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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름 Oct 27. 2024

아이가 끈질기게 물어본 이유

아이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도대체 언제 철들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천방지축 분별없이 행동하고, 유치한 말장난을 입에 달고 살고, 다른 사람들 상관없이 자기 감정을 다 내보이고. 나도 어릴 때 저랬나 되돌아보게 되면서 가끔은 나도 애처럼 행동하고 싶어서 부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역시 예측할 수 없는가 보다. 마냥 철부지처럼 보이던 아이들이 순간 말문이 막힐 만큼 속 깊은 얘기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매일 나에게 “떡볶이 좋아해요?”라고 물어보는 아이가 있다. 처음엔 떡볶이가 아니라 햄버거였다. 햄버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다음엔 피자로 바뀌었다. 햄버거보다 피자가 좋긴 하지만 피자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었다. 아이는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물었고 나는 떡볶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이후로 매일 그 질문이 시작됐다. 한 번만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눈만 마주치면 물어봤다. 주변에서 그만 물어보라고 말릴 정도였다.

나중에는 그 아이가 입을 떼기도 전에 내가 먼저 “떡볶이 좋아하냐고? 어, 좋아해.”라고 말할 경지에 이르렀다. 그럴 때마다 아이나 나나 킬킬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정신없이 바쁠 때는 아이 말에 대답해주는 게 좀 귀찮았다. 두세 명에게 번갈아가며 수학 문제를 설명하고 있는데 급한 일인 척 “선생님, 선생님.” 불러놓고 기껏 한다는 소리가 “떡볶이 좋아해요?”였다. 안 들리는 척 무시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번엔 진짜 할 말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이런 생각에 결국엔 대답할 수밖에 없었고 내가 끝까지 외면하면 아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서 내 마음이 불편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물어볼 거야?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도 아니잖아.”

“선생님이 떡볶이 좋아한다면서요. 제가 물어보면 계속 좋아하는 음식을 떠올릴 수 있잖아요. 그럼 선생님 기분이 좋아질 거 아니에요.”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다. 심심해서 날 귀찮게 하는 줄만 알았는데. 그러니까 유독 내가 바쁠 때 집요하게 물어본 것도, 내 표정이 더욱 지치고 피곤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가 물어볼 때마다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떡볶이를 생각해서가 아니라 아이의 마음이 예뻤기 때문이다. 요즘도 그 아이는 내게 계속 묻는다. 단, 질문이 좀 바뀌었다.

“아침 뭐 먹었어요?”

이것저것 먹었다고 대답하면 “점심은요?”하고 묻는다. 사실 집에서 단출하게 먹는 편이고 아침에 먹은 걸 그대로 점심에 먹곤 한다. 내 대답을 들은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왜 이렇게 간단하게 먹어요?”

하루는 두유만 먹었다고 했더니 부실하게 먹었다고 잔소리를 했다. 아이에게 혼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이제 그 아이가 먼저 물어보지 않으면 서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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