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안 에세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 현아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애가 애를 낳았다고 생각해서인지 실감이 안 난다. 아기를 낳는 과정에서 겪은 생생한 이야기들을 전해 들어도 마찬가지다. 꼭 저 같이 꼬물꼬물하고 하얗고 귀여운 아가를 낳았는데, 엄마가 되어도 여전히 그 애는 아이같이 천진하다. 달라지진 않았지만 뭔가 강인해진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낯설었지만…. 뼛속까지 나를 알고 있는 이 세상의 단 두 사람은 우리 엄마와 현아. 그렇게 딱 둘일 것이다. 그만큼 역사가 깊은 내 친구. 다람쥐 같이 귀여운 현아.
현아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느낌이 왔다. 강한 인연에는 반드시 느낌이 온다. 그리고 예감은 느낌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녀는 새침한 인상에 마른 몸매를 가졌다. 톡톡 튀는 목소리와 활발한 몸동작은 늘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기에 왜 살이 안 찌는지 그녀의 마른 몸을 설명해주었다. 나보다 훨씬 더 많이 먹고 심지어 탄수화물에 대해서는 중독 상태에 가까웠던 그녀는 타인에 대한 관심과, 세상만사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걱정을 쉬지 않았다. 물론 그러면서 의식에 흐름에 맞게 온 몸을 같이 움직였다. 그러니 뼈에 살이 붙을 수가 없다. 만삭 사진을 찍었을 때도 그녀의 모습은 배만 볼록하고 팔다리는 앙상했다.
예민하다면 나 또한 꽤나 예민한데, 현아 앞에서 나는 명함도 못 내미는 존재였다. 스스로의 태도가 일과 중에 거슬렸거나, 마음이 상하는 일이 있으면 하루 종일 거기에 골몰해 신경을 쓴다. 그러면서 “아까 내가 너무했나?”, “그 사람 괜찮겠지?” 하면서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곁에 있는 사람까지 걱정인형으로 만들어버리는 존재. 그런데도 나는 그녀가 싫지 않았다. 아니, 늘 좋았고 사실 무슨 짓을 해도 싫어 질 것 같지가 않았다. 앞으로도 평생 그렇지 않을까?
현아는 내 스승이기도 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의 내 정신세계는 지금보다 염세적이고 비관적이어서 말투가 조금 까칠하기도 했는데, 그런 내가 이토록 부드러운 사람이 된 것은 팔할이 그녀의 잔소리 때문이었다. 언젠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분에게 무심코 아저씨라고 부른 적이 있었는데 그 일로도 잔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랑 별로 나이차이도 안 나 보이는데, 니가 아저씨라고 부르면 저 사람 마음이 어떻겠어.” 순간 나는 그녀의 예민함이 보통의 그것이 아니라 섬세함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바탕으로 자신을 자꾸만 검열하기에 극도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사람. 그게 현아였다.
또 패션에 대해서도 배웠다. 현아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호불호가 그다지 없는 사람이었고 엄마 중심의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단지 그냥 스무살이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몰랐고 알려고 들지도 않았다. 패션에 대해서는 더욱 문외한이어서 엄마가 골라준 옷이 최고인 줄 알았다. 현아는 이미 스무살 때부터 자신의 스타일을 명확히 하는 것으로, 내게 패션을 가르쳐 주었다. 어느 날 직장생활한지 삼 년쯤 되었을 때 동료 한 명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본인 스타일이 되게 명확해 보여요. 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딱 떨어지게 본인 스타일을 아는 사람 같아요.” 사실 나는 내 스타일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른다. 그런데 가끔 친한 동생들이 “어머! 이거 언니 스타일이야!”라고 골라주는 것들을 보면 내가 좋아하는 아이템이 맞다. 살아가면서 내게 말을 걸고 다가오고 내 몸에 둘러지는 많은 것들에 현아가 묻어 있다.
살면서 누구나 비련의 주인공도 되고, 심심한 무성영화도 찍으며, 시트콤의 등장인물처럼 우스꽝스러운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내가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낸 하루, 촌각을 다투는 시간 안에서 마음 졸이며 죽기 살기로 시트콤을 찍어 댔던 하루는 바로 그 날. 2017년 9월 16일. 내 베스트프렌드 현아의 결혼식 날이었다. 현아의 결혼식은 내 여름휴가와 살짝 맞물려 있었다. 여름휴가를 마친 다음날이 현아의 결혼식이었기 때문에 여독을 풀지 못하고 결혼식에 간다는 약간의 압박감이 있었지만, 그런데 정말 그럴 줄 몰랐지. 꿈에도 몰랐다. 내게 그런 강력한 천재지변이 올 줄.
2017년 내 여름휴가는 마카오가 반, 다낭이 반으로 구성된 자유여행이었다. 마카오는 갈 때마다 좋았고, 다낭은 물가가 저렴해서 ‘갑부 코스프레’를 하며 즐겁게 놀았다. 마카오 날씨가 예상보다 심하게 더웠다는 것을 빼고는 반전이 없는 여행이었다. 극적인 반전은 늘 마지막에 열린다. 여행 마지막 날, 바로 그 천재지변이 왔다. 그 날 나와 친구는 다낭에서 가까운 호이안에 다녀왔는데 비가 얼마나 많이 오는지 발목까지 오는 롱 원피스가 허리까지 젖었었다. 그 물먹은 치마를 걸레 짜듯 비워가며, 한참을 비와 낭만에 취해 걷고 있는데…. 그때였다. 별안간 내가 지구 밖으로 순간이동 한 줄로 착각했다. 호이안 전체가 정전이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된 거다. 휴대폰 플래시에 의지해 그곳을 겨우 탈출하고 미리 예약해 놓은 공항행 픽업차량에 무사히 탑승했다. 호이안 탈출기는 거기서 끝났지만 문제는 우리를 정전으로 인도하고 물폭탄을 내리게 한 그 원인이 무엇이었냐는 데에 있다.
공항에 도착하니 이상하게 쎄한 느낌이 왔다. 항공기 데스크의 담당 직원이 말하길, 태풍으로 인해 대부분의 비행기가 결항되었다고 했다. 오 마이 갓. 저절로 영어가 나오고 손발이 짜릿하다 못해 하얗게 질리는 새벽녘이었다. 공항에선 답이 없어 급하게 하루 잘 숙소를 예약하고, 그곳에서 나와 친구는 공포스러운 선잠을 잤다. 한 번의 마사지 타임과 한 번의 ‘값싸지만 호화로운 식사’를 더 할 수 있었지만 나의 뇌세포를 가득 채운 것은 오로지 하나. ‘현아 결혼식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겠지?’ 그것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다낭발 마카오행 비행기에 제때 올랐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오전 6시. 서울역에서 포항까지(그녀의 결혼식은 포항에서 치러짐) KTX로 세시간 이내면 도착하니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하지만 내 계획에는 필수적인 세 가지가 결여되었으니, 첫째가 결혼식 복장이 내 짐 안에 없었다는 것이고(특히 구두가) 둘째가 씻는 시간을 안배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대망의 셋째! 바쁜 날에는 왜 이다지 변수가 많은지, ‘변수의 여유’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변수는 당장 마카오에 내리자마자 생겨났다. 우리의 비행기 티켓은 갈 때 두 번, 올 때 두 번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에 마카오에서의 환승은 필연적이었다. 그런데 이 간단한 걸 왜 변수라 칭하느냐. 비행기 환승 시간은 원래대로라면 50분. 하지만 태풍의 영향으로 마카오에 늦게 도착하여 실상 20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편하게 환승 통로를 이용해서 갈아타면 될 것을 멍청하게 출국 게이트로 나가버렸다. 이때 정말 반 미친 상태가 되었다. 뛰고 또 뛰어서 겨우 비행기 앞에 도달했을 때. 원래대로라면 당연히 비행기를 못 탄다. 상황을 이해해준 마카오 현지 공항 관계자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마카오발 인천행 비행기를 놓쳤음이 틀림없다. 그럼 베스트프렌드의 결혼식을 보는 것은 꽝이고. ‘아이고’ 소리가 입에 베어서 헐떡거렸다.
결혼식에 가서 사진을 찍지 않을 거라면 씻지 않아도 됐다. 그리고 나는 남의 결혼식에 가서 사진을 잘 남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건 나의 현아 결혼식이고 내가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다. 씻지 않고 가는 게 불가능하다. 인천공항에서 짐을 찾자마자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서 공항 사우나에 갔다. 씻는데 눈에 뭐가 들어가거나 말거나 상관없었고(아프긴 하지만), 머리카락도 떡지지만 않으면(린스를 안 해서 바스락거렸지만) 됐다.
비싼 공항 사우나에서 이십분이 채 안되어 밖으로 나왔고 회사에서 신는 구두를 챙기려면 지하철을 타야 했다. 동선상 집보다는 회사가 가까웠다. 얼른 시간 계산을 해봤다. 이 삼십분만 지체되어도 승산이 없는 게임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환승역 홍대입구. 정해진 시간에 2호선을 타지 못하면, 결혼식에 가지 못한다. 나는 전심전력으로 뛰었다. 맨몸으로 뛰는 것도 아니고 이십 키로가 넘을 5박 7일치의 캐리어를 끌면서. 몇 초에 한번은 시계를 보며 우당탕탕 뛰었지만 ‘아 이번 지하철을 놓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안 된다. 나는 급기야 일종의 꼼수이자 묘수를 내었다. 미친 상태가 아니라 미친 사람이 되었다. 조금씩 소리를 내면서 달리니까 앞에 있던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면서 주춤하고 옆으로 비켜섰다. 그래 이거다. 나는 목소리를 조금씩 높이면서 달려나갔다. 어딘가에서 뭔가 폭주하듯이 달려나가는 소리에 사람들은 홍해 갈라지듯 나를 위해 길을 터주었다. 119 앰뷸런스가 따로 없었다.
그렇게 예정된 시간의 지하철을 간신히 타고 잠깐 숨을 고르며 대충 화장을 하고 짐 속에서 최대한 단정한 옷을 하나 골랐다. 결혼식 복장이라 하기에는 좀 뭣하지만 그래도 영 아니라고 하기에도 그런 옷. 마침내 회사 앞이다. 후닥닥 달려서 회사 건물의 호텔 로비로 갔다. 그 때 나는 이미 서울역발 포항행 표를 취소했다. 광명발 포항행 열차를 타야만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호텔 직원분에게 내 신분을 밝히고 최대한 예의 바르며 긴박한 표정과 목소리로 택시를 잡아 달라고 부탁했다. 친절한 직원은 웃으면서 내 요청을 들어준다. 사무실에 올라가 낚아 채 듯 구두를 챙기고서 날 위해 대기한 택시를 탔다. “KTX 광명역이요”라고 외쳤지만 택시에서 내리게 되었다. 기사분의 사유는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나는 따질 겨를이 없는 응급 상태였다. 미칠 것 같은 순간이었다. 그때가 최고의 한계였다. 지친 몸은 쉬고 싶었지만 마음이 현아와의 마지막 통화를 불러들였다. 비행기가 뜨지 못한 태풍의 날 우리의 목소리.
꼭 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한계 상황에 도달하면 못 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태풍이 왔고 비행기는 하루 넘게 지연되었고, 이건 천재지변이니까. 현아도 이해해주겠지. 실제로 현아는 내게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그 목소리의 어조는 꼭 와주었으면 하고 바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목소리를 조금만 곱씹어보아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차릴 수 있다. 나는 씩씩하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 택시를 잡아타서, 광명에서 포항, 포항에서 결혼식장까지 신랑입장시간 십여 분을 남기고 골인했다. 그렇게 마주한 그녀. 순백의 신부. 늦지 않게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기능을 멈춰버린 뇌와 그제야 후들거리는 다리를 꼭 붙잡고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마 굴곡에서부터 내려오는 속눈썹은 부채춤을 추는 것처럼 파르르 떨렸고, 레이스 면사포에 반쯤 가리워진 그 자태는 눈물 나게 아름다웠다. 나는 눈물 그렁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람들 틈 사이에서 나를 발견한 현아가 활짝 웃어준다. 이렇게 좋은 날을 내 눈물로 망칠까봐, 나는 웃으면서 눈물을 삼켰다. 너무 고와서, 너무 기뻐서 무척이나 아름다운 너를 보는 내가 벅차서 그렇게 눈물을 삼켰다. 그녀가 사랑하는 아버지와 함께 입장하며 결혼식이라는 무대에 오르고 인생의 두 번째 발걸음을 신랑과 함께 한다. 그 때 나는 진심으로 바랐다. 그녀의 인생에 부디 아픔이 없기를. 혹여 눈물 흘릴 일이 있더라도 지금의 나처럼 기쁨으로만 울기를.
나조차도 잊어버린 내 많은 날들을 기억하는, 소중한 나의 친구 현아야. 아직도 내가 씹던 껌을 맨 손으로 받아주는(그녀는 이런 사람이 내 이상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음) 사람은 너 밖에 없어. 처음 봤을 때 우리는 나름대로 철든 스무 살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철없고 어렸지. 그렇게 한 해 두 해 같이 쏘아 올린 세월이 쌓여서 십여 년이 훌쩍 지났다. 지금은 둘 다 너무 철이 들어 버린 것 같아. 그렇게 조금씩 엄살이 없어지고 차츰 어른이 되어가는 거겠지. 둘 다 뾰족하고 예민했는데 세상이라는 거친 파도에 단련되어 외모도 마음도 조금씩 둥글둥글해졌나봐. 네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어. 고마워. 너를 만난 건 내 인생의 엄청난 행운이자 행복이야. 아기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도 너 자신을 잃지 마. 너의 에너지, 너의 예민함, 너의 스타일. 앞으로도 계속 내 삶과 함께하고 내게 묻어나올 너의 것들. 사랑한다. 나의 베스트프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