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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Sep 01. 2019

두 시간 고문 끝에 깊이 잠들다

-스핀오프 15

강화도 풍물시장에 가 보고 싶었다. 아내와 함께 가던 곳이다. 자주 가던 생선가게가 있고, 반찬가게가 있고 밥집도 있다. 아무것도 사지 않더라도 들러보고 싶었다. 그림자라도 밟아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괜찮으면 풍물시장에 갈래요? 거기에 자주 가던 밥집이 있어요. 아주 푸짐해서 사 먹는 음식 같지가 않아요.”

“거기 이층에 있는 식당가 말이군요. 저도 가본 지 꽤 되었어요. 가 보고 싶어요.”

파티마도 아는 곳이라니 마음이 편했다. 내 차를 타고 갔다. 아내와 함께 수없이 다녔던 길이다. 우리는 날마다 문수산을 올랐고, 내려와서는 풍물시장에서 밥을 먹었다. 나물비빔밥을 부탁하면 밥보다 나물이 더 많았다. 온갖 종류의 나물을 원하는 대로 주었다. 모든 재료가 집에서 키운 것이라고 했다. 바지락 칼국수를 부탁하면 바지락을 국수보다 많이 넣어 주었다. 시원한 국물에 온갖 나물로 비빈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다시 먹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 식당은 주인아주머니가 음식을 만들고 따님이 서빙을 했다. 우리가 들어서자 두 사람 모두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 아내 대신 다른 여자라는 게 그리 놀랄 일인가? 파티마는 음식을 보고 감탄했다. 정말 바지락이 국수보다 더 많고 나물이 밥보다 훨씬 많군요. 


카운터에서 주인아주머니에게 카드를 건네며 말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났어요.”

화들짝 놀랐다. 언제요? 벌써 육 개월쯤 지났군요. 세상에, 건강해 보였는데 무슨 병이 있었나 보군요. 예, 암이었어요. 쯧쯧, 우리는 조금도 몰랐어요. 두 분이 함께 다니는 게 보기 좋다고만 생각했어요. 한동안 뜸하다 했더니 그런 일이 있었군요. 살짝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주머니는 카드를 돌려주면서 말했다. 오늘은 못 받겠어요. 그러면서 파티마를 쳐다보았다.   

“맛있는 커피 마시러 가요.”

파티마는 산 위에 있는 아름다운 커피숍으로 안내했다. 바다가 내려다보였고, 익숙한 향기가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이거 라벤더 향이죠?”

“정원에 있는 게 온통 라벤더예요. 요 아래에는 라벤더 농장이고요. 제철에 오면 향기도 좋지만 보라색 꽃밭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우리는 카페 바깥으로 나와 산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흔들의자에 앉았다. 

“선생님은 아직도 먼 곳만 보고 있어요.”

그랬을 것이다. 아내와 함께 다니던 바닷가 풍경을 떠올리며. 

“전에도 그랬어요?”

“늘 그러셨어요.”

“내가요?”

“그래도 전에는 가끔 웃기도 했어요.”

“기억이 안 나요.”

“하긴 늘 허깨비 같은 모습이기는 했어요.”

“잠깐 쉬는 시간이었을 거예요. 그래도 긴장을 풀지는 못 했을 것이고. 마음은 모두 집에 두고 나왔을 테니.”

그때 벨이 울렸다. 파티마가 퍼뜩 일어나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가지고 왔다. 감미로운 재즈가 흘러나오다가 그치자 귀가 멍할 만큼 고요했다. 양쪽 귀를 손바닥으로 잠깐 감쌌다. 손을 떼자 파티마가 말했다. 

“귀를 잠깐 만져 봐도 되나요?”

대답도 하기 전에 만져보더니 말했다. 

“이럴 줄 알았어요. 너무 굳어 있어요.”

이번에는 어깨를 꾹꾹 눌러보았다.

“세상에, 돌덩이예요. 근육 통증은 없으세요?”

“드물게 있는데, 잘 문질러주면 괜찮아요.”

“마사지를 좀 받으셔요.” 

“그런 거 해본 적이 없는데......”

“너무 오랫동안 긴장하고 지내서 이런 걸 거예요. 풀어야 해요.”

“나는 건강해요...... 아픈 데 없어요......”

“혈압은 괜찮으세요?”

“아, 혈압! 올 오월에 깜짝 놀랐어요. 우연히 재어보았는데 백구십이더군요. 지난해까지는 정상수치였는데. 웬만하면 그냥 넘겼을 텐데 너무 높아서 내과에 가보았어요. 의사가 화를 내더군요. 이렇게 높은데 지금까지 그대로 뒀다면서. 그러면서 약을 처방해주었는데, 먹다가 말다가 해요. 안사람도 세상을 떠났고, 더 이상 긴장하지 않아도 되니까 내려가겠지요.”

“대단히 긍정적이셔요. 가끔이라도 혈압을 재 보셔요?”

“예, 아내가 쓰던 혈압계가 있어서...... 늘 좀 높아요. 괜찮아지겠죠, 뭐.”

“이제 선생님 자신의 몸을 챙기셔야 해요. 먼 곳에서 눈길도 거두시고요.”

나는 평생 내 몸을 챙겨본 적이 없다.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건강검진 같은 것도 받아본 적이 없다. 나는 아프면 안 되니까. 그러고 보니, 이제 좀 아파도 되나?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잠을 잘 못 자요.”

“걱정되는 일이 있으셔요?”

“없어요. 없는데......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못 자는 경우가 있죠? 그런 상황과 비슷한 것 같아요. 걱정이 없다는 게 걱정되고 믿어지지 않는 거예요. 이거 태풍전야 아닐까 싶고. 스물다섯에 아들이 태어났고, 그때부터 아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늘 바빴어요. 삼십오 년 동안 긴장하며 살았죠. 하루 네 시간씩 자면서 일만 했던 세월이 이십 년도 더 될 거예요.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해야 할 일을 한 거죠. 다행스럽게도 웬만큼은 했고. 그런데 갑자기 그 무대가 마술처럼 사라져 버렸어요. 펑, 하고 사라진 것은 아닌데, 내 느낌은 그래요. 걱정도 펑, 하고 다 사라진 것 같아요.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다 자라서 어른이 되었어요.”

“오늘도 그 무대가 사라졌다는 것을 실감하고 싶어서 풍물시장에 온 거죠? 식당 아주머니에게 하신 말씀은 선생님 자신에게 한 것이었고요.”

“듣고 보니 그런 건지도 모르겠군요. 나도 모르게 식당 아주머니에게 말해 버렸어요. 묻지도 않는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었는데......”

파티마는 담배를 꺼냈고, 나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아내도 담배를 피웠다. 아들도. 식구가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면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나도 모르게 한마디 했다.

“담배 많이 피지 마세요. 김승섭이 쓴 책을 보면 흡연은 폐암뿐만이 아니라 대장암을 일으키기도 한답니다.”

“ㅎㅎ 걱정 마셔요. 하루에 한두 개피밖에 안 피워요.”


헤어질 때 파티마가 말했다. 

“마르크스가 사랑하는 두 딸과 당시 유행했던 ‘고백 게임’을 했던 것 아세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진실 게임 비슷한 건데요, 얼마 전에 그 글을 읽는데 선생님이 생각나는 거예요. 마르크스 대답이 선생님 대답 같았거든요. 다음에 뵈면 우리도 한 번 해 봐요.”

그러고는 다가와 가볍게 안고 토닥여 주었다. 

“걱정 없다고 걱정하지 마시고 잘 주무세요.”

나도 모르게 파티마 이마에 입술을 대었다. 조건반사처럼 그랬을 것이다. 지금도 서른다섯 살 된 아들을 안으면 뺨뽀뽀를 한다. 키높이 때문에 저절로 그리 된 것인지도 모른다.

“고마워요. 책도, 마음도.”


그날 밤에는 동네에서 두 시간 동안 마사지를 받았다. 어디든 손만 대면 아팠다. 마사지사는 이렇게 굳은 몸은 처음이라면서 쯧쯧거렸다. 내가 엄살이 심한 걸까?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아마 두 시간 내내. 고문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깊이 잠들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처음으로 아마 열두 시간쯤. 걱정 없는 걱정도 다 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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