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청안 에세이작가 Feb 05. 2020

회사 다니면서 책 쓰기 : 직장인의 이중생활  

예비작가의 글쓰기 고뇌와 원고 마감의 압박, 그리고  체력의 한계에 대해

   



   지난 금요일 일상적인 퇴근 이후 갑자기 콧물이 폭발하고 목이 칼칼해져 숨쉬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이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동선을 모두 살펴보아도 나와 마주칠만한 교집합은 없었지만 확진자 중 한 명이 지하철 1호선을 탄 적이 있단 사실이 걸렸다. 아니겠지, 하다가 일단 증상에 대해서 찾아보았다. 근데 봐도 잘 모르겠다. 초기 증상의 경우 감기와 구별하기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열이 난다는 특징이 있었고, 나는 감기 증상이 있지만 열이 없었다. 내 몸의 감각으로 지금의 이 고통을 진단한다면 분명 단순한 감기였다. 일단은 팀장님에게 문자를 넣었다. 나의 몸상태를 설명하고 저 출근해도 되겠냐고 넌지시 여쭈었다. 팀장님이 짧고 굵게 한마디 했다. “출근해서 옮겨줘~ (오해 없으시길, 원래 유쾌하게 말하는 스타일이며, 농담하듯이 장난을 즐겨하는 분입니다. 진짜 옮기라는 얘기가 아니라, ‘너는 코로나 바이러스일 리가 없다’ 정도의 뜻입니다.)” 이 분의 반응을 보니 내가 확진자일 확률은 지극히 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예감이 “얘! 너는 진짜 아니다!”하고 말했다.  

    

   월요일이 되고 병원을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일생 겪어왔던 평범한 감기라고 한다. 그런데, “몸 상태가 많이 안 좋네요.”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감기로 인해 코와 목의 상태가 안 좋을뿐더러 전반적으로 컨디션 조절 및 심신의 안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뜨끔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내 몸에게. 요즘 체력의 한계가 왔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다. 목디스크 혹은 사각근 증후군으로 추정되는 질환에 시달리면서 꾸역꾸역 생활했더니 이제는 손끝까지 찌릿찌릿 저리다. 더 심각해지기 전에 병원에 가야 하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다. 지난 몇 달간 내가 생각해도 참 장하게 살았다. ‘장하게’가 아니라 ‘징하게’ 산 것인가?      


  특히 12월에는 정말 죽을 뻔했다. 11월 말이 되어서야 또 상기하게 되곤 하지만, 매 해 12월은 늘 바쁘다. 10월 말부터 이어져온 사업계획(나는 우리 팀 부분만)을 마무리해야 하고 사회공헌 활동과 같은 연말 행사와 연례적인 마감(1년간 놓친 업무가 없는지 다시 되돌아보는데 해가 바뀌어 처리하면 절대로 안 될 업무들도 다시 정비하고, 특히 이 시기에 미등록 전사 사용인감을 조사하는데 전년과 대비에 일일이 대조하는 작업에 꽤나 시간이 걸린다.) 신년 다이어리와 연하장 제작 같은 업무들을 챙기다 보면 신년식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온다. 크리스마스 부근에 연차를 하루 정도 내어 쉬고, 새해 신년식 리허설을 하면 그렇게 12월이 끝이 난다. 이렇게 적으니 업무량이 많아 보이지 않는데 매월 루틴 하게 처리하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하면서 12월에 굵직한 업무가 몰리다 보니 하루 종일 정신이 없는 채로 그야말로 손에 잡히는 대로 일을 처리하고 전투적으로 12월을 보낸다. 


   그리고 2019년(작년이라 부르는 것이 아직 너무도 어색한 2019년이다!)에는 5년에 한 번 돌아오는 국세청 정기 세무조사까지 받게 되어 더욱더 정신이 없었다. 세무조사에 대한 대응이야 재무 관련 부서의 소관이지만 근거자료는 요청사항대로 현업 실무자가 전달할 수밖에 없다. 내 컴퓨터에는 기존에 작업해 놓은 과거의 온갖 결과물들이 고스란히 다 들어 있었다. 누가 원하든 그 즉시 자료를 제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가(국세청)가 원하는 특정한 양식은 내가 기존에 작업해 놓은 자료와 차이가 있었고, 나는 기존 작성 자료를 모두 구색 맞추어 변경해야 했다. 의미도 성과도 없지만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육체노동 즉 직장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업무, 데이터를 주어진 양식에 맞게 새로 입력하고 정리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내 필사적 12월이 허물어지고 새해가 오고 있었다.      


   보통 아침 여섯 시 반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다시 오후 여섯 시 무렵이 되면 일터의 무게를 모두 털어내지 못하고 조금 짊어져 퇴근을 한다. 일거리를 집으로 들고 오지 않지만, 혹시 일과 중 미비했던 것이 없는지 짧은 두뇌 풀가동으로 시뮬레이션을 몇 번 해보고 내일 출근 후 처리할 것들을 대략 생각한다. 집에 오면서 혹은 집에 돌아와 회사 생각을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봤지만 나는 그게 잘 안 되는 사람이다. 문제는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출근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노력을 쏟아부을 '다른 일'이 있다는 데 있었다. 나에게는 땅거미 짙어질 때 시작되는 제2의 노동이 있으니까. 


   저녁을 적당히 챙겨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 원고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데드라인을 맞추려면 글이 써지지 않아도 글을 써보려 노력하는 노동시간을 감수해야만 했다. 퇴근 후 기본 4시간 동안은 쓰고 고치고 쓰는 습관을 들여갔다. 한 번에 각 잡고 썼을 때 쓰는 양이 점점 늘어갔다. 어떤 날은 저녁 8시부터 쓰기 시작해 새벽 3시까지 쭉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매일 ‘그분’이 내게 방문할 수는 없다.(작가들은 보통 글이 잘 써질 때 ‘그분’이 오셨다고 표현한다) 어떤 날은 한 꼭지도 채 완성하지 못해 좌절할 때도 있었다. 나름대로의 ‘슬럼프’라 여겨질 시기가 오니 하다 하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 내가 뻥튀기 기계가 됐으면 좋겠다. 작은 글감이 기계 안으로 쏙 들어가면 크고 먹음직스러운 뻥튀기 같은 글들이 탁탁 쏟아져 나왔으면 좋겠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잡념에도 시달렸다. 글을 쓰는 동안 몰입의 시간은 엄청난 즐거움으로 다가오지만, 너무 몰입해서 스스로를 슬프게 만드는 것도(내가 쓰고 있지만 쓰면서 슬프고 아파서 주륵주륵 울어버릴 때가 있다) 제대로 몰입하지 못해서 진척 없는 모니터를 응시하며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일도 내게는 또 다른 이름의 노동이었다. 그렇게 몸이 ‘아작’ 소리를 내기 시작했나 보다.    

  

   점심식사를 하고 간단히 부서 상사들과 커피타임을 가지는데 과장님 한분이 “책은 다 써 가느냐”고 물어보셨다. “네 거의 다 썼어요.”라고 대답했더니, “와 정말 작가들 대단해. 어떻게 그렇게 머릿속에서 줄줄 나오지? 책 한 권을 벌써 다 썼어?”라고 한다. 아 정말 내가 답답해서 원.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이다! 과장님은 그저 나를 치켜세워주려고 한 말이었겠지만 근래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본 적이 없으니까 하는 소리일 것이다.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정말, 글이 줄줄 나올 리가 있나. 그럴 리가 없다. 정말 그럴 수는 없다. 하이데거가 말했다. “인간은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사건으로, 개별 존재는 보편 존재의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글을 쓸 때는 개별 존재인 나와 내 근처의 타인들에 대해 서술하는 경우가 많지만 읽어주는 보편 존재(독자는 보편 존재로 자리하다가 내 글에서 공감과 감정의 동요를 느낄 때 개별 존재로 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극히 짧은 내 소견이며, 독자를 '특별하지 않은 존재'로 규정함이 아니니 오해 않으시길 바라며 하이데거 이론 자체의 철학적 문제도 고려 않아 주시기를)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특히나 두 존재가 상호작용하며 맥락을 산으로 끌고 가는 경우에는 엄청난 숙고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다.(사실 계속되는 기침으로 이 글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당초 목적지가 없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감기로 기침을 하는데 가장 아픈 곳은 목도 가슴도 아니고 어깨이다. 기침이 켁하고 터져 나오면 통증이 어깨에 가서 달라붙는다. 기침 한 번에 세상 전체가 쿵쾅대는 것 같다. 아직 삼십 대인데 몸이 이 모양이라니. 허허 헛웃음만 나온다. 입으로 간신히 숨을 쉬면서 생체 기관이 적재적소에 모두 자리해 제 기능을 하고 있음에 뜬금없이 감사하다. 감기 바이러스의 침투로 내 코를 막아버린 것도 연신 기침을 해대는 것도 코 대신 입으로 숨 쉬는 방법에 적응하는 것도 모두 내 신체의 순기능이겠지. 여태껏 버텨주어 정말 고맙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 내가 그렇게 막무가내는 아니니, 부디 몸이여 내게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 고지(원고 마감)가 눈 앞이다. 




   *** 감기 &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조심하세요! 굿 나잇 & 굿 데이 *** 







***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linkClass=&barcode=9791185257945





***  책 읽어드리는 불면증 오디오클립 '책 읽다가 스르륵'을 연재 중입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5305







https://brunch.co.kr/@baby/23



https://brunch.co.kr/@baby/20



https://brunch.co.kr/@baby/21



https://www.instagram.com/p/B8CFasFJGTe/?utm_source=ig_web_copy_link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버티게 하는 것이, 나를 지배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