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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름 Oct 27. 2024

비교가 익숙한 아이들

센터 학습실에는 타원형인 긴 책상이 있어서 아이들이 둘러앉고 중간마다 선생님들이 앉아 양쪽 학생들을 지도한다. 그런데 이런 구조는 아이들이 서로 마주보게 되어서 공부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다른 아이가 몇 단원을 공부하는지, 어떤 문제를 틀렸는지 다 볼 수 있어서 그걸로 꼭 약을 올린다.

“너 아직도 2단원이야? 난 3단원 들어갔는데!”

“그것도 몰라? 어떻게 그걸 틀려?”

그럴 때마다 진도는 비교하는 게 아니라고, 각자 맞는 속도가 있는 거라고 주의를 주지만 어쩐지 쉽게 고쳐지지 않아서 고민이다. 학교나 학원에서 비교 당하는 게 일상이 되서 그런 걸까. 도대체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습관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아이들을 칭찬할 때 더 신중해진다. 비교하는 말은 절대 쓰지 않으려고 하고 일의 결과보다는 과정을 칭찬해준다. 예를 들어 “오늘 푼 문제 다 맞았네.”보다는 “오늘 가장 집중해서 풀었네.”라고 말하는 편이다. 그리고 어떤 아이가 “제가 늦게 들어왔는데 ○○이보다 더 일찍 끝났죠?”라고 물어보면 “그건 중요하지 않아. 각자 센터에 머무는 시간이 다르잖아. 매일 꾸준히 공부하는 게 가장 중요해.”라고 일러준다.

학습실에서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참 흥미로운 모습이 많다. 아이들은 자기 공부는 하기 싫어하면서 남 가르쳐주는 건 좋아한다. 하지 말라고 해도 한다. 다른 사람의 실력이 늘 수 있게 도와주는 거라면 왜 말리겠는가. 풀이 방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그냥 자기가 풀어서 답만 알려주니까 문제다. 자기보다 진도가 늦은 아이가 옆에 있으면 자기 문제집을 들춰서 답을 알려준다. 빨리 풀고 나가고 싶은 아이는 그걸 또 그대로 받아 적는다. 그건 도와주는 게 아니라 공부를 방해하는 거라고, 직접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거라고 암만 말해도 소용없다.

“얘가 먼저 도와달라고 했어요!”

아이가 이렇게 따지면 내 입에서는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옆 사람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일만 해!”

내 의도는 옆에서 아무리 졸라도 혼자 고민하고 풀도록 내버려두라는 뜻이지만 행여나 아이들에게 이기심을 조장하는 말로 들릴까 봐 뒤늦게 걱정이 되었다. 안 그래도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까지 그런 말을 해버리다니. 명백히 실수였다.

어른들도 버티기 힘든 경쟁이 과열된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얼마나 숨이 막힐까. 아이들이 학습하거나 놀이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 가끔은 너무 경쟁에 집착하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된다. 한 아이는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인데 승부욕 때문에 공격성이 자주 드러난다. 게임을 하다가 자신이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안 하겠다고 중도 포기를 해버리거나 다른 아이 탓을 하며 화풀이를 한다.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받아쓰기에서 하나라도 틀리면 너무 어려운 문제를 냈다면서 눈물을 보이고 공책을 집어 던지고 “선생님 나빠요!”하고 소리친다.

져도 괜찮아, 못해도 괜찮아, 만회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 이런 말들이 아이들에게 통하지 않는 건 정작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아이들이 일찍이 알아버린 탓일까. 아이들을 지도할 땐 가장 빠른 길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옳은 길로 가야 한다는 걸 오늘도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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