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 굳이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오해는 금물이다. 절세미인이라서가 아니다. 사회가 정한 미인형을 기준으로 줄을 선다면 나는 꽤 하위권에 속할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예뻐 보이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없다는 뜻이다.
근본적인 까닭이 뭔지는 모르겠다. 화장하는 내 모습을 거울로 보는 게 싫다. 콤팩트로 얼굴을 두드리고 크림을 문지르고 선을 그리고 이 모든 행위가 초라하고 한심해 보이고 때로는 가증스럽다. 무엇보다 화장품에서 나는 향기가 싫다. 내 몸에서 향기가 나는 걸 악취가 나는 것만큼 못 견디겠다. 이게 무슨 무의식의 발로인지 누가 설명해줄 사람.
예쁜 여자가 누리는 크고 작은 이득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요즘엔 미모가 경쟁력이고 자기 관리를 증명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잔소리는 넣어 두시라. 경쟁력에는 다양한 분야가 있고 자기 관리는 말 그대로 자기가 자신을 관리하는 건데 왜 남의 평가를 신경 써야 하는가. 그리고 화장을 안 하는 여자를 두고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 짓는 시선이 있는데 나는 이 의견만큼은 정면으로 반박하고 싶다. 나는 누구보다 나를 소중히 여기지만 화장을 하는 게 그걸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키지 않은데 억지로 화장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자신보다 남들의 시선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 아닌가.
만약 내가 예쁘장한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외모를 가꾸는 것에 지금보다는 더 관심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일찍이 알았다. 나는 그냥 나처럼 생긴 사람이지 사람들이 어여삐 보는 얼굴은 아니라는 걸. 그게 아쉽거나 슬프지 않았다. 그냥 다른 방면으로 내 장점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성인 여성이 맨 얼굴로 다니는 걸 곱게 보지 않았다. 누군가는 게으르다고 했고 누군가는 예의가 없다고 했다. 그때마다 확실히 알았다. 외모지상주의가 사람들의 시야를 심각하게 좁혀놨다는 것을.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좋아하는 게 뭐가 잘못인지 묻는다면 당신은 외모지상주의가 뭔지 잘 모르는 사람이다. 외모지상주의는 그런 게 아니다. 외모 하나로 그 사람의 품성과 인격을 모조리 점치는, 생각보다 훨씬 잔인하고 위험한 관점이다.
흥미로운 점은 내게 화장 좀 하라는 소리를 한 사람의 99%는 여자라는 사실이다. 어느 정도 친해졌다 싶으면 “너는 왜 화장을 안 해?”라는 질문이 꼭 튀어나왔다. “구름 씨는 화장하면 참 예쁠 텐데.”하는 말도 흔하게 들었다. 그게 정말 아쉬워서 한 말이 아니란 것쯤은 나도 안다. 사회에서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때 탄 사람의 관점에서 해석하자면 “같이 다니기 창피하니 화장 좀 하지.” 혹은 “무슨 자신감으로 화장도 안 하고 다니시는지.”로 들렸다.
아예 시도조차 안 한 건 아니다. 화장이란 걸 하긴 해봤다. 영화관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간 자리에서 받은 수모가 계기였다. 여러 명이서 동시에 면접을 봤는데 나에게 면접관이 던진 말은 딱 한 마디, “화장을 안 하셨네요?”였고 그 이후 아무 질문도 받지 못했다.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여자 직원에게 화장은 기본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이해했다. 그놈의 생기 있어 보이는 얼굴이 그 공간의 인상을 좌우하니까. 테마파크에서 일할 땐 연한 화장이 필수였다. 그땐 어쩔 수 없이 파운데이션, 비비크림, 마스카라, 아이브로우, 립스틱, 틴트를 넣은 파우치를 챙기고 다녔다. 그러다 일에 적응하면서 점점 화장을 줄여갔다. 나중엔 입술에 립밤만 바르는 것이 전부였다. 화장으로 책잡히기 싫어서 남보다 더 열심히 일했고 선임님이나 책임님은 어느 순간부터 내 맨 얼굴을 눈감아주셨다.
내가 생각하는 단정한 외모는 화장 여부와 상관없이 청결과 위생에 신경 쓴 상태이지만 이 사회는 그 정도로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요즘도 화장 좀 하라는 소리를 듣고 다닌다. 아파서 안색이 안 좋은 건데도 “그러니까 화장 좀 해.”라는 소릴 들었다. 그놈의 생기. 아플 때도 여자는 늘 생기 있어 보여야 하는가보다. 왜 혈색 없이 돌아다니는 게 실례지?
K-뷰티가 전세계에서 활약하는 이 시대에 화장의 필요성에 의문을 품는 나는 남보다 한참 뒤떨어진 사람인 게 분명하다. 그래도 평소 느낀 바를 진솔하게 말하자면 왜 살갗에 잡티가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되는지 의문이다. 살다 보면 주근깨, 잡티가 생기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 아닌가. 왜 어른이 아이 같은 뽀얀 살갗을 유지하는 데 큰돈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살갗은 신체를 방어하는 기관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방패 같은 건데, 방패에 흠집 하나 없으면 그게 어디 방패인가.
혹시나 내가 화장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나는 남들이 화장하고 다니는 건 전혀 거부감이 없다. 본인과 잘 어울리게 화장한 사람을 보면 매력적이고 멋있어 보인다. 내가 원하는 건 화장이 필수가 아닌 선택 사항이 되는 것이다. 안 하겠다고 선택한 사람을 그저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사람은 하고 안 하고 싶은 사람은 안 하고. 이게 그렇게도 큰 욕심인가.
생긴 대로 살자. 이게 내 가치관이다. 그래도 몸이 보내는 신호는 무시하지 않는다. 내 피부는 건성이라 뾰루지가 잘 생기지 않는 대신 날씨가 쌀쌀해진다 싶으면 꼭 하얗게 각질이 일어난다. 그럴 땐 동네 마트에서 산 바디로션 하나면 만사형통이다. 샤워하고 나와서 얼굴, 손, 몸까지 한 번에 쓱쓱 바르면 끝이다. 이렇게 바르는 것도 가을부터 초봄까지이고 여름에는 땀이 난다는 이유로 아예 아무것도 바르지 않는다. 얼마 전 통을 비운 바디로션도 400밀리리터 용량인데 만 2년 만에 겨우 다 썼다. 앞으로도 나는 쭉 맨 얼굴로 살고 싶다. 혹시 계속 화장과 관련해서 상처를 받는다면 민낯이 흉이 아닌 사회를 찾아 떠나야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