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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름 Oct 11. 2024

???일

    요즘은 뭘 보든 브랜드를 먼저 따지는 사람들이 많다. 명품이나 유행에 무관심하고 철저히 내 취향과 주머니 사정에 맞춰 상품을 고르는 나 같은 소비자에게는 참 적응하기 힘든 분위기이다. 옷, 신발, 가방, 휴대전화, 시계, 자동차, 아파트까지 브랜드의 가치가 곧 소유자의 가치가 되는 상황에서 소유물로 날 평가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하고 부담스럽기만 하다.


    어떤 물건이든 저마다 쓰임새가 있다. 그것이 사용자의 상황과 필요와 잘 들어맞는다면 다른 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우산은 나의 마지막 희망이다. 옷이나 신발을 사면 주변에서 꼭 “이거 어디 꺼야?”하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우산만은 단 한 번도 그런 소리를 못 들었다. 아직까지 우산은 사람들이 비를 막아준다는 본래의 용도에만 오롯이 집중해서 보는 몇 안 되는 물건 중 하나이다. 덕문에 마음 놓고(?) 내가 원하는 기준에만 맞춰서 산다.


    지금 생각해도 실소가 나오는 경험이 하나 있다. 몇 해 전,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쓰고 집 앞 카페에 갔다. 자리가 다섯 군데 정도 있는 자그마한 카페였다. 나는 차를 주문하고 맨 안쪽에 자리 잡았다. 흘러나오는 아이돌 음악을 속으로 따라 부르면서 맞은편의 출입문에 시선을 두었다. 그때 양복을 차려입은 중년 남성 대여섯 분이 들어와 카페 안이 순간 떠들썩해졌다. 언뜻 들리는 대화를 들어 보니 근처 예식장에 하객으로 온 것 같았다. 그중 우산을 든 사람이 반나마 되었다. 실비가 내리고 있어서 우산 없이 오신 분도 옷이 그렇게 젖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 분들은 가끔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주문한 커피를 기다렸다. 그 사이 빗줄기는 굵어졌고 작달비가 쏟아졌다. 잠시 뒤 점원이 커피가 다 준비되었다고 알렸고 그들은 각자 커피를 챙겼다. 일회용 잔인 걸 보니 곧 나갈 분들이었다. 그런데 그중 한 분이 출입문 옆 우산꽂이를 뒤적이더니 어딘가 익숙한 우산을 쑥 뽑는 게 아닌가. 분명 내 우산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저지할 수 없었다. 내 우산은 흔한 잡화점에서 산 것이어서 얼마든지 똑같은 걸 산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그들은 유유히 카페에서 멀어졌다. 사이좋게 우산을 나눠 쓰며.

    ‘에이, 아니겠지.’


    괜한 걸 걱정하고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며 애써 의심을 외면하려 했다. 그러다 도저히 생각을 떨칠 수 없어 직접 우산꽂이를 확인해봤다. 10분 전에 꽂아뒀던 내 우산이 어디에도 없었다. 황당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내 우산을 뽑아간 그 분은 고민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실내를 한 번 둘러보며 눈치를 보지도 않았다. 당연하다는 듯 우산을 가져간 그 태도가 신기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왜 하필 내 우산이 그 사람 눈에 띄었을까? 주인 없는 우산처럼 보였나? 그러기엔 너무 깨끗하고 멀쩡했잖아. 그냥 내 우산 색이 맘에 들어서?’


    별 생각을 다 하다가 나중엔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우산이 그렇지, 뭐.’

    상대방에게 뭔가 빌려줄 땐 친분을 고려하고 언제쯤 돌려받을 수 있을까 염려하게 된다. 하지만 비 오는 날 우산만큼은 한껏 너그러워지는 법이다. 그리고 빌리는 사람도 그렇게 염치없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 기억을 조작하기로 했다.

    “학생, 미안한데 우산 좀 빌려줄 수 있을까? 당장 결혼식에 가야 하는데 쫄딱 젖을 순 없잖아.”

    “네, 그럼요. 보아 하니 이러다 곧 그칠 것 같은데 전 카페에 오래 있다 갈 거라서 상관없어요.”

    “고마워.”

    비가 그칠 거라는 건 내 바람이었다. 적당히 보슬비만 되어도 그냥 맞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두 시간이 넘도록 억수가 쏟아졌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카페 직원에게 이러저러해서 난처한 상황이라는 걸 알리고 남는 우산이 있으면 빌려달라고 했다. 감사하게도 직원 분이 장우산 하나를 빌려주셨고 나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


    사실 남이 가져간 걸 억울해하기에는 그간 부주의로 잃어버린 우산이 정말 많다. 카페, 식당, 도서관, 학원 등 실내에 들어왔다가 일단 밖에 비가 그쳤다 싶으면 까맣게 잊어버리고 두 손 가볍게 자리를 뜨기 일쑤였다. 얼마 못가 “아, 우산!”하고 떠올리면 다행이지 한참 와 버려서 생각나면 돌아갈 비용과 시간이 아까워 그냥 포기했다.

    놓고 간 게 겉옷이었으면, 가방, 지갑, 휴대전화였으면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찾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산이기에 몇 번이고 기회를 내던졌다. 비올 때는 손잡이를 꼭 잡고 한껏 의지했으면서. 왜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오래된 물건이 우산이 아닐까. 웬만해선 우산은 고장 날 일도 없는데. 나는 지난 우산들을 잃어버린 걸까, 그냥 버린 걸까.

    올  봄에도 우산을 하나 잃었다. 정확히 어디 두고 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날씨를 탓했다. 꾸준히 비가 내리면 실내에 얼마나 오래 머무르든 우산을 잊어버릴 일이 없을 텐데. 당연하듯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갈 텐데. 왜 날이 개어서 또 나를 한심하게 하는가. 정말 슬픈 일은 비슷한 경험이 하도 많다 보니 이제 상실감조차 흐릿하다는 것이다.


    서두에 밝힌 입장을 뒤집겠다. 이제 우산도 명품과 브랜드를 따져야 한다. 비싸고 유명한 우산이 유행했으면 좋겠다. 그럼 난 가장 먼저 그 유행을 따를 테다. 생전 처음으로 유행을 좇아 살겠다. 비싼 값을 치룬 그 우산을 나는 애지중지할 것이다. 혹시나 놓고 가지 않을까, 누가 훔쳐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한 몸처럼 가지고 다닐지도 모른다. 행여 어디에 두고 오면 얼마나 비용이 들든 찾아오지 않을까.

    

    맑은 날 우산은 한 손의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 짐이다. 또는 내 어깨를 내리누르는 가방의 무게를 더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산이 과시의 소품이 된다면? 그건 짐이 아니라 내 패션을 완성하는 필수 요소로 신분이 바뀐다. 굳이 책을 가방에 넣지 않고 한 팔로 안고 다니며 지성미를 뽐내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산이라고 왜 안 되겠는가. 우리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척 우산을 들고 다니며 멋있는 사람을 연기할 수 있게 된다.

    참 별 소릴 다하고 있다. 얼마 전에도 슈퍼에 우산을 두고 와서 번거롭게 두 번이나 한 자신이 짜증나서 홧김에 절대 현실이 되면 안 되는 일을 상상해봤다. 그나저나 지금 들고 다니는 우산은 내가 산 게 아니다. 집 근처 시장에 단골 국수집이 있는데 거기 사장님이 주셨다. 맑은 날 밥 먹으러 갔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 바람에 난처했는데 그날 주신 우산 덕에 비를 피했다. 다음에 갖다 드리려고 했는데 어떤 손님이 한참 전에 놓고 갔다고 하시면서 그냥 가지라고 하셨다. 그걸 거의 일 년째 쓰고 있다. 이 우산의 전 주인은 누구였을까, 종종 혼자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다. 내가 어딘가 두고 온 수많은 우산들도 누군가에게 유용하고 쓰이고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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