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출 난 재능 없이 부족한 점 투성이인 나라도 딱 하나 평균 이상으로 괜찮은 것이 있긴 있다. 바로 국어 실력이다. 그렇다고 언변이 유창하고 문장이 수려하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국어 실력은 철저히 시험을 기준으로 한 말이다. 다들 얄밉겠지만 난 국어 시험에서는 큰 노력 없이 성과를 얻어가는 편이다. 이 모든 영광을 남아선호사상에 사로잡혀 딸인 나의 교육을 등한시한 어머니와, 학생들에게 기출 유형별 공략법을 주입하는 대한민국 공교육에 바치고 싶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취학 전 아동부터 초등학생 때까지 나는 학습열이 정말 높았다. 여기에 부모의 애정 어린 교육열이 더해졌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부모님 모두 장남인 오빠를 끔찍이 생각했고 나는 책을 사면 뒤따라오는 부록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우리는 다 알고 있다. 결핍은 절실함으로 이어지고 무시당한 경험은 오기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내가 시험 좀 잘 보고 오면 엄마와 외할머니에게 자주 들은 일화가 있다. 엄마가 서너 살 쯤 된 오빠에게 한글을 가르치려고 앉혀놓고 낱말 카드를 보여주고 있었다고 한다. 하나씩 읽어준 다음 “자, 이게 무슨 글자지?” 물으면 오빠는 한참이 지나도 입을 떼지 못했다. 그때 어깨 너머에서 낱말 카드를 눈여겨보고 있던 내가 “비행기!”하고 대신 대답했다. 엄마는 이번에 다른 글자를 보여줬고 이번에도 내가 “바나나!”하고 대답했다. 그렇게 나 혼자 낱말 카드를 다 읽었는데 그럴수록 엄마는 내가 기특하다기보다 먼저 대답하지 못하는 오빠가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어쨌든 내가 한글을 빨리 뗄 기미가 보이자 엄마는 어쩌다 시간이 나면 나를 앉혀놓고 동화책을 읽어주셨다. 기역니은도 안 배운 나는 엄마가 읽어주는 문장을 통째로 외워서 낱말 단위로 글자를 익혔다. 그러니까 ㄷ이 디귿인지는 몰라도 ‘돼지가’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의 특훈 아닌 특훈이 국어에 눈을 뜨이게 해준 걸까. 이후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국어 공부가 가장 쉬웠다. 아니, 공부를 따로 할 게 없었다. 그냥 수업 시간에 듣고 이해하고 시험을 보면 다 풀만 했다. 중학생 때는 교내 도서관에 들락거리며 일부러 어려운 소설책을 읽었다. 이해가 되든 안 되든 표현과 구조가 복잡한 문장을 보고 나면 시험에 나온 지문이 쉬워 보였다. 고등학생 때는 수많은 모의고사로 수능 맞춤형 독해 실력을 갈고 닦았다. 솔직히 3년 동안 비슷한 문제를 풀다 보니 출제자의 의도가 훤히 보일 지경이었다.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아도 1등급이 나왔고 못 보면 2등급이었다. 국어는 나에게 평균 등급을 올려주는 보너스 과목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수능이 끝난 이후로는 이런 실력을 딱히 써먹을 곳이 없었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게 국어 교사였지만 12년 동안 대한민국 공교육을 몸소 체험하며 불신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라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는 죽어도 싫었다. 특히 입시용 국어 문제에 질려도 너무 질려버렸다. 국립국어원에 들어가고 싶다는 바람이 있긴 했지만 그럼 대학원까지 진학해서 긴 공부를 해야 했다. 하지만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 도저히 대학원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국어와 전혀 무관한 일을 하며 20대를 보냈고 어느 새 정신을 차려 보니 30대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국어에 관심은 꺼지지 않아서 자기만족 차원에서 POD 방식으로 책을 만들었다. (『작가를 위한 우리말 사전』, 『다시 우리말 공부』 절찬 판매 중. 지금 바로 검색해 보세요!) 그러다 문득 학창시절 국어 시험 운발이 아직 살아 있는지 궁금해졌다. 검색해 보니 가장 대표적인 국어 시험이 국어능력인증시험과 KBS한국어능력시험이었다. 충동적으로 둘 다 시험을 접수했다. 이런저런 일로 실질적인 준비 시간이 닷새밖에 안 되었지만 시험은 원래 평소 실력대로 보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맘이 편해졌다. 더구나 어디 제출할 것도 아니고 그냥 자기 점검 아닌가. 못 본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해서 국어능력인증시험을 봤는데 아뿔싸. 너무 만만하게 봤다. 듣기에서 잠깐 딴생각을 하다 문제를 줄줄이 놓쳐버렸다. 이미 망했다는 생각에 속으로 젠장만 수십 번 외친 것 같다. 결과는 2등급. 내심 1등급을 기대했기에 아쉬웠다. KBS한국어능력시험을 볼 때는 야간 알바에 다른 시험 준비까지 겹쳐 사흘 연 속 밤을 샌 상태였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시험을 봤다. 시험이 끝나고 나서 맞춤법을 이것저것 확인해 보니 내가 고른 답이 대부분 맞았다. 최소 2등급은 받을 수 있겠지 안심이 되었다. 운 좋으면 1등급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KBS에서 전화가 왔다. 이번 시험에서 최고점을 받으셨다고 시험 후기를 써 달라고 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싸, 아직 나 안 죽었어!
사실 그 때 나는 한국어교원에 관심이 있었다. 꾸준히 이어진 국어를 향한 관심과 남에게 설명하고 알려주는 걸 좋아하는 적성의 접점을 찾아보니 그게 딱이었다. 쉽게 말하면 외국인이나 한국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국어를 알려주는 직업이다. 대부분 시험 점수를 목적으로 공부하는 한국인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애정과 호기심으로 학습 동기가 충만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게 훨씬 보람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을 준비했고 1차 필기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다.
사실 책상 앞에 진득이 앉아 공부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내 빈약한 집중력에 알맞는 공부 방법은 책상을 떠나 공부하는 것이엇다. 일단 수험서에서 공부할 부분을 찾아 두어 장 찢는다. 그걸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산책할 때, 밥 먹을 때, 신호등을 기다릴 때 틈틈이 꺼내 읽었다. 낯선 용어는 계속 중얼거리면서 누군가에게 설명하듯이 개념을 정리했다. 이렇다 보니 시험 날짜에 가까워질수록 수험서는 표지만 멀쩡하지 속은 넝마에 가까워졌다. 시험보고 와서 책을 버릴 땐 얼마나 속이 시원하던지.
아무리 좋아하는 분야라고 해도 자격증 공부는 썩 즐겁지 않았다. 자격을 검증받는 건데 달가울 리 없다. 더구나 기출 문제를 반복해서 푸는 과정을 거치며 자주 짜증이 치솟았다. 살면서 언제까지 사지선다, 오지선다에서 답을 고르게 될까. 이런 시험 문제가 과연 실제 업무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어쩌면 자격증 시험이 진짜 요구하는 건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들여하 하는 시간과 돈과 노력, 그 모든 기회비용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준비하는 게 사시, 행시도 아니고 시험 점수야 어떻게든 공부만 하면 나올 수 있는 난이도였다. 중요한 건 일 년에 걸쳐 준비하면서 이렇게까지 이 일을 하고 싶은가 끊임없이 되묻는 경험이었다. 솔직히 중간에 하기 싫어진 적도 많았지만 그걸 다 이겨내고 보니 이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해졌다. 다른 핑계로 이걸 못하게 되면 정말 억울할 것 같았다.
이제 2차 면접 시험만 통과하면 자격증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섣불리 설레발을 치고 싶진 않지만 어쩌면 내년에는 생애 처음으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