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의 단절
막 일어난 듯 부스스한 얼굴로,
빗지않은 듯 부풀은 머리로
반쯤 벗겨진 허연 입술로
그렇게 내 앞에 와서
필우 엄마라고 말했다.
이혼 한 지 이제 한 달.
그새 변해버린 아이를 상담한다며,
부끄러운 손끝으로
오징어 한 축을 내민다.
아버지 역할이 필요해
창피를 무릅쓰고 왔노라고,
말끝을 흐린다.
담임의 역할이니
내게 맡기라고
몇 번의 다짐 끝에
창백한 뒷모습을 보낼 수 있었다.
면담이라는 허울로
가정의 뒷조사로
그런 혐오(嫌惡)로,
가식(假飾)으로 치장하고
거짓으로 번질거리는,
만족이라는 침묵 속에
돌아서던 엄마들 보다,
훨씬 가라앉은 기분을 추스르며
함선생과 소주를 기울인다.
1반은 영 기백이 없어서
2반은 너무 소란해서
6반은 발랄하긴 해도 성적이 안나와
그래도 8반이 제일 낫다고
기분 좋아 2차로 맥주를 마신다.
가끔은 추락하고 싶다.
무지개 빛 절망과 구리 빛 환상 속으로
그들과 함께 추락하고 싶다.
슈퍼에 들러 귤 5천원 어치만 사고
조심스레 현관을 열고
일상을 단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