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요섭 May 09. 2023

사랑, 기쁨, 쾌락, 고통, 모든 얼굴들

파스칼 키냐르 Pascal Quignard「부테스」 읽기(10)



1.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래된 동물'이 수면 위로 끌려 나온다. 심연의 가장 깊은 곳, 대왕오징어도 아니며, 심해 상어도 아닌. 무엇과도 닮지 않은 짐승은 공기와 닿자마자 급속히 '부패'한다. '구멍이 숭숭' 뚫린 몸. 대기와 통해 푸석해진 것은 '죽음'이 묻어있다. '아득한 옛날의 피조물'의 참혹한 산패. 끔찍하게 건조된 해면은, 모든 열린 틈으로 '물기를 빨아' 들이고자 한다. '사랑, 기쁨, 쾌락, 고통, 모든 얼굴들'. 마지막 육체성은 그의 수분이 사라지자, 함께 빨려 들어간다. 


2.

  탄생의 순간, 극단적 움직임과 함께 사라지는 불꽃. '파에스툼의 다이버'는 '곤두박질(praecipitatio)'치며 몸을 던진다. 바다 같은 양수가 튀어나오며 시작되는 어떤 '낙하'. '머리가 먼저'인 마지막은, 시작과 끝이 완전히 맞물린다. 그들 자신의 운동성과 뒤섞인, 중첩된 시간. '후퇴 가능성'이 철저히 '배제된' 겹침은 어떠한 '미련'도 없다. 오직 자발적 죽음 만이 배부르다.


(51~56p)

매거진의 이전글 임계부재의 잔인한 다이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