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사장이나 회장이 되진 못하겠으나
오늘은 부장님과 단둘이 밥을 먹게 되었다. 이런 날은 부서 업무나 커리어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가 오가기도 하고, 내 시선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장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얻는 것이 많은 날이다. 대화를 나누다가 일련의 이슈로 어느 날의 내가 ‘회사 직원들의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한’ 주제로 짧은 글을 썼던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다. 그것은 당시 ‘일하기 즐거운 조직문화’를 만들어보자는 부장님의 과제 하에 생각나는 사항들을 정리한 것이기도 했고, ‘좋은 기업은 직원을 기업가로 키워낸다’는 명언에서 영감을 얻은 문장의 연속이기도 했다. 날짜를 보아하니 글을 쓴 지 1년이 훌쩍 지났다.
당시에 내가 쓴 글을 중간부터 마무리 부분까지 소개한다. 글은 부서원들이 부장님의 과제를 완수하기 전에 다 같이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하는 부분을 건드리자는 취지였는데, 결과적으로 여차 저차 하여 과제 자체가 무산된 것이나 다름없어, 내 글은 온전히 내 생각에서만 그치고 말았다.
항상 느끼지만 일정 이상의 규모를 갖춘 회사에서 '인사총무부'의 역할은 그 어떤 조직보다 중요하며, 우리의 일은 사명감 없이는 해내기 어려운 막중한 무게에 눌려 있습니다. 물론 우리들 중 누군가 하나가 빠져도 '회사'는, '인사총무부'는 잘 돌아갈 것입니다. 다만 남겨진 사람들이 조금 불편할 뿐. 그리고 떠들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우리의 업무를 평가절하 해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차곡차곡 처리하는 일상적 업무와 일련의 과정들이, 사측과 근로자 측 시선의 간극을 좁히는 창구로써 활약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사람이라면 누구나 '중요한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중요'가 인사총무부 구성원으로의 '주관적 중요'라면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의 '중요'는 '객관적 중요'입니다. 일 다운 일, 내가 돋보일 수 있는 일' 그것은 곧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이며, 회사에서 공로를 치하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보이지 않는 일 - 수만 가지'가 모여서 한 가지 큰일을 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소중해 보이지 않았던 일들이, 큰 숫자를 좌지우지하는 일 하나를 떠받들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인사총무부의 업무를 '필요하지만, 돋보이지는 않는 일', '중요하지만,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 일'로 정의하게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저 그런 인사총무부의 일원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가 되면 어떨까요? 후일 누군가의 입을 통해 이런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면요? "있잖아. OO(회사 이름) 인사총무부는 말이야. 그때 그 '레전드 멤버' 이전과 이후로 완전히 나뉘거든. OO(회사 이름)의 가치는 그때 이후로 철저히 달라졌어." 이런 훌륭한 평가를 남기게 된다면 말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부장님 이하 소수의 인원으로, 버거울 정도로 다양한 업무영역에 매진하며 '좋은 인사총무부'로서의 가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유연히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파도와 혼연일체 되어 서핑보드에 몸을 맡기는 것처럼 자연스레 우리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통의 OO(회사 이름)에서 '시대의 흐름'을 더하고 회사 내부에서 우리 자신은 물론, 구성원 모두에게 새로운 '일의 의미'를 찾게끔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 '의미'가 곧 사람의 성장을 이끄는 촉진이며 인사총무부의 '일하기 즐거운 조직문화' 활성화 기획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시작하며, 이 글은 숙제의 일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저를 제외한 다른 분들께서 다음 주 회의에 아이디어를 가지고 오실 때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찾아보다가 자료를 하나 첨부합니다. 아래 '내가 하는 이 일이 전통이 될 것이다!'는 제가 자주 보는 글입니다. 개인적으로 아래 글의 작성자 ‘여준영 대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한번 읽어보십시오. 업무에 대한 정신력이 바닥났을 때 이 글을 읽는다면 내 일에서 '의미'를 찾게 됩니다. 아마 저희 팀장님을 제외하고는 제가 하루 종일 뭐하는지 잘 모르실 것입니다. 가끔은 저도 '내가 하루 종일 대체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업무 영역의 특성이기도 하고 디테일에 연연하는 업무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고 '내 업무보다는 타인의 업무를 먼저 도와야'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성격이라서 그렇기도 합니다. 그런데 온갖 잡일의 컬래버레이션 속에서 멘털이 후들거릴 때 이 글을 한번 읽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리고 정말 전통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1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바뀌었느냐고 물으신다면 할 말이 없다. 일상적인 업무는 그대로고 새로운 업무가 계속 생겨나긴 하지만 그렇다고 훌륭한 평가로 남을만한 일들이 쌓이지도 않았다. 여전히 하루 종일 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는 나날이 많으며, 윗분들이나 상사의 기대치에 부응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업무에 사명감을 가지고 일한다.
오늘 부장님과의 대화에서 나는 몇 가지 당장 적용 가능한 아이디어도 이야기하고 차후에 이런 프로젝트도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역시나 차후로 생각한 부분들은 차후에나 적용이 가능할 성싶다. 부장님은 “지금 당장은 아니나, 그런 아이디어들이 조직문화를 바꾸고 빛을 발할 날이 올 것”이라고 얘기해주셨다. 그냥 나 듣기 좋으라고 하신 말씀이 아닌 것을 안다. 천명의 사람이 있다면 천 개의 장점이 있을 것이다. 오직 나만이 가진 장점도 분명 있을 것이고. 그 한 가지는 꼭 발휘해보고 싶다.
앞으로도 나는 이 전통의 회사에서 일의 의미를 계속해 찾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 또한 회사 안에서 소소하고 즐거운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줄 것이다. 매일 매 순간을 즐겁게 일하도록 만들어주는 조직에 감사한다. 나의 누적된 고민이, 그리고 회사 내에서의 여러 경험과 아이디어와 업무 스킬이 먼 훗날 이 회사의 작은 전통이 되어 남을 수 있도록 중요치 않은 일이라 할지라도 지속할 것이다. 지치지 않고, 멈추지 않고. 흩어졌던 많은 조각들을 잘 모으기만 해도 성장이 촉진되고 전통의 탑이 조금씩 쌓일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내가 회장도 사장도 아니요, 그렇다고 후에 사장이나 회장이 될 것도 아니겠으나. ^^
*** 이 글은 에세이 베스트셀러 ‘너의 사회생활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에 수록된 초고입니다.
***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 불면증 오디오클립 '책 읽다가 스르륵'을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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