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롱베이의 기억들
베트남 하노이 여행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은 하노이에서 머물다 하롱베이(석회암의 구릉 대지가 오랜 세월에 걸쳐 침식되어 생긴 섬과 기암이 바다 위로 솟아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음)로 1박 2일 크루즈 투어를 떠나는 날이었다. 그 아침, 리무진 버스에 오르자 주르륵 눈물이 났다. 왜 울었는지는 비밀이다. 너무 많은 생각이 들어서 왜 울고 있는지조차 잊게 되는 때가 있다. 그야말로 사유가 존재를 집어삼키는 때 나는 내 눈물에 압도되었다. 왜 울고 있는지 잊을 만큼.
아마 구름이 해를 가린 흐린 날로 기억한다. 고독이 해의 맑은 기운을 모두 삼켜버린 그런 날씨. 언제 걷힐지 모르는 구름 사이로 눈물을 머금은 습한 기운이 내 기분까지 모두 가져갔다. 창밖의 풍경에 매료되어 시작된 눈물 한 방울이 잊었던 추억을 소환하고, 나의 우울감을 극대화시켰다. 아마도 한 시간 넘게 하롱베이행 버스를 기다린 탓에 지쳤던 것일까. 눈물을 슬쩍 훔쳐내다가, 버스를 기다리던 호텔 로비에서 만난 아이가 생각났다. 내게 분홍색 사탕 두 알을 주었던 아이. 그 아이를 다시 만난다면 나는 사랑이 무어냐고 묻고 싶었다. 어리석은 나에게 답을 줄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내 눈물의 이유는 구름에 가려진 해처럼 답이 없는 사랑에 대한 갈구였다.
아이는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귀엽고 의젓한 남자아이였다. 아이와 가족들은 그 날 아침 사파(베트남 소수민족의 도시, 해발 1650m 산악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12개 부족들이 거주하고 있다)로 간다고 했다. 한참 동안 아이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이에게 직접 물었다. 학교는 언제 들어가느냐고. 아이는 약간 긴장하다가 "아빠 나 아홉 살에 학교 들어가?"하고 되물었다. 아이 아버지와 내가 웃으며 “여덟 살”이라고 정정하니 아이는 수줍게 웃다가 이내 그 나이 또래 아이답게 장난을 쳤다.
호텔 테이블에는 손님들을 위한 배려로 알록달록한 사탕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그 사탕을 가지고 더하기 빼기 놀이를 하면서 동생과 장난을 치고 놀았다. 아이가 몇 알을 까먹어보더니 분홍색 사탕만을 골라서 몇 개를 제 바지 주머니에 넣는다. 아마 그 색깔이 가장 맛있었나 보다. 아이 아버지가 장난을 제지하다가 나를 슬쩍 보더니, “누나도 좀 드려” 하고 말했다. ‘누나’라는 호칭이 사뭇 어색하고 쑥스러워서 아이를 쳐다보았더니 분홍색 예쁜 사탕 두 알을 내 손에 꼭 쥐어준다. 때마침 그들의 사파 지역 가이드가 나타났다. 이제 이들 가족과도 작별이구나 하는 마음에, 나는 순간 절절하게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 아버지는 내 마음도 모르고 가이드에게도 사탕을 주면 어떻겠냐고 아이에게 권한다. 아이는 어쩐지 내키지 않아 보인다. 표정이 딱 그래 보이더니, 순간 제 호주머니에 있던 사탕이 아니라 테이블에 있던 사탕을 집어서 가이드에게 무심하게 주고 홱 돌아선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가이드보다 아이에게 우선순위로 느껴진 나는 기분이 좋았다.
낯선 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는 일은 내 인생에 흔치 않은 일이지만, 어쩐지 이 아이와는 꼭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누나랑 같이 사진 찍을래?” 나의 그 말에 나도 아이도 헤벌쭉 웃고 말았다. 나는 나를 ‘누나’로 지칭한 것이 어이없이 우스워서 웃었고, 아이는 그냥 기분이 좋았나 보다. 지금 다시 사진을 보아도 아이의 미소는 어쩜 이렇게 기분 좋게 환한지. 아이는 자신의 동생에게도 나와 함께 사진 찍을 것을 권했다. 동생은 내가 싫은지, 사진이 싫은지 멀찍이 도망가려는 시늉을 했다. “그냥 좀 찍어 주라고!” 아이는 동생에게 살짝 역정을 냈다. 그리고는 내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아이가 화가 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왜 대체, 처음 보는 이 아이에게 이렇게도 마음이 가는 걸까. 마음은 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아이도 나도 그 순간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
“누나 괜찮아.”하고 나는 눈웃음을 지었다. 그러니 그제야 아이가 안심했다. 안도하는 그 표정에서 아이의 마음도 보였다. 우리 엄마는 내게 “사람은 누구나 나이 들수록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의 속뜻을 그 날 정확하게 확인했다. 이렇게 다 보이는구나. 사람에게 얼굴이 있는 것은 이래서구나. 어려서부터 거짓을 이야기하면 홀라당 티가 다 나버리는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가끔은 선의로 마음을 숨기곤 했는데 ‘그래도 다 보였겠다’ 싶어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아이의 해맑음이 나를 반추하게 했다.
기암괴석과 석굴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었던 행복하고 경이로운 하롱베이 투어가 끝나고, 나는 다시 하노이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일이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날. 하노이에서 유명한 L마트로 기념품을 사러 갔다. 그런데 자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리 한국인이 많은 마트라 해도 이 목소리는 너무 익숙한데, 어디서 들어봤더라. 고개를 들어 얼굴을 확인한 순간, 나는 탄성을 지를 뻔 했다. 그 익숙한 목소리는 하롱베이로 떠나던 날 호텔 로비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아이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사실 나는 아이 아버지 옆에 있던 아이의 얼굴을 마주하고 너무 반가워서 아이를 번쩍 안는 상상을 했다. 찰나였지만, 내 마음의 크기는 분명 그 정도였다. 아이도 나와 같은 마음일 줄 알았는데, 표정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아니다. 아이는 벌써 나를 까마득하게 잊었나 보다. 그 순간, 아이의 표정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날 내게 주었던 사탕 두 알만큼의 애정이 아직 남았는지에 대해서.
은희경 작가는 산문집 ‘생각의 일요일들’에서 사랑이란, “짧은 행복이 너무 황홀해 길고 긴 고통을 견디는 일”이라고 하였다. 아이의 표정에서 그 문장이 생각났다. 그래서 아이를 다시 만났지만, 묻지 못했다. “아이야, 우리 인생에서 진짜 사랑이란 무엇일까?”하고.
마트 안에서 오고 가며 몇 번을 더 마주쳤지만, 나에 대한 아이의 애정과 흥미는 며칠 전 함께 사진을 찍을 때의 그것이 아니다. 사랑의 변화를 다시 곱씹고 L마트를 나서며, 성인이 된 아이와 마주하는 괴상한 그림을 그렸다. 아이는 나보다 더 큰 어른이 되어있었다.
어른이 된 아이 : 누나 하롱베이 가봤지? 그런 게 사랑이야.
나 : 무슨 말이야? 하롱베이라니.
어른이 된 아이 : 그곳이 경이로웠다며? 행복했다며?
나 : 그랬지. 그게 왜?
어른이 된 아이 : 잠깐의 경이와 행복, 사랑이 시작돼도 끝나도 그게 사랑이야.
나 : 아직도 잘 모르겠어.
어른이 된 아이 : 에이 누나 헛살았네.
맞아, 아무리 살아도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어른스러운 쉬운 사랑. 하롱베이같이 경이롭기만 한 기억의 시작과 끝. 그게 사랑이면 나는 잘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