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끝나는 날 - 그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웃을 수 있을까
우연한 기회에 ‘죽음 준비 교육’이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어 찾아보았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지만 애써 그 준비를 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죽음이란 어느 날 갑자기 온다. 그런데 죽음을 준비한다면 왜일까. 죽음을 준비하는 교육까지 받아야 한다면 왜 그래야만 하는 걸까. 조사를 해보니, ‘죽음 준비 교육’을 통해서 사람들은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는다고 끝이 아니라는 사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단계, 진짜 죽음을 안다면 자살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배운다고 한다. 나는 인터넷을 통해서 수박 겉핥기로 이 교육에 대해 접했지만, 삭막한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대인기피증 등 현대사회가 만들어 낸 괴물 같은 마음의 병이 우리를 끝내 죽음으로 내모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믿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인지하는 ‘내 최초의 생각’은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여섯 살 때 유치원에서 하교하는 길에 언덕에서 넘어질 뻔했는데 ‘내가 이대로 엄마를 못 보고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나는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생각했다. 동생이 태어났을 시기의 기억이라거나 어려서 어디에 놀러 갔다는 기억이, 대부분 부모님 말씀에 의해서 ‘기억의 재구성 및 재사유화’를 이뤄낸 것이라면 여섯 살에 ‘죽음’에 대해 고민한 것은 명확히 생생한 나의 첫 사유(思惟)다. 그 날 이후 다른 사람들보다는 좀 더 자주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이를테면, 내 인생의 마지막 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 혹은 신이 나를 이 세상에 보낸 것이라면 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조금은 일상을 무겁게 하는 생각들.
셀프 죽음 준비 교육을 이수한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그냥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일단 전주나 제주 같이 녹차 밭 넓게 펼쳐진 곳에 가서 파릇파릇한 생명들을 구경하고 싶다. 이번 생애에서 내가 이들처럼 푸르렀고 또한 쓸모 있었기를. 천상병 시인은 ‘귀천’이라는 그의 시에서 인생을 ‘지상에서의 소풍’이라고 표현했다. 이제 소풍을 마치는 날, 나는 가족들에게 하직 인사를 고하고 홀로 설 준비를 한다. 이제 정말 가는 것이다. 탈도 많고 미련도 많았던 이 세상의 소풍을 끝내는 시간이 온다. 지켜보는 이가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함께했기에 내 삶은 축복이었다고. 오래도록 내 곁에 머물러 주어 고맙다고. 그렇게,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되고 싶다. 내 마지막 순간에 웃을 수 있을까. 소풍이 즐거웠어야 할 텐데.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 책 읽어 드리는 불면증 오디오클립 '책 읽다가 스르륵'을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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