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한가운데서 돌아본 내 삶 한가운데

by 금머릿

거대한 파도가 다가오고 있다.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온다. 정강이까지 차오른 물속에서 디딘 두 발에 힘을 주었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두가 같은 파도 앞에 서 있지 않은가. 나에게만 다가오는 파도가 아니지 않은가. 할 수 있다. 까짓것 할 수 있다...

꺅 꺅 거리는 비명이 내 입에서도 나왔지만, 곧 꼬르륵 소리로 바뀌었다. 인공으로 만들어낸 파도 앞에서 그 물살을 온몸으로 받았다.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몸이 붕 떠오르고 다른 사람들처럼 즐겁게 파도를 타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호기로운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물살은 나를 아래로 끌어내리기만 했다.


그래, 그럼 그렇지. 자괴감이 몰려왔다. 문득 여고 시절, 커다란 튜브에 매달려 파도타기를 하던 때가 떠올랐다. 튜브라는 믿을 만한 친구가 있으니 얼마든지 파도를 점령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때도 머리 위로 덮쳐오는 파도에 속수무책으로 뒤집히고, 한없이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다. 순간 물속에서 바라본 굴절된 하늘이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그 절경 앞에서 ‘죽음이란 이렇게 찾아오는구나.’라는 상념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뭐 하는 거야? 애는 놨어야지!” 허우적대다 겨우 빠져나와 얼굴을 쓸어내리는데, 남편의 호통이 쏟아졌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러고 보니, 나의 품에는 여섯 살 난 딸이 안겨 있었다. 구명조끼를 입었지만, 떠오를 자신이 없어서 엄마라는 튜브를 꼭 끌어안은 딸이.

그 튜브가 믿음을 저버리고 아이의 떠오를 권리마저 박탈했을 때, 아이는 배가 부를 만큼 물을 먹고 말았다. 숨이 가빠졌다. 나 때문에 아이가 큰일 날 뻔했다. 남편의 말대로 손을 놓았더라면 나만 가라앉고 아이는 물 위로 떠 올랐을 텐데.

세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늘 그 부담에 시달리곤 했다. 내가 흔들리면, 넘어지면, 아이들은 어쩌나. 주저앉고 싶어도, 포기하고 싶어도 나만 바라보는 올망졸망한 6개의 눈을 생각하면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겨울을 회상하는 지금도 나에겐 그날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르고 있을 터다. 막내가 생후 7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일곱 살 난 큰아이와 다섯 살 난 작은 아이가 유치원 하원 버스에 타고 있을 때, 폭설이 내렸다.

아이들만 받고 얼른 돌아올 생각으로 대충 아기 띠로 막내를 앞으로 안았고, 커다란 패딩으로 내 몸과 아기를 함께 감쌌다. 집 앞까지만 가면 되니 두툼한 겨울 슬리퍼를 신었다. 아기를 앞으로 안고도 신고 벗기 편하게.

그런데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버스가 꼼짝할 수 없다는 거다. 지금 민속촌 앞(차로 4분이지만, 걸으면 20분쯤 되는 곳)까지 왔는데, 걸어서 아이를 데리러 와 달라는 부탁이었다. 난감했다. 하지만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아이를 데려오려면 그곳까지 걸어갔다 와야 했다.


그 내리막길을 슬리퍼를 신고 어떻게 내려갔나 모르겠다. 아기는 품에 안고, 어린 두 아들을 걸려서 그 오르막길을 어떻게 올라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한 발 한 발이 조심스러웠다. 신발은 어설프고 길은 미끄러운데, 내가 넘어지면 아기가 크게 다치게 된다는 생각에 초긴장 상태였다.

두 아들의 안전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행여 눈길에 미끄러진다 해도 잡아줄 수 없었다. 그래서 집으로 걸어오는 약 30분의 시간 동안 ‘조심해’, ‘안 돼’, ‘이리 와’와 같은 말을 쉬지 않고 외쳐야 했다.

엄마로서, 괜찮은 어른으로서, 무너져서는 안 돼, 넘어져서는 안 돼. 그 강박이 늘 있다. 나의 약함에 대해, 부족함에 대해, 완전하지 못함에 대해 늘 이실직고 하지만, 그럼에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선이라는 게 있다.

내 능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기에, 늘 기도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도 나는 눈길 위에 슬리퍼를 신은 그때처럼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딛는다. 용감한 척, 센 척할 때도 많지만, 사실 나는 이렇게 나의 부족함을 잘 알기에 신중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겁쟁이’라는 거다.


덮쳐오는 파도가 두려운 엄마는 세상이 두렵고 무서워서, 늘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라고 하면 잔소리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걸까? 잔소리가 아이들에게 치명적이라고들 하지만, 그럼 나는 그거 말고 무얼 할 수 있을까?

차마 다 말하지 못하는 부분은 기도로 돌리고, 나는 그저 여기 서 있기로 다짐한다. 디딘 두 발에 힘을 주고, 덮쳐 오는 파도를 노려본다. 꼭 끌어안을 때는 숨 막히게 끌어안고, 놓아야 할 때는 미련 없이 놓아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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