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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규 Aug 18. 2020

#아들과함께새로움찾기_10

말을 배워가고 있어요

승후의 다부진 목소리가 조금씩 들려온다.

정확하지는 않아도 여러 가지 사물의 이름을 말해주면

따라 하려는 소리와 단어들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승후의 말이 또래에 비해 조금은 느린 편이라

사실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요즘 들어 부쩍 사랑스러운 단어들이 들려오니

내심 마음이 기쁘다.    


아직 제일 잘하는 말은 “엄마” “아빠”이지만

제법 표현하는 단어의 수도 많아졌을뿐더러

평소에는 자주 하지 않던 발음들을

조금씩 해 나가고 있다.    


더군다나 표현하고 싶은 바를 더욱  확실하게

얼굴과 몸짓을 이용하기 시작했고

행동과정들을 본인 중심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승후가 좋아하는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을 살 때면

이제는 엄마 것도 하나, 아빠 것도 하나,

꼭 여러 개를 손에 쥔다.


그렇게 양손 가득 챙기고서

언제 엄마 아빠 몫을 나누어주려나 관찰하지만

막상 실제로 내준 적은 드물다

(본인이 더 먹고 싶은 마음이 강한 나이이다)


그래도 본인이 의사표현 점차

섬세해지고 확대되어 간다는 것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



길고 길었던 장마가 끝이 났다.

어제는 햇빛이 강하지 않은 오전에 잠시 산책을 나가

오랜만에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놀이터에서 오랜만에 함께 미끄럼틀을 타고

나무 위 매미를 찾아 맴맴 흉내도 내보았다.    

막상 낮게 자리 잡은 매미를 잡아주니

겁이 나는지 뒷걸음질 친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 승후를 쫒아가며 놀려주었고

그게 또 재미있었는지 놀이터를 여러 바퀴 돌고서야

턱 밑까지 오는 숨을 내쉬며 그루터기에 걸터앉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뛰어 논 것 같다.

잠시 비가 그칠 때면 고인 빗물을 찾아

첨벙첨벙 뛰기도 하고

짧은 시간이라도 승후가 비를 느낄 수 있도록

함께 있어주긴 하였지만    


사실 집 안에서 베란다 창문을 통해

밖은 이미 비로 가득하다는 걸 반강제적으로 인지하도록

나가기 귀찮다는  핑계로 

“승후야 비가 와서 오늘은 못 겠네”

“비가 그치면 나가자”라고

승후의 요청을 거절한 경우가 더 많았다.

 

승후는 서운한 마음에 이내 울음을 터트리거나

현관문까지 자전거를 끌고 나가서는

의연하게 침묵 속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자

발을 동동 굴려본다.


단칼에 거절하고 자기 마음도 몰라주는

엄마 아빠에게 분명 서운한 마음 들었을 것이다.

   

여하튼 장마기간 승후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많았지만

오늘만큼은 있는 힘껏 뛰어놀며 승후와 이야기하였다.    


그 어느 날보다 훨씬 활기차게 놀다 보니

습도가 높고 더운 날씨에 지쳤는지

자꾸 안아달라고 한다.

   

품 안에 뉘어보니 어느새 부쩍 커버린 승후가 새롭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나 또한

어느새 얼굴이 땀으로 가득하다    

“승후야 아빠 땀 좀 닦아줄래”

라고 생각 없이  말이 튀어나왔는데

피식 웃으며 작은 손으로 쓰윽 땀을 닦아 준다.

아빠 많이 덥지요?
나를 항상 안아주고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출처모를 마음이 다가와서 바람결에 말을 건네 온다.


그러고선 양 손을 머리에 비비며 거품 내는 흉내를 한다.

아마도 목욕이라도 할 기세처럼 주룩주룩 흐르는

땀을 보며 나를 놀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승후는 “땀”이라는 생소한 단어보다는

“닦아줘”라는 단어에 반응해

그저 목욕 후 늘  몸을 닦는 것처럼

눈 앞에 흐르는 무언가를 손으로  닦아주었겠지만    


그 순간 나는

내가 아빠가 되고 그동안 함께 해왔던 수많은 순간 중에

가장 행복한 감정과 벅차오르는 감격을 보았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나는 누군가의 땀을 닦아준 적이 있었나?
흐르는 나의 땀을 닦아주었던 이는 누구였을까?  

   

승후의 손길이 얼굴에 닿는 순간

아기 천사가 내어준 사랑의 손길임을

나는 단연코 알았다.


‘나는 승후와 아주 오래전부터 함께 교감하고 서로를 위하고 있었구나’
‘승후는 나에게 정말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는 천사임에 틀림없어’

쏟아질 것 같은 눈물에

눈치 없게 땀이 먼저 내려와 앉는다.


우리는 ‘말’을 통해 부재하지 않음을 표현한다.    

말을 시작으로 성장하고,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방법의 수단이 되는 생각의 근거로 활용하고

때로는 피하기도 침묵하기도 한다.

‘말’은 서로에게 상처와 고민과

환희와 좌절이라는 다양한 결과를 도출하는

행동의 원천이 되기에 아름답지만 날카롭다

    

오늘만큼은 서툴지만 승후가 내게 건

따뜻한 마음속 '말'하나가

진심을 전하며 살아가자는  또 하나의

'말'을 선물해주었다.

서로는 서로를 사랑하고
그 누군가는 누군가를 아끼고 있다는 것을...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느끼고 있을까?

  

그렇게 슬며시 웃음과 감격을 주고서

냉큼 내려 달라더니

혼자 걷는 것도 모자라 성큼성큼

자전거를 끌고 앞장을 선다.

얼마 못가 뒤돌아서  달려와 안기는 아들을  있는 힘껏

안아본다.

  

“승후야 아빠는 하나도 안 힘들어!
내게 항상 안겨주고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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