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 내가 쓴 사업계획서인데, 왜 당신 이름이?

사회복지계의 실적은 위에서 훔친다

by 사회복지사B

사회복지사로 일한 지 꽤 되었을 때였다.
어느 날, 최 과장이 다짜고짜 말했다.


“이 사업 네가 써. 1억짜리야. 다음 주까지 제출해야 해.”


자신은 없었다.
사업 규모도 컸고 이런 프로포절은 처음이었으니까.
근데 지시였고 못 하겠다는 말도 못 꺼내는 분위기였다.

“도와줄게~”라는 말도 덧붙였다.
믿지는 않았지만, 혹시 진짜 도와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아주 조금,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아니었다.


조사도, 논문도, 선진기관 질의도,
계획서 작성도 전부 내가 혼자 했다.

영혼을 갈아 넣었다.
1억이라는 돈이 얼마나 큰지,
그 돈을 타내는 일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그때 처음 실감했다.


처음이라 무지하게 고생했고
그래서 그만큼 뿌듯하기도 했다.
이 사업이 붙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붙으면 일이 너무 많아질까 봐 걱정되는 마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마감을 앞두고 최 과장이 말했다.


“내가 검토해 줄게. 한글 파일로 줘.”


나는 원본을 바로 보냈다.
그런데 아무 피드백이 없었다.
며칠이 지나도 조용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수정할 부분 있을까요…?”


“선정은 안 될 것 같아~ 그래도 수고했어.
일단 온라인으로 제출은 했어~”


그리고 얼마 후, 서류 합격 통보가 왔다.
프레젠테이션 심사까지 가게 됐다.

그런데 그 자리엔 또 최 과장이 나섰다.


“발표는 내가 할게.
사업계획서 중 주요 포인트랑 핵심사업만
한 페이지로 정리해서 줘.”


아니, 피드백 한 번 준 적 없으면서
그걸 제대로 읽기는 했을까?

결국 발표자료도 전부 내가 만들었다.

발표 날.
앞에서는 최 과장이 발표를 했고,
질의응답 시간에는 내가 직접 답변을 했다.

그리고 며칠 후, 결과가 발표됐다.


선정.
1년 1억, 최대 3년간 3억 지원.
솔직히 너무 기뻤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그런데, 진짜 눈물이 돌게 만든 건 그다음이었다.


공식 발표 자료를 봤다.
담당자와 작성자 이름: 최 과장.

…엥?

내가 작성한 사업계획서,
최 과장은 거기서 단 한 글자도 고치지 않았다.
딱 하나 고친 게 있다면 — 작성자 이름을 사회복지사 B에서 최 과장으로 바꾼 것.

따졌다.


“이건 제가 다 작성한 건데요. 왜 작성자에 과장님 이름이…”


그러자 최 과장은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내가 쓴 거야. 네가 뭘 했다고 그래?”


진짜 어이가 없어서 기관장에게도 찾아갔다.
그런데 돌아온 말은 이랬다.


“이미 제출 다 된 상태야.
지금 와서 작성자가 B선생이었다고 하면,
우리 기관이 우습게 보여.”


우스운 건 이미 다 알고 있었는데 말이지.

그렇게,
내가 만든 사업은 최 과장의 성과로 등록되었다.


그리고 사이다 결말이 있었냐고?

전혀.


최 과장은 그 사업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의를 했고
홍보자료에도 본인 얼굴과 이름만 내세웠다.

그럼 3억짜리 사업은 누가 운영했냐고?

나 혼자 했다.
3년 내내,


기획부터 실행, 정산, 실적보고서, 사진촬영, 카드뉴스, 회계정리까지.
단 한 번도 도와준 적 없다.

사회복지계에 권선징악이 있냐고?
없다.
있을 리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밤 11시인데
아직 퇴근 못 했다.


힘내자.
아니,
너무 힘내진 말자.

오늘은 그냥
소주 한 잔 하며,
내 이름을 스스로 토닥여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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