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만약에

나에게

by 하늘을 나는 백구

만약에 내가 1년 정도 푹 쉴 수 있다면

그리고

쉬어도 집안 살림에 큰 문제가 없을 수 있다면

우선, 아내와 함께 건강 검진을 받아보고 싶다. 하루 잠깐 다녀오는 것 말고, 멋진 가운을 걸치고 검진센터를 걸어 다니는 신사 숙녀와 같이 며칠 푹 쉬면서 검진을 받고 싶다. 물론 검진 결과는 좋아야겠다.

그리고,

아이들이 커 가니 그냥 아내와 함께 제주도라도 비행기를 타고 가서 또 그 멋진 호텔에서 슬리퍼를 끌고 다니면서 조식도 먹고 싶다. 렌터카를 운전하면서 언제까지 어디를 봐야 한다는 강박증은 떨쳐버리고 무작정 잠시 쉬었다가 또 달려보고 싶다.

또,

지금 하는 일들일랑 나중으로 전부 미루고 집에서 하루 종일 쉬면서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싶다. 아내야 그런 내가 싫겠지만, 그렇다면야 아내에게 쇼핑을 하라고 하면서 신용카드를 선뜻 내주면 될 일. 그렇게 할 수 만 있다면 말이다.

만약에 내가 1년 정도를 푹 쉬어도 생활에 지장이 없고, 오히려 돈이 쌓이기만 한다면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을 거 같았는데 막상 떠올려보니 결국 쉬고 싶은 마음이 전부이니 이로써 나는 앞으로 10년 이상을 쉴 수 없다는 점만 명확해진 셈이다.

그래서,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만 드는 즈음에

로또 복권 추첨을 하고 있다. 얼른 채널을 돌린다. 내 상상이 곧바로 깨지는 건 싫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에나 복권을 맞춰보아야겠다. 그럼 적어도 하루 저녁은 더 행복해질 테니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힘내거라! 금쪽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