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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Oct 16. 2020

여관 3호실

그 날 아침, 열쇠 구멍을 통해서, 방번호가 3호실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통의 하루처럼, 여관방 침대에서 일어나 머리맡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11시.  고개를 들어  대각선에  있는 문을 응시했다.


'잠금장치를 풀까? 아니, 천천히.' 


시선을 거두고,  옷을 한개씩 침대에 벗어 던졌다.

반팔, 바지, 팬티.

왼쪽 화장실로 향했다. 문고리 없어서, 일부러 문을 조금 열어 두었다. 샤워를 시작했다. 뜨거운 물이 등줄기에 미끄러졌다.


"아, 이거였어. 

 방 바꾸길 잘했어."


하루 전, 버스로 사막을 건널 때 뭉친 근육과 낯선 도시에 대한 긴장감이  누그러졌다. 휘파람을 불렀다. 곧 천국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순간, 몸이 살짝 미끄러졌다. "꽝" 소리가 머리에 망치질을 했다. 싸늘함이 척추를 타고 목덜미에 닿았다. 예감대로 고장난 문은 잠겼다. 손잡이가 없는 문을 여는 방법에 대해 나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문고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구멍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열쇠, 나머지는 손잡이 나사를 위한 것이었다. 나사 구멍에 새끼손가락을 집어 넣었다.  오른쪽 잠금장치를 움직여 보려 했다. 손가락 살갗이 데인 것 처럼 아팠다.  울퉁불퉁한 주위 플라스틱에 손가락이 찔렸다. 안을 보았다. 도구를 찾아야 했다. 선반 위 클렌징 폼,  비누, 샤워기, 플라스틱 손잡이가 달린 1.5리터 생수병, 내가 신고 있는 여름 샌달, 홀딱 벗고 있는 내 몸. 이것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전부였다.


샤워기를 호스에서 분리했다. 너트를  구멍에 넣어 돌리려고 하니, 너무 컸다. 물통에 달린  얇은 플라스틱 손잡이를 이번에는 문틈 사이로 집어 넣었다. 옛날에 자동차 문이 잠겨서 서비스를 불렀을 때, 직원이 와서 얇고 긴 물체로 잠금장치를 밀어서 여는 것을 본  기억이 났다. 전화카드가 떠올랐다. 그것만 있어도 쉽게 열수 있을텐데. 물병 손잡이는 두꺼워서 소용이 없었다. 화장실 바닥에 있는 하수구 뚜겅이 눈에 들어 왔다. 막상 꺼내 보니, 윗부분만 얇고, 밑에 뭔가 달려 있었다. 나는 냄새나는 것을 신경질적으로 던졌다.


갑자기 무기력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피부에 묻은 물방울로 몸은 축축했다. 거울에 퍼진  습기가 마음을 흐뜨렸다. 샌달을 벗고,  위에 풀썩  앉았다. 설마 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무릎을 꿇고  열쇠구멍으로 밖을 보았다. 반대편 세계는 문이었다. 방문 위, 유리에 숫자 3이 적혀 있었다. '아, 3호실.' 옆 창문은 내가 밤에 커튼으로 가려서, 복도가 보이지는 않았다. 바깥은 고요했다. 여행자인 나는 매일 혹은 며칠에 한번씩 낯선 도시, 낯선 방에서 지내는게 일상이다.  방번호를 기억하지 못 한다. 본능적으로 공간을 지각할 때, 위치, 모양을 기억한다. 이 여관은 ㅁ자 모양이고, 입구 왼쪽에는 카운터, 중정을 지나 오른쪽 계단을 올라,복도를 따라, 왼쪽에서 두, 세 번째 방이다. 1,2호실 중에 하나는 이틀전에 내가  체크인 해서 썼는데,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다.화장실 배수구까지 막혀, 홍수가 났다. 그래서, 바꿔 준 방에 결국 나는 갇혔다.


나는 구멍에 입을 대고, 소리쳤다. " 헬프, 헬프, 헬프 미"  아무 메아리도 없었다. 이 여관 손님은 일층 계단 입구 방에 체크인한 파키스탄 남자와 나 둘 뿐이다. 내 목소리는 방, 복도를 뚫고 중정을 통해 누군가에 닿기에는 겹겹이 둘러 쌓인 구조이다. 무릎힘이 풀렸다. 이번에는 침착하게 상황을 따져 보기로 했다. 누군가가 내 방에 올 확률을 생각했다. 여관 주인.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람인데, 오늘까지는 방값을 냈으므로, 내일쯤에나 올 것이다. 수돗물을 마시면 24시간 정도는 문제없고, 열쇠구멍으로 산소도 들어 올 것이다. 침대에 있는 수건이 아쉽다. 젠장, 게다가 안으로 걸쇠를 잠갔으니, 주인은 창문을 부숴야 들어 올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나체로 주인을 맞이해야 한다. '아, 수건 한장만 있으면 담요로 쓰고, 옷처럼 가릴 수도 있을 텐데.'


두 번째는 파키스탄 남자. 어제 잠깐 계단을 오르기 전, 일층 방에 있는 그가 말을 걸었다. 파키스탄 상인이었다. 영어 몇 마디를 할 줄 알았다. 방에 들어 오라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언뜻 비친 방 안에는 살림살이가 있는걸로 봐서는 꽤 머무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방문을 이중으로 잠근 것도, 이 남자 때문이었다. 오늘 새벽 1시 30분에 노크소리가 났다. 누구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커텐을 열어 보니, 그 남자가 음식을 들고 있었다. 만두 두 개, 국물 봉지가 쟁반에 놓여 있었다. 달갑지 않았지만, 음식을 받아들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나는 끙끙거리며 창문을 꼭 잠갔다. 그는 저만치 복도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커텐을 닫았다.  남자의 눈길이 마음에 걸려서, 나는 안에서 방문을 이중으로 잠갔다.  내가 만든 요새에 내가 갇혔다.


아무도 안으로 들어오기 힘들거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벌떡 일어섰다. 마지막 보루를 쓰기로 했다. 문 가운데는 플라스틱이었다. 그러니깐 이 문은 강철도 아니고, 나무로 만든 것도 아니었다. 나는 문을 부수기로 했다. 얼마만큼 돈이 들지 몰라 처음엔 걱정했는데,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우선 탈출해야 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문에서 최대한 멀리 걸었다. 다섯 발자국. 그리고, 최대한 속력과 힘을 실어 어깨와 몸통으로 부딪쳤다.한 번, 두 번, 세 번. 영화는 완전 거짓말이었다. 소리만 요란할 뿐,플라스틱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마지막 방법이 통하지 않자, 두려움이 안개처럼 몸 속에 퍼졌다. 영화가 떠올랐다. 미국에서 한 남자가 익스트림 스포츠를 하다가, 거대한 바위 틈에 끼었다. 강렬한 햇볕아래, 물도 못 마시고 죽어가는 남자의 이야기였다. 엔딩이 기억나지 않았다. 나 자신말고는 도와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무엇이든지 해야 했다. 문고리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수구 뚜겅으로 구멍을 찍었다. 플라스틱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손가락을 넣어서 큰 조각을 떼냈다. 동그라미 구멍은 오각형, 팔각형으로 조금씩 커졌다. 손가락은 벌겋게 달아 올랐고, 피가 났다. 바닥에 떨어진 조각을 문고리 구멍에 끼워 넣고 돌렸다. 순간 '짤깍' 소리가 나면서  문이 열렸다.


방에 가서 시계를 보았다. 12시 30분. 말이 안되었다. 고작 두 시간도 안 지났다. 방문 빗장을 풀려고 했는데, 헛수고였다. 그 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옷을 주워입고, 커텐을 열었다.파키스탄 남자가 뜨거운 물과 먹거리를 들고 있었다. 나는 주인을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창문 너머 들어온 직원이 문을 안에서 열었다. 아래층에 내려가서 주인할머니에게 내일 하루 더 묵겠다고 깍아달라고 했지만, 이미 싸게 줬다고 했다. 나는 백 위안을 그녀에게 건넸다. 기분이 상했다. 여관을 제대로 손보지 않아서, 나는 화장실에 갇혀 죽을 뻔 했다고 화를 내고 싶었다. 그녀가 알아 들을 수 있는 말을 나는 할 줄 몰랐다. 그리고, 이 도시에는 외국인 여행자가 머물 수 있는 곳은 드물었다. 외딴 이곳 까지 여행할 사람은 적다. 기차도 없다. 나는 버스로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넜다. 이 도시 호탄은 신장지구의 수도 우루무치와는 딴판이다. 대부분이 위구르족이고, 위구르어를 쓴다. 꼭 중앙아시아에 온 것 같다. 나는 이 세계에서는 전형적인 중국인의 얼굴이다. 어쨋든 고립된 지역에서 고장난 이 여관은 감지덕지였다.

3호실에 갔다. 화장실 문을 활짝 열고, 세수만 했다. 지갑을 챙기고, 101번 버스를 탔다. 동터미널에서 JIYA행 버스를 갈아탔다. 어제 부터 가려고 했던, 무덤에 가는 중이었다. 먼지가 가득한 길을 걷고, 히치하이킹을 했다. 모래언덕이 나타났고, 여러 개의 깃발이 꽂혀 있었다. 사막이었다. 이 지역의 종교 지도자, 이맘의 묘였다.  멀리 온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여행자는 어떤 아침이라도 일어나서  걸어야 한다. 걷는다는 말은  내게 본다는 말과 같다. 내게는 무엇이라도 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배낭여행자는 이동은  낭비라고 생각해서, 값싼 밤버스나 야간기차를 탄다. 나는 이동이야말로 여행자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버스터미널, 부두, 기차역을 좋아한다. 사람들끼리 포옹하고 키스하는 이별, 나처럼 도시에 막 도착한 여행자의 설렘과 긴장, 누군가를 마중나온 나온 사람들. 막 떠날 사람과 막 도착한 사람, 배웅하는 사람들이 뒤섞인 순간은 진짜 살아 있는 것 같다. 어쨌뜬, 어두울 때,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무덤가에 남자와 여자가 앉아 있었다. 한바퀴 둘러 보았을 때, 남자 둘이 나타났다. 서툰 중국어로 대화를 했다. 그들은 닭한마리를 통째로 잡았다. 피 한방울 보이지 않았다. 모닥불을 피우고, 닭고기를 꼬챙이에 끼워서 익혔다. 도란도란 닭꼬치를 같이 먹었다. 무척 배고팠는데, 맛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버스가 끊겼다. 걷다가 어둑해지기전에 히치하이킹을 했다. 나를  태워준 사람은  자신의 집에 데리고 가서 구경시켜 주었다. 아내와 아기, 농작물, 낙타, 양을 보았다. 겨우 시내로 아왔다. 동네사람들처럼  달구지같은 경운기 뒤에  걸터 앉고, 시장에서 내렸다.  찹쌀밥 위에 요거트와 꿀이 담긴 접시를 골라먹었다.  처음 먹는 음식이었다. 나는 매일 여행을 하지만, 처음이라는 말을 매일해서 좋다. 나에게 세상은 신비하고 재밌고 위험한 것들로 가득찼다. 여관에 돌아왔다. 3호실. 여행자는 집이 없으므로, 세상 모든 침대가 나의 집이다. 매트리스에 누웠다. 긴 하루였다. 여행자가 고독한 이유는 비밀이 많기 때문이다. 아침, 사막,시장, 하루의 기억을 모두 지웠다. 내일은 기차표를 구해야 한다.

몇 년후, 영국의 게스트 하우스, 어느 저녁이었다. 머리가 핑 돌았다. 문에 기댔다. 숨을 한번 크게 쉬고, 반대편으로 레버를 돌렸다. 화장실문이 열렸다. 몸은 기억했다. 가슴에 주렁주렁 달린 여행배지같은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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