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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요섭 Oct 31. 2022

진정한 이해에 다가가도록 하는 목소리

「나를 만지지 마라」몸의 들림에 관한 에세이, 장 뤽 낭시 읽기(4)



1.

 '여기 있다'라고 하며, 곧 '떠날 것이라' 말하는 전언 철회. '여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있다' 라고 계시받는 헤테로토피아. 진리, 정의, 사랑, 아름다움의 존재형식이다. '이미 다른 곳에' 있으면서, '현존'한다고 '말하기 위해' 말하는 끝없는 변주. 비로소 진리는 항상 새로우며, 절대적 낯섦으로 남을 수 있다. 그들이 진정한 '이해'에 다가가도록 하는 기이한 목소리. 'Come and see!' 


2.

 '내게 말하지 마라'는 주체를 중심에 두고, 의심하거나(네 말을 믿지 않아), 확신할 때(나는 널 이미 알고 있어)의 문장이다. 그러나 '나를 만지지 마라'는 전혀 다른 위치를 가진다. '접촉하는 동작 일반'의 감각은 만지지 않았음에도 접촉한다. '만지고 있지 않음에도 만지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는 표현'. '너는 나를 다치게 할 것이다'와 '내가 너를 다치게 할지 모른다'의 이중적 지위. 타자를 향해 열린 동사적 가능성은 그곳으로의 언어를 열어젖힌다. 전체성으로 갇힐 수 없는 오직 당신을 향한 목소리. 


(23~28p)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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