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안 산문집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중에서
"이거 살릴 수 있을까?"
어릴 때 우리 동네 아주머니들은 키우던 화분이 시름시름 앓으면 우리 엄마에게 가지고 왔다. 엄마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도 죽어가던 화분을 받은 지 한 달만 되면 기가 막히게 살려냈다. 엄마는 초록을 좋아했고 나는 겨우 그런 화분 나부랭이에 마음 쓰는 엄마를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난달. 이해하기 힘든 일을 시작했다. 독립한 지 얼마 안 되어 집 안에 생명이 나 밖에 없으니 자꾸 이상해서 화분을 덜컥 사버린 거다. 그것도 두 개씩이나. 하나는 멜라니 고무나무, 하나는 율마. 사실은 무얼 살까 고민했는데 각각 다른 매력에 빠져, 외모만 보고 두 개 다 집으로 배달시켰다.
실제로 보니, 미모는 멜라니 고무나무의 승리였다. 매끈하고 단정한 모양새가, 집 안 어디에 두어도 다 잘 어울렸다. 거기다 생명력이 강하며 키우기 쉬운 식물이라 한다. 매력이 넘치는 아이다. 문제는 율마였다. 첫인상은 약해서 더 까칠한 척하는, 어른 흉내 내는 애 같다고 해야 하나. 여기에 추가적으로 설명서에 적힌 충격적인 이야기. 잘 자라려면 물, 햇빛, 바람 세 가지 요소가 갖춰져야 한다고? 이삼일에 한번 물을 줘야 한다고? 첫날부터, 아까운 생명이 괜히 내게 와서 '흙과 혼연일체가 되겠구나' 싶었다.
입이 방정인 건지 내 예감의 적중률이 높은 건지 율마가 죽어간다. 열흘간 잘 자라주었는데. 고무나무와 다르게 만지는 재미가 있었는데. 푸릇푸릇하고 까칠까칠한 잎을 살살 만져보면 촉감은 은근히 보드라웠고 향내는 레몬처럼 상큼했는데. 지금은 소나무 겉껍질처럼 자꾸 색이 변하며 말라가고 아래로 축축 쳐진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내가 영양제를 먹듯이 너도 먹어라. 화분에 영양제를 꽂는다.
살아나라. 제발 좀 살아나라. 속으로만 애끓다가 화분의 위치를 이쪽으로 옮겨보고 저쪽으로도 옮겨본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자식들 위해 애쓰는 부모님 마음이 조금이나마 이와 비슷할까. 자꾸만 율마 녀석에게 내 마음이 간다. 마음이 쓰이면서 자꾸 보게 되고, 아침에 눈뜨면 율마의 상태부터 체크한다. 죄책감인지 애정인지 애잔한 마음이 엉켜서 율마를 보살핀다.
그러다 문득 열흘 동안 멜라니 고무나무에 시선조차 주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혼자서도 굳건히 잘 있는 아이니까, 신경 쓰지 않는 만큼 마음도 향하지 않았나 보다. 물론 고무나무는 건강하다. 때깔도 반질반질 여전히 곱다. 다시 화분을 산다면 백 퍼센트 고무나무를 고를 거다. 장점이 많으니까 고무나무가 정답이다. 온통 율마에게 마음이 가 있어도, 나는 고무나무를 고른다. 세상 사람들은 어떤 아이를 선택할까? 편안해서 정답임이 명확한 존재와 함께함이 힘겹지만 마음이 쓰이는 존재. 굳이 내가 둘 중에 한 곳에 속한다면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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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아래 링크의 책에서 전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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