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청안 에세이작가 Apr 22. 2020

선물의 본질

이청안 산문집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중에서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고, 똑같이 가을에 태어났지만 어찌 이리 다를까 싶다. 나와 동생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물건처럼 사람의 형질을 설명한다는 것이 우습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나는 전형적인 문과계 인간이며 동생은 타고나길 이과계 인간이다. 글자를 읽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 생각하지 않고 결과물을 데이터로 분석하길 좋아하는 동생은 그래서 이렇게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가 아닌지. 동생과 나는 세 살 터울인데, 내게는 아직도 그 아이가 그냥 어린 남자애 같다. 이제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서 제법 어른 흉내를 내는데도 내겐 계속 미운 일곱 살 같아 보인다. 게임하길 좋아하고 여자 친구와 꽁냥거리기를 좋아하는 철딱서니.


지난 시월 동생 생일이었다. 이른 아침의 독서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같이 쇼핑이나 할까 해서 연락을 했다. 마침 근처에 결혼식이 있어 다녀온다 하기에 시간 맞춰 만날 수 있겠다 싶었다. 가을은 남자에게도 멋 부리기 좋은 계절이니 옷 한 벌 사주고 싶었기도 했고. 워낙 뭘 고르는 안목이 없는 녀석이라서 무엇을 사더라도 ‘같이 사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그를 기다리며 카페에서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시간을 때우고 있었는데, 대뜸 이렇게 문자가 왔다. “누나 그냥 집으로 와. 나도 집으로 가고 있어.” 아니 이게 무슨 멍멍이 풀 뜯어먹는 소리지? 내가 네 녀석을 기다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맥이 빠져서 동생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그런데 이유를 묻는 나의 질문에 녀석의 대답이 더 가관이다. “그냥 다 귀찮아. 쇼핑은 더 귀찮아. 옷도 필요 없고. 내 생일인데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면 안 되는 거야?” 아, 난감하다. 굴러들어 온 복을 차도 유분수지. 정말 나와 손발이 안 맞는구나. 나는 할 수 없이 카페에서 홀로 나와 백화점 세일 코너를 서성거렸다. 그때 동생에게 어울릴만한 신발이 눈에 띄어, 해당 코너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어 보냈다. “이 신발 어때? 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 내 물음에 녀석의 대답은 딱 두 글자였다. “별로”


좋은 누나가 되는 건 참 힘들다. 평소 입 밖으로 욕을 내뱉진 않지만, 내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욕을 할 수 있는 상대이자, 내 입에서 욕이 나오게 만드는 사람은 단 한 명 내 동생이다. 좋은 누나가 되기 위해서 사랑하는 동생의 생일날만큼은 마음속에서도 욕을 발사하면 안 되니, 그것 참 힘들다. 지금 막 입술에서 욕 비슷한 것을 분출시키려고 근질거리는데, 그때였다. “그 신발 말고 그 옆에 신발 괜찮은 것 같아.” 동생이 그렇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마음에 들어했던 신발은 빨간 운동화였는데, 동생의 눈에 든 것은 김 빠진 콜라 같은 느낌의 거무튀튀한 색깔이었다. 동생에게는 발랄한 색이 훨씬 더 잘 어울리는 편인데, 이 아이가 고르는 것들은 하나같이 이상하게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국 백화점에서 내가 사 온 그의 생일 선물은 발랄한 빨간 운동화가 아니라 거무튀튀 콜라색 운동화였다. ‘그래. 내가 신을 신발도 아니고, 네가 좋다는데.’ 집으로 돌아와 동생이 원했던 신발을 내밀었다. “선물이야. 생일 축하해. 우리 땡이(어려서부터 온 가족이 불러온 동생의 별명)” 나는 욕을 하지 않고 웃으면서 동생의 생일을 축하했다. ‘이 녀석이 오늘 부글부글 끓었던 내 마음을 알려나. 알 리가 없지. 아직도 철없는 이 아이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동생이 신발 디자인을 확인하더니 “오! 누나로써 최고 울 누나!”하고 외친다. 그 말은 아주 오래전부터 동생이 제 휴대폰에 저장 해 놓은 내 번호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군 제대 이후 새 휴대폰을 장만하고 동생이 내 이름을 저렇게 저장했는데, “땡아 사람 뒤에는 ‘로써’가 아니라 ‘로서’를 붙이는 게 맞아” 하면서 잘난 척을 하려다가 말았다. 동생은 이과계 형질의 사람이니까. 그냥 두자는 생각에서. 제가 좋다는 물건을 사다 주니, 저렇게 애교를 부리는구나 싶어서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동생을 군대에 보내고 훈련소에서 첫 택배가 도착했을 때 그 아이의 옷가지를 보고 참 많이도 울었다. 정작 아빠 엄마는 그러지 않으셨는데 나 혼자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했다. 잠은 잘 자는지 누가 괴롭히지는 않을지. 적응은 잘하고 있는지. 마침 입소하자마자 남북관계가 예민해져 혹여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길까 신경이 곤두서기도 했고, 그 아이의 막내다운 애교도 무척이나 그리웠다. 매일 붙어있을 때에는 종종 싸우기도 하고, 날 선 말들을 주고받기도 했는데 없으니 이렇게 보고 싶다. 동생의 부재가 그의 가치를 내게 증명했다.

     

동생에게는 더디게 느껴졌겠지만, 시간은 공평하게 흘러 어느덧 그 아이의 전역이 한 달 남은 시점이었다. “면회 오면 안 돼?”하고 전화가 와서 온 가족이 함께 면회를 갔다. 이제 얼마 안 남은 이때 바쁜 가족들을 왜 오라 가라 하냐며 괜스레 핀잔을 주니, 아이가 이렇게 말한다. “누나 이제 무한도전을 세 번만 보면 전역인데, 시간이 너무 안가. 그래서 더 힘들어.” 말은 안 했지만, 속에서 이 나라에 대한 원망이 불같이 끓어올랐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라에 대한 원망이라기보다는, 분단의 현실, 그리고 남자라면 국방의 의무를 져야 하는 힘든 시간이 있다는 것. 그게 어린 동생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도리어 내가 동생 대신 이가 갈릴 정도로 억울하기도 하고, 이 땅의 젊은 친구들이 군대 문제로 얼마나 아플지 안쓰럽고 안타까워 손끝이 뜨겁게 부들부들 떨렸다. 젊디 젊은 시퍼런 아이들이 인생의 황금기를 나라 위해 바치고 있었다. 훈련이 없는 날이나 동생처럼 말년 병장이 된 친구들은 족구로 시간을 때워가며, 흐르지 않는 날짜를 세어가며 청춘의 숱한 밤을 흘려보냈다. 얼마나 시간이 안 가서 힘들었으면 그동안 가족들이 면회 간다고 해도 오지 말라던 아이가 먼저 손을 내밀었을까. 동생이 군대에 있던 시절을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애잔하다. 또 저 녀석이 안쓰럽다. 잘해줘야 한다. 우리나라 군필자 모두 다 잘해줘야 한다. 장한 사람들.       


그래, 사람이 누군가에게 잘해준다는 것은 내가 해주고 싶은 대로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끔 토대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선물도 그렇다. 내가 주고 싶은 것이 아닌,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준다. 말하지 않아도 헤아리는 사람이 된다. 사실은 매우 어렵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되는 것, 주고 싶은 것을 내 마음대로 주지 않고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는 것. 이번 동생 생일에 깨달은 선물의 본질이었다. 선물의 본질은 다름 아닌, 상대를 헤아리는 것이었다.



그동안 동생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여기 적어본다. 마치 연예인들이 영상편지를 보내듯이. “사랑하는 내 동생. 태어나줘서 고마워. 네가 내 동생이라는 게, 내가 너의 누나로 살아가는 게 항상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이 세상, 서로에게 선물이 되면서 건강하게 든든하게 잘 헤쳐가 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그를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