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하면서도 한번 만나고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피천득 시인의 수필 ‘인연’에 나오는 구절이다. 나도 ‘그리워하면서 한 번도 못 본 사람’이 있고, ‘우리가 과연 알고 지냈던가’하고 잊은 사람도 있다. 매일 만나게 되는 즐거운 사람들도 있고, 멀리 있지만 가슴으로 정을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
그중에서 내가 죽어도 잊지 못할 분이 있다. 아직도 이분과 나누었던 많은 이야기들이, 내 마음의 방을 차지하고 있다. 이 분은 내 첫사랑이자, 내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이다. 선생님은 내가 졸업하던 해에 교단을 떠나셨기에, 그리워하면서도 쉬이 뵐 수 없었다.
그래도 선생님께 받은 영향들이 다부진 영양가가 되어 내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다. 어느 날, 그분이 존경하는 사람을 나도 존경하고 싶어서 이렇게 여쭈었다.
“선생님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음…,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는 말 혹시 들어봤어? 논어에 나오는 말인데,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서 내 스승 삼을 사람이 반드시 있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사실은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부정적인 행동에서도 저러면 안 되겠구나 깨닫기도 하니까…. 존경할 만한 사람이 따로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그때 선생님의 그 말씀 이후로 나를 둘러싸던 공기가 완전히 달라짐을 느꼈다. 스쳐가는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을 생각했다. 인연에 대하여, 교훈에 대하여 마음에 새겼다. 스스로 인복이 많은 사람임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그 생각을 종종 입 밖으로 꺼내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좋은 인연이 더 많아지고 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도, 내 곁을 지켜주는 좋은 인연은 늘 있었다.
금수저 흙수저 운운하는 물질의 세상에서 단 한 발 앞서기 위해 무수한 것들을 재고 따진다. 그러나 좋은 인연 앞에서 그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그대가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도 좋다. 오래전 선생님이 주었던 영향으로 내가 줄기를 튼튼히 할 수 있었듯 그대 앞길에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대의 좋은 인연으로 남을 것이다.
사람에 상처 받고, 울고, 아파도…. 나는 여전히, 사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