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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암을 사랑하는 방법

「촛불의 미학」가스통 바슐라르 읽기(4)

by 김요섭



우리의 내부에는 흔들거리는 불빛만을 받아들이는 어두운 구석들이 있는 것 같다. 예민한 마음은 깨지기 쉬운 가치 있는 것들을 좋아한다. 그것은 투쟁하는 가치들, 그러니까 어둠에 대항하는 약한 불빛들과 교감한다. 그리하여 작은 불빛에 대한 우리의 모든 몽상은 오늘의 삶에서 심리적 현실성을 간직하고 있다.


작은 불꽃에 대한 몽상을 하면 몽상가는 자기 집에 있는 느낌을 받으며, 몽상가의 무의식은 몽상가에겐 자기 집에 있는 무의식이다. 몽상가ㅡ우리 존재의 분신이자, 생각하는 존재의 명암인 몽상가!ㅡ는 작은 불꽃에 대한 몽상에서 존재의 안전성을 확보한다. 작은 불꽃에 대한 몽상에 빠지는 자는 다음과 같은 심리적 진실을 발견할 것이다. 즉, 고요한 무의식, 악몽 없는 무의식, 자신의 몽상과 균형 상태에 있는 무의식은 매우 정확히 심적 현상의 명암이며, 보다 잘 말하면 명암의 심적 현상이다.


작은 불꽃의 이미지들로부터 우리는 내적 비전의 이러한 명암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다. 명료한 사유로부터 멀리 떨어져 꿈꾸는 존재로 자신을 경험하고자 하는 몽상가는 자신의 몽상을 좋아하자마자, 이 같은 심적 명암의 미학을 표명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램프의 몽상가라면 작은 불꽃의 이미지가 내적인 등불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이해할 것이다. 그것의 희미한 빛은 사유가 작용하거나 의식이 명료할 때엔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나 사유가 휴식을 취할 때 이 이미지는 잠을 자지 않는다. 의식의 명암에 대한 인식은 너무도 분명하게 존재하기 때문에ㅡ지속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ㅡ존재는 그 속에서 깨어남을 기다린다.

(14~17p)




1.

'흔들리는 불빛'은 명증을 요구하는 이성으로부터 물러난다. '내적인 등불'이자 비의식인 작은 빛은, 의식의 바깥이자 사유의 부재 속에 있다. 촛불로부터 밝혀지며, 동시에 숨어드는 어두운 구석은 '예민한 마음'을 닮았다.

불빛 스스로도, 지켜보는 이의 인식과도 무관한 카오스적 형태. 모든 것과 무관하며 동시에 가장 적확하게 일치되는 감각. 몽상가의 의식은 표면적으로 몽롱해 보이나, 그의 존재는 그 어떤 순간보다 깨어있다.


"오 작은 불꽃이여, 오 샘이여, 부드러운 새벽이여." ㅡ 장 발



2.

'몽상가의 자기 집에 있는 무의식'은 주체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일리아적 사건. 전체성의 형성 이전으로 돌아가는 기원(祈願)이며, 단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심연의 바다를 유영하는 심적 현상이다.



3.

흔들리는 촛불에 지속되는 명암의 장소 없는 장소성. 밝히면서 어둡고, 가까우며 멀어지는 모호한 균형 상태. 고요한 무의식 속에서 우리는 '명암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다. 명암은 촛불의 시원적 형태이며, 계속해서 생성하며 파괴하는 존재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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