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근사한 즐거움
코로나19로 외식하기가 어려워 집에서 요리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백종원 유튜브 채널을 보며 강제 실력 상승 중이다.
닭볶음탕, 족발 덮밥, 오야코동 등등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요리도
계량스푼으로 따라 하다 보면 그럴듯하고 맛있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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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생각보다 쉬운 음식 하나를 고르면 무조건 파스타다.
어릴 때 파스타는 식당에 가야 먹을 수 있는 요리였다.
파스타란 말도 잘 몰라서 스파게티 먹으러 간다고 생각했다.
스파게티는 엄청 많은 면 종류 중 하나인 걸 알았을 때 놀랐었고,
요리를 시작하며 너무 쉬운 음식이라 다시 한번 놀랐었다.
물론 레스토랑의 파스타처럼 맛있게 하긴 어렵겠지만
한식도 집밥이 더 맛있을 때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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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게을러지고 싶은 토요일 낮엔 파스타를 만들기로 한다.
점심은 애인이 하기로 해서 구경을 한다.
일단 넣고 싶은 재료를 꺼낸다. 유통기한이 내일까지인 닭다리살, 신선한 토마토 몇 개, 통마늘까지.
양파도 넣을까 하다 내가 안 좋아하니 빼버린다.
어울릴 거 같은 맛을 생각하며 조미료를 고른다.
감칠맛이 약하니 치킨스톡을, 느끼할 수 있으니 페퍼론치노를 넣는다.
소스가 적은 파스타여서 기다란 스파게티 면을 골라 삶는다.
살짝 부족한 간은 파마산 치즈로 채우고 통후추를 조금 뿌려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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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는 파스타지만,
적당한 그릇에 담아 적당한 테이블 매트 위에 올리니 딱 적당하게 근사하다.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달래진다.
입맛을 훤히 아는 사람이 만드는 파스타는 편안한 맛이 있다.
양파를 넣으면 더 맛있었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거와 상관없이 빼버린 헐렁하고 귀여운 요리다.
내가 맛있게 먹어 다행이라 말하는 애인한테 칭찬을 잔뜩 해준다.
마음대로 만들고, 마음 가는 대로 이야기한다.
아무거나 넣어도 괜찮은 파스타처럼 어떤 주제든 상관없다.
적당하게 근사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