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대에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한 임원을 통해서, 나는 먼 미래를 상상해 보곤 했다. 이 분은 내게 어머니 같기도 하고, 할머니 같기도 한 그런 분이다. 그분의 젊은 패션 감각과 낭랑한 목소리, 철저한 업무능력은 늘 나를 각성상태에 놓이도록 하기에 존경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그분에게 단 한 가지 슬픔이 보인다면, 십여 년 전 부군께서 회갑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는 것. 여전히 부군을 매우 많이 사랑하고 그리워하시는 게 내 눈에 절절히 보여서 그 아련함이 눈빛에 반짝일 때마다 나 또한 고개를 떨구게 된다. 그리고 부부간의 사랑이란 그토록 숭고한 것이구나 다시금 깨닫게 된다.
임원께서는 여고 동창생들을 만날 때마다, 부러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신다고 한다. 칠십 대의 나이에 아직 현역 임원으로 일하면서 아픈 곳 없이 건강하니 얼마나 좋으냐고. 그런데 그 말씀을 내게 전달할 때의 그분 눈빛을 보고 나는 먹먹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눈빛에는 그리움과 사랑, 잊혀지지 않는 보고픔으로 가득 찬 별이 박힌 것 같았다. 순간, 노후를 함께 보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애틋함이 그녀의 가녀린 온몸을 감싸 아지랑이 온기처럼 솟구치는 것을 보았다. 우리 삶에 영원을 기약할 수 없음은 오히려 찰나의 순간을 더욱 절실히 여기라는 신의 선물이 아닐까. 그분 눈의 별에서 인간 생의 선물을 본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좋아한다. 시대와 사람을 어루만지는 특유의 정서가 좋다. 그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내레이션이 있다.
"지금보다 절실한 나중이란 없다. 나중이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기에. 눈앞에 와 있는 지금이 아닌, 행여 안 올지 모를 다음 기회를 얘기하기에 삶은 그리 길지 않다. (tvN '응답하라 1997')"
어쩌면 오늘 이 삶이 우리 삶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 지금도 짧은 작별의 인사 없이 수많은 생명들이 저 너머의 세상으로 향해가고 있다.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이 얼마나 먹먹한 것인지 아는 나이가 되면 사람을 기억 속에만 간직한다는 게 얼마나 아픈 것인지도 알게 된다. 단 한 번 얼굴을 만지고, 눈을 맞추고, 숨소리를 듣고, 그동안 잘 지냈는지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는 그 목소리만이라도 들으면 좋으련만.
오늘 밤에는 우리가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 꿈에 나와 원 없이 안아보고, 회포를 풀고 다정한 목소리에 취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신의 선물, 그 유효함의 시계는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아 생각보다도 턱없이 짧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