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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름 Oct 27. 2024

아이가 어른스러워지는 순간

마냥 어려 보이던 아이들이 갑자기 철들어 보일 때가 있다. 바로 자기보다 어린 동생이 있을 때이다. 평소에 공부하기 싫어해서 늘 불량한 자세로 패드 학습을 하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있다. 동영상 강의도 대충 듣고 나오는 문제는 다 찍어서 넘기고 옆 친구와 끊임없이 장난치는 그런 아이다. 하루는 그 아이와 초등학교 1학년 아이 이렇게 두 명의 학습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공부하기 싫다고 떼를 썼다. 하기 싫다고 몸을 배배 꼬고 엎드려서 징징거리고 접이식 의자를 자꾸 달싹거리고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했다.

아이가 이토록 하기 싫어하는 건 바로 한글 따라 쓰기. 유치원생 때부터 한글 쓰는 걸 유독 어려워했던 아이인데 어리다는 이유로 언제까지 봐줄 수도 없었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학업에 지장이 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르고 달래봤지만 아이는 나가서 놀고 싶다고 칭얼거렸다. 공부가 끝나야 나가서 놀 수 있다고 해도 하기 싫다는 말만 반복하며 눈가를 촉촉히 적셨다. 그때였다.

“너 자꾸 그러면 한 장 더 늘릴 거야.”

5학년 아이가 제법 엄하게 경고했다. 아이들이 학습량을 줄여달라고 할 때 나를 비롯한 선생님들이 자주 쓰는 말이었다. 이 말을 들은 1학년 아이는 “안 돼!”하고 외치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러니까 얼른 해. 너 다하면 형이 이거 줄게.”

5학년 아이가 주머니에서 꺼낸 건 뽀로로 비타민 사탕이었다. 그걸 본 1학년 아이는 “맛있겠다!”하며 금방 화색이 돌았다. 1학년 아이가 사탕을 집으려 하자 5학년 아이는 요령 있게 사탕을 얼른 주머니에 넣고 다 하면 준다고 다시 한 번 약속했다.

그제야 1학년 아이는 성의 없는 글씨라도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록 한 단어 쓰고 딴짓하고 한 단어 쓰고 잡담을 하긴 했지만. 동생이 집중하기 못할 때마다 5학년 아이는 동생을 재촉했다.

“30분 안에 못 끝내면 사탕 안 줘.”

이것 역시 선생님들이 자주 쓰는 말이었다. 학습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아이들의 집중력만 떨어지고 다른 아이들의 학습 분위기를 해치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말로 재촉할 땐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요것 봐라! 나는 5학년 아이가 의젓하게 동생을 돌보는 보습이 기특하면서도 귀여워서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5학년 아이는 틈틈이 동생을 얼러가며 결국 정해진 분량을 다 끝내게 했다. 약속대로 1학년 아이는 뽀로로 비타민 사탕을 받았고 그토록 원하던 자유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비단 이 아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동생들을 타이를 땐 능숙하게 어른 흉내를 낸다. (본인들이 들었던 잔소리를 고대로 베껴서.) 학습실에서 조용히 하라든지, 배식을 기다릴 땐 조용히 하라든지, 다 같이 어울려 놀 땐 순서를 기다리라든지 등 아이들이 동생 앞에서 옳을 소리를 할 땐 꼭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온다. 으이구, 너나 잘해! 하지만 절대 그 말은 내뱉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의 귀여운 내로남불(?)을 오래 지켜보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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