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난 뒤에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곱씹고 곱씹을수록 더 머릿속 깊이 뿌리를 내린다.
초등학생 때 나는 친구들하고 노는 것보다 공부가 더 재밌는 모범생이었다.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조용히 공부만 하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아님 호기심이 생겼는지 이런저런 말을 걸다가 대뜸 자기 집에 놀러가자고 했다.
나에게 친구 집은 듣기만 해도 설레는 말이었다.(친구가 없어서 그랬던 걸지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이런 질문을 늘 마음에 품고 살았던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는 보통이나 평범한 범주에 속한 걸까.’에 답을 내리고 싶었다. 내 오랜 불안인, 세상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은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그 친구의 집에 간 나는 친구가 부엌 찬장에서 꺼내준 초콜릿도 먹고, 나중에 오신 친구 어머니가 정갈하게 차려주신 저녁도 먹고, 거실에서 좀 놀다가 친구 방을 구경했다. 이제야 말하지만 그 친구는 초등학교 5학년에 키가 170센티미터였다. 신체 발육이 빠른 만큼 감수성도 더 빨리 성숙해진 걸까. 그 친구 방은 문제집과 학습자로 꽉 찬 내 방과 달리 자기만의 취향으로 가득했다.
서랍장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인형은 하나하나 즐거운 추억이 깃들어 있을 것 같았고, 문에 붙은 영화 포스터 속 수염 난 남자의 눈빛은 날카로우면서도 야성미가 철철 넘쳤다. 거기다 옷걸이에 아무렇게 걸쳐 있는 가방이나 외투는 하나같이 어른스러워서 아동복을 입고 있는 내가 한참 동생이 된 기분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형광등을 켜지 않고 침대 머리맡에 있는 따뜻하고 아늑한 조명만 켜고 생활하는 것까지 나에겐 모조리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 모든 멋을 완성하는 건 그것들이 당연하다는 듯 바닥에 깔린 러그 위에 편히 앉아 이것저것 대충 설명해주는 친구였다.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친구 어머니가 “밖이 깜깜한데 그냥 자고 갈래?”라는 말을 듣고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전화해서 허락을 받는데 엄마가 영 못마땅한 듯 말씀하셔서 행여나 못 자게 될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긴 통화 끝에 결국 내 고집이 통해서 다행이었다.
잠자리를 준비하는데 친구가 침대 위에 베개를 하나 더 놓았다. 침대 밑에 이불을 깔고 따로 잘 줄 알았기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란히 누워 잠들기 전까지 가만가만 이야기하는데 마음 같아선 이대로 밤을 지새우고 싶었다. 하지만 이 바람은 안타깝게도 현실이 되지 못했다.
“아함, 이제 졸리다.”
“나도.”
친구가 하품을 하자 괜히 나도 졸린 척 눈을 비볐다. 그런데 이만 자자는 친구가 침대 옆 탁자 서랍에서 CD플레이어를 꺼내는 게 아닌가. 친구는 내 귀에 이어폰 한 쪽을 끼워주고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라면서 지오디의 6집을 재생했다.
“잘 자.”
“너도.”
친구는 정말 금방 잠들었다. 하지만 나는 갈수록 잠이 달아났다.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노래를 들으면서 잠드나? 오늘 잊어버린 숙제는 없는지, 틀린 문제는 왜 틀렸는지 반성하며 잠들었던 나에게 이렇게 편안하고 감상적인 잠자리는 말 그대로 문화 충격이었다. 그날 친구 덕에 처음 들어본 지오디 6집 타이틀곡은 〈보통날〉이었다. 솔직히 명곡이라는 친구의 극찬이 그리 와닿지는 않았다.
오 어떡하죠 나 그대를 잊고 살아요
오 미안해요 나 벌써 괜찮은가 봐요
잊지 못할 사랑이라 생각했었는데
잊혀져가네요 어느새
남자애를 좋아해 본 적도 없는 내가 이런 가사에 공감할 수 있을 리가. 하지만 음악의 힘은 참 신기하다. 애송이에 지나지 않는 내 마음이 울컥했다. 암적응한 눈으로 친구 방을 훑어보는데 이 밤을 꽤 오래 기억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 순간을 18년 이상 기억하고 있으니, 예감이 제대로 적중했다.
그 날 이후 엄마에게 CD플레이어를 사달라고 졸랐지만 어림도 없었다. 영어 듣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도 집에서 컴퓨터나 라디오로 들으면 되지 뭐 하러 귀 안 좋아지게 이어폰으로 들으려고 하느냐는 핀잔만 들었다. 조르고 졸라 인생 첫 CDP를 사게 된 건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나이를 먹으면서 내 취향은 지오디에서 J-POP으로 넘어갔다. 주변 환경의 영향이 컸다. 그 당시 어울리던 친구가 애니메이션 광팬이었다. 그래서 나까지 이누야샤나 코난 OST에 푹 빠져 살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오아시스를 찬양하며 오아시스 노래를 모르는 이들을 만나면 침을 튀어가며 영업하기 바빴다.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동아리 선배가 소개한 국카스텐을 인생 밴드로 지정하고 전곡을 반복해서 들었다. 휴학생일 때는 한 선배가 공원에서 통기타에 김광석 노래를 열창하는 걸 보고 첫눈에 반해 3~4년을 짝사랑했는데, 그 시기에는 사람도 잘 안 만나고 방구석에서 주야장천 김광석 노래만 흥얼거렸다. 그러다 20대 후반이 지나자 미카, 라우브, 찰리 푸스, 숀 멘데스 등 팝송이 더없이 감미롭게 들렸다.
지금은? 지금은 그냥 아이돌 노래가 좋다. 발랄하고 귀여운 노래든, 카리스마 넘치고 박력 있는 노래든 상관없다. 2024년이든 2014년이든 시대를 가리지 않고 듣는다. 이어폰은 휴대전화와 더불어 외출할 때 꼭 챙기는 필수품이 된지 오래다. 노래 하나로 지루한 풍경이 그럴 듯한 감성을 입고 고요했던 마음에 파동을 그린다.
한 번 꽂힌 노래는 언젠가 꼭 다시 찾게 된다. 노래가 고막으로 흘러드는 순간, 과거 그 곡을 수없이 반복해서 들었던 지점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과거의 나를 만나고 돌아오면 신기하게도 다시 현실을 버틸 힘이 생긴다. 과거와 지금 사이 시간을 가늠하다 보면 그때가 그립기도 하지만 이만큼 살아온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다. 앞으로 내 생에 몇 곡이나 책갈피로 쓰일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책갈피가 몇 개가 생기든, 첫 번째 책갈피의 위치가 초등학생 5학년 겪은 ‘보통날’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 줄 이어폰이 잘 들리지 않아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바꿨다. 충전해서 이용하는 게 썩 맘에 들진 않지만 산 지 18일 만에 고장 나 버린 줄 이어폰을 또 사긴 아까웠다. 무조건 아날로그만 고집하기에는 꼬인 줄 때문에 골치 아플 일이 없어서 편하다. 하지만 이어폰을 나눠 낄 땐 줄 이어폰만큼 설레는 게 없다. 섣불리 움직이다가 상대방 이어폰이 빠질까 봐 조심하게 되는 움직임, 상대방도 나만큼 거리를 예민하게 조정하고 있다는 느낌, 이 모든 긴장감 속에서 엿보는 상대의 노래 취향. 이걸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어떻게 경험하겠는가. 언젠가 음악을 같이 듣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면 그땐 다시 줄 이어폰으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