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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청안 에세이작가 Oct 24. 2019

덜 사랑하는 척, 가면을 썼어

이청안 산문집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중에서


   낯선 그의 모습을 본다. 말이 많아졌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다. 활발한 척하고 있다. 길가에서 만난 풍경과 자전거에 대한 회상, 입술이 쉬지 않고 움직이는데도 그가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당신이 이제야 나를 편하게 생각해서 그러는 거라고 애써 침착함을 유지해보려 하지만, 오가는 눈빛이 마침표의 감각을 눈치채자 나는 이미 다 무너져 내렸다. 언젠가부터 예감했으면서도.


   마음과 반대로 말하고 움직일 때가 있다. 나를 지키려고, 상대방을 지키려고 위선이 아닌 위악을 택하기도 한다. 가면을 쓰면 마음이 편하다. 마음을 숨기려고 마음과 반대로 가면을 쓰고, 마음을 지켜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고. 괜찮다고, 실상은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다고 말한다.


   마지막 포옹과 문 뒤의 이별 그림자를 뒤로하고 나는 말한다. 당신을 사랑하긴 하였으나, 내 전부는 아니었다고. 꽉 깨문 이 사이로 핏물이 스미는 것 같아도 가면을 써본다. 그런다고 해서 이 마음이 가려질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이미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갈림길의 방향을 정해주기에, 끝내 가면을 벗을 수는 없다. 생채기 난 얼굴로 거울 같은 당신을 바라볼 수가 없다. 내가 더 아프기에.


   당신을 덜 사랑하는 척, 진실로 그런 척, 가면을 쓰고서 나는 잘 지낼 거라고 말한다.

[서울, 자전거 ‘따릉이’]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기다리겠지. 한번 쓰이고 방치되어도, 기다릴 거야.사실 다들 기다려본 기억이 있을 거야. 그러니 마음 편히 먹고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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