 즐겁다.
아기를 감싸고 있는 포대기처럼
겹겹이 쌓인 껍질을 한가닥씩 벗기면
탱글하고 매끈한 속살에
절로 눈이 커지고 감탄이 나온다
아
옥수수
생긴 것만큼이나
이름도 귀여운
옥수수
나는 옥수수가 너무 좋다
찹쌀옥수수 그냥 옥수수 초당 옥수수
심지어 팝콘 나쵸까지
옥수수로 만든 거라면 사족을 못쓴다.
그게 소문이 나서
옥수수 파는 트럭이 보이거나
시골에서 얻어 오면 나를 위해
가끔 지인들이 던져주고 가는데
같이 얻어먹은 동생에게
"너무 고맙지 않아?
나는 뭐 하나 사다주지?"
옥수수를 나눠 주며 말했더니
"뭐 남아도니까 주는 건데 뭐~"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차고 넘쳐도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은
나누는 법을 몰랐다.
아무리 공짜로 받은 비누가 많아도
하나 가져다 쓰라고 하는 법이 없었고
집에 채소나 과일이 넘쳐나도
그것이 흐물흐물해져 결국 버리게 될지언정
주변에 나눠주는 걸 아까워하는 사람을 많이 봤기 때문에
이렇게 나눠 주는 이들이 너무 감사하고
그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싶다.
언젠가는 쓰일지 몰라서 버리지 못하고
다 끌어안고 있는 마음이나
많아도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누지 못하는 마음
하나같이 옹색하다.
나누는데 인색한 사람치고 표정 화사한 사람 못 봤다.
그런 식으로
물건이든 마음을 쟁여 두고 있으니까
하루하루가 무거운지도 모른다.
산뜻해지고 싶으면
물건이든 마음이든
정리를 싹 해보는 쪽이 도움이 된다.
그건 그렇고
아파트라는 공간이 서로 나누기가 더 좋은 걸까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다 보니
낯이 익고 그러는 사이
들락날락거리며 나눠 먹는 기쁨이 있었는데
주택지로 이사 오고 나서는
어쩐지 그런 일이 어려워졌다.
무릇 우리 동네만의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사람 얼굴 보기가 힘들다.
산책을 핑계 삼아
한낮에도 어슬렁 거려보고
초저녁에도 지나가봤지만
다들 맞벌이를 하는지 인사할 일이 없었다.
옛날 할머니 집처럼
서로의 마당에 없는 식물뿌리나
꽃대를 나눠 갖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 왔던 건
요즘 누가~~ 하는 옛날 감성이었나 보다.
시대의 변화인 건지
우리 동네만의 개성인 건지 모르겠지만
같이 뭔가를 나누고 공유한다는 건
시시한 옛것이 되어 가는 듯해서 아쉽다.
오늘처럼 옥수수를 한가득 받거나
명절 때면 생기는 과일들도 그저 매일 얼굴 보는
앞집 할머니와 나눌 뿐이다.
앞집은 담도 없이 주차장 삼아 마당을 내놓은 형식인데
다행히도 할머니는 그곳에 의자를 두고 늘 앉아 계신다.
시골은 아니지만
시골 평상의 정취를 살짝 풍긴다.
허긴 매일같이 원하든 원치 않든
엘리베이터나 주차장, 아파트 현관 앞에서
끊임없이 사람을 봐야 하는 것이 싫어서
조용히 살려고 주택에 들어와 사는데
뭘 나누겠다고
자꾸만 문을 두드리면 싫기도 하겠다 싶다.
하늘이 너무 좋아서
아파트 1층 현관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바람을 느낄 수 있고
비가 땅에 떨어져 맺히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 싶고
손바닥만 한 마당일지라도
꽃 한 송이 심고 싶어서 주택으로 오는 건 아니라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그래서 큰 낫이나 잔디 깎기를 사지 않아도
좀 빌려 쓸 수 있지 않을까 안일하게 생각했던
나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웃에게 묻지를 못하고
원예가위로 남편을 머슴 삼아 일일이
매주 조금씩 잘라내고 있다. ^^
더치페이처럼 젊은 분위기랄까 트렌드를
다 따라잡진 못해도 하다 보면 의외로 편하네
하는 것들도 많으니 적응해 보기로 하고
오늘도 옥수수를 삶아
앞집 할머니랑만 나눠 먹는다.
노란 옥수수를 보니
진짜 여름이다. 여름이 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 여름을 선물 받았네~~~
생각보다 옥수수는 맛있게 그러니까
단짠단짠이 딱 절묘하게 찌기가 힘들다는 걸 알았어요
하지만 여름 내내 옥수수를 입에 물고 있어야 하니까
이렇게 선물 받지 않는 날은 트럭 할아버지와 인사도 나눌 겸
옥수수 트럭을 이용하지요
그 할아버지가 이 글을 읽지는 못하실 텐데..
늘 엄청 많이 사는 것도 아닌데
포장된 거 말고 꼭 하나를 끼워 주시면서 먹으라고 하신답니다.
아니라고 해도 늘 한사코 끼워 주시죠..
아버지 같기도 하고
시아버님 같기도 하고
암튼 너무 정겨운 모습으로요...
그리고 맛이 정말 간이 딱 맞답니다.
조금은 나른한 날
조금은 슬픈 날
조금은 외로운 날
할아버지 옥수수를 사서
두 손으로 옥수수를 받치고 야금야금 먹어 치우다 보면
슬픈 것도 까먹고
외로운 것도 까먹고
그럭저럭 또 살만한 기분이 되더라구요.
마법의 할아버지
내 두 손에 옥수수가 쥐어 있지 않았다면
천사라고 착각했을 것 같아요
할아버지 옥수수 트럭이
여러분 마을에도 구석구석 찾아가기를 기원해 봅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