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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를 헤아리는 일에 적합한 몸

「늙어감에 대하여」 장 아메리,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읽기(2)

by 김요섭



1.

'무어라 파악'할 수 없는, '모순' 속에서 슬며시 모습을 비치는. 도저히 '이성적 관계'를 이룰 수 없는 '우리의 시절'은 질서를 잃었다. '캘린더'로 나누고 계산되는 일반적 시간성 너머. 늙어감은 '측량할 단위'가 부재한, '무절제' 그 자체일 뿐이다. 우리의 '지성'을 비웃으며, 단단히 옥죄어 오는 시간. 어떤 주관성은 '농밀'한 순간만을 영원으로 기억해 낸다. 오직 시간의 각자성 안에 머물고 있음을 증명하는 차가운 계절.


2.

시간은 '늙어가며' 발견된다. '불평등한 싸움' 가운데, 언제인지 알지도 못한 채 빼앗겨버린 '승리'. 그저 '헛되이 흐르는' 계절은 감내하기 어렵다. '허약한 근육, 숨쉬기 힘든' 육체 안에 고스란히 기억된 부조리. 유일한 위안이라면, 어떤 '숙고'가 가능해진다는 사실뿐이다. '거친 질주'가 '잰걸음'으로 바뀌었음도, 여전히 '살아있음'이라는 서늘한 순간. 아무것도 없는 장소는, 비로소 텅 빈 몸의 도착을 허락한다. '무질서'를 '헤아려야 하는' 일에 적합한, 늙어감 속의 어떤 몸.


(29~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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