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만한 세상
큰 이모부는 택시 회사 사장님이었다.
큰 이모부의 세뱃돈은 다른 이모부, 삼촌들과는 스케일이 달랐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친척들이 보통 세뱃돈으로 천 원, 오천 원을 주실 때 큰 이모부의 세뱃돈은 만원, 오만 원을 훌쩍 넘겼으니 설날만 되면 차례가 끝나자마자 나는 외갓집에 갈 생각에 엉덩이가 들썩들썩했다.
혹시라도 시간이 어긋나 외갓집에서 큰 이모부를 못 만나는 건 아닐까 보통 걱정이 되는 게 아니었다.
큰 이모부에게서 받은 세뱃돈은 저금통으로 또는 저금통장으로 들어갔고, 아끼고 아껴가며 장난감이나 학용품을 사는데 썼다.
큰 이모부네 첫째 딸, 이종 사촌 언니는 나보다 한살이 많았는데, 나는 항상 언니한테서 헌 옷을 물려받아 입었다. 물론 내 동생들은 내가 물려받은 헌 옷을 또 물려받아 입었다.
언니의 옷은 하나같이 공주님 옷처럼 예뻤다.
큰 이모네에서 한 보따리 헌 옷이 오는 날이 어린 마음에도 그렇게 설레고 신날수가 없었다. 박스를 풀며 이번엔 과연 어떤 옷이 들어있을까 상상하고, 세 자매가 가위바위보로 각자 마음에 드는 옷을 하나씩 챙겨 가던 그날의 긴장감과 설렘을 생각하면 지금도 슬며시 웃음이 지어진다.
이종 사촌들을 따라 태어나 처음 갔었던 실내 수영장, 바닷가에서 열렸던 어린이 여름 캠프는 어린 나에게 말 그대로 새로운 세상이었다.
큰 이모부는 오랫동안 우리 가족이 힘들 때마다 언제나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셨다.
나는 어려서부터 어른이 되고 돈을 벌게 되면 이 은혜를 꼭 갚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지만 내가 성인이 되고 직장생활을 하며 경제적 여유가 생겼을 때에도 여전히 큰 이모부는 부자였기에 내가 금전적으로 은혜를 갚을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언젠가 큰 이모부는 그 은혜를 자신한테 갚을 생각 하지 말고 도움을 필요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 나누라는 말씀을 하셨다.
아.. 그러면 되는 거구나.
그때 이후로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이유 없이 친절을 베풀고 가진 것을 나눠주고 금전적 도움을 주고 사랑을 주면 큰 미안함이나 불편함이 없이 그냥 감사하게 받았다.
그리고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또 그냥 당연한 듯이 그들을 돕고 나누었다.
내가 받은 것을 꼭 준 사람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니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인간관계가 한결 가벼워지고 쉬워졌다.
케냐에서 사업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 나는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나눌 것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
한국에서라면 재활용 수거함에나 들어갈법한 헌 옷, 헌 가구, 헌 그릇들을 이곳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 그들은 "GOD BLESS YOU, GOD BLESS YOU MADAM" 하며 마치 내가 마더 테레사라도 되는 양 축복을 돌려준다.
며칠 전에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져 한동안 창고에 놓여있던 낡은 매트리스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하우스키퍼에게 혹시 필요한지 물어봤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내가 이렇게 좋은 선물을 받아도 되는 거냐며 묻고 또 물었다.
자신의 오래된 매트리스가 너무 낡아 8개월 된 아들을 매트리스 없이 바닥에 담요를 깔고 재우고 있었다는 그녀는 이렇게 좋은 선물을 주어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했다.
낡은 매트리스라면 이곳에서 돈 3만 원, 5만 원 정도를 주고 되팔 수도 있지만, 나누는 기쁨이 그 돈의 가치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6개월에 한 번 정도 어린 자녀가 있는 직원들을 위해 작아진 아이 옷, 장난감, 학용품 같은 것들을 박스에 담아 가게로 가져가 나누어 주는 날이면 박스 앞에 선 직원들의 얼굴에서 어릴 적 내 얼굴, 내 동생의 얼굴이 겹쳐 보이곤 한다.
가끔 직원들이 휴일에 온 가족과 함께 가게를 들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그들의 아이가 내 딸이 어릴 적 입던 옷을 입고 나타나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옷을 물려주고 물려받으며 직원들과 내가 아이들을 함께 키워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가족 같은 끈끈함이 생겨나기도 한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직원들의 아이들을 위해서 학용품, 과자, 초콜릿, 사탕 등을 넣은 선물 봉투를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 지난 4년간은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굳이 직원들의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는데, 5살 된 내 딸이 산타와 크리스마스 선물을 손꼽아 기다리는 걸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직원들의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즘에 아빠가 직장에서 받아오셨던 여러 종류의 과자가 잔뜩 들어있던 종합과자 선물세트가 생각났다.
네모난 상자 속에 과연 어떤 과자가 들어있을까 상상하며 그때 우리 자매는 얼마나 신이 났었는지...
이번에 딸과 함께 선물을 고르고 포장하며 그때의 설렘이 떠올라 참 기분이 좋았다.
어릴 적, 가진 것이 별로 없던 시절 항상 받기만 하던 내가 어느새 이렇게 무언가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새삼 감사하고 기쁜 날이다.
내 딸 지아도 언제든 감사히 도움을 받을 줄 알고 언제든 가볍게 나누어 줄줄 아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으면 좋겠다. 고마운 사람에게 은혜를 갚는 방법은,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돕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나면 더 바랄게 없겠다.
지금까지는 쑥스러워서 한 번도 말씀을 못 드렸었는데, 이번에 한국에 들어가게 되면 큰 이모부, 큰 이모부를 찾아뵙고 꼭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야겠다.
두 분 덕분에 나는 바라는 것 없이 나누는 마음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고
두 분이 뿌리신 사랑과 나눔의 씨앗이 멀리 멀리 아프리카 케냐까지 와서 퍼져나가고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