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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보다 더 오래된 소리로 가득한 정원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파스칼 키냐르 읽기(9)

by 김요섭



1.

'소리로 가득한 정원'은 아무도 원치 않는다. 모두를 위할 수 없는, 오직 당신을 향한 음악. '이상한 악보'는 기나긴 침묵으로만 남을 뿐이다. 텅 빈 어둠의 실체로 되찾는 '외마디 부르짖음'. '조바꿈'되며 울리는 소리는 사랑하는 곳을 향해 소리친다. 계속해서 거절되는 결코 출판될 수 없는 기보.


2.

기원보다 더 오래된 '태초(commencement)'. 빼곡히 적힌 악보는 '뜨개질 소리'를 품고 있다. 펄떡펄떡 고동치며 울리는 숭고한 맥박. '어머니의 반지'는 비로소 딸의 손가락에 끼워진다. '이상한 결혼'으로 이어지는 순간. 악보 없는 건반은 낯선 행진곡을 연주한다. '최초의 날'처럼 반짝이는 완전히 물러난 과거. '작별의 날'은 넘실거리는 파도에 흔들리며 멀어져 간다.


(148~1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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