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함께하는 작가 자의식 생성기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짧고 무미건조한 말투로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하지요."
-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17. 화를 내지 않고 글을 써야 하는 이유
글에 '화'를 담은 적이 있다. 세상이 너무 화나고 싫어서 막 토해냈다. 이게 잘못되었고, 이게 불공평하다고. 지금도 소설을 쓸 때면 세상을 바꿀만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저 신나고 재미있는 이야기만 생각이 나면, 좀 더 무게감있는 사회비판적인 이야기가 더 값지지 않을까 생각하며 부끄러웠다.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는 말한다.
화를 내지 말라고.
참으라는 말이 아니라 작가에게 쓸모가 없다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데. 그 말이 너무나 섬세하고 냉정해서 나는 멍해지고 말았다.
1. 화를 내는 순간, 그 대상을 담거나 나를 담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을 되풀이해서 읽으며 그 안에 존재하는 떨림, 즉 분노에 주목하면 그녀가 자신의 재능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 할 거라는 사실을 깨달을 겁니다."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이것과 함께 다음 인용을 대조하면 더 확연하게 그녀가 말하는 화의 단점을 알 수 있다.
"그녀에게 남성은 더는 '반대하는 무리'가 아니기 때문에 남자들을 욕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고, 지붕에 기어 올라가 평정심을 깨뜨리면서까지 자기에게 금지된 역할과 세상에 대한 지식, 여행과 경험등을 애타게 바랄 필요도 없어요."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혹시나 갑자기 나타난 젠더 가르기 화법에 놀라신 분들을 위해 덧붙인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1800년대부터 그녀의 시대였던 1950년도까지 글을 쓰는 여성들을 다루면서 여성들이 처했던 사회적 인식과 역경을 당시 논문 자료, 비평가들의 말을 인용하여 거론했다.)
결국 울프는 말한다. 화를 내면
1) 자신의 재능이 그대로 드러나지 못한다.
2) 화를 내느라 시간을 허비한다
3) 평정심을 깨뜨리며 '바라기만 하느라' 시간을 허비한다.
사실 이 말들을 해석할 때, 실제 제약과 심리적 제약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왜냐면 실제로 '금지된 역할과 세상에 대한 지식, 여행과 경험'을 바라기만 했어야 할 때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들을 바라지 않아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궁금증은 이 책의 마지막 문단에서 확실하게 풀린다.
나는 울프의 화를 내면 얻는 단점 3가지를 읽으면서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도 해당되며, 소설뿐만 아니라, 직업 의식에도 해당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요새 자꾸만 더 나은 직업을 판가름하려고 하고 모든 직업이 다 같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것으로 가치를 정하려고 한다. 그렇게 높고낮음을 정해놓으면 결국
'욕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평정심을 깨뜨리며 자기에게 금지된 역할과 세상에 대한 지식, 여행과 경험들을 애타게' 바라는 것 같다. 결국 정말로 '금지된 역할과 세상에 대한 지식, 여행과 경험'을 하지는 않고 말이다.
(하면 '바라지 않는다'. 그걸 하게 되니까.)
에너지 낭비하지 말라는 거다, 울프는. 욕하고 열망하고 바라는 걸 해버리던가, 아니면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던가. 둘 중 하나를 하라고 권고한다.
그리고 그걸 잘 해낸 인물, 셰익스피어를 가지고 온다.
"셰익스피어에게는 이의를 제기하고, 훈계를 늘어놓고 부당함을 고발하고, 원한을 앙갚음하고, 온 세상을 자기가 겪은 역경과 고난의 증인으로 삼고자 하는 욕망이 모두 불타올라 사라졌기 때문이에요. 덕분에 그의 시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로이 그의 마음 밖으로 흘러나오지요."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화를 내지 말아야 할 이유는 말했지만, 그래서 뭐가 좋은 건지는 또 다른 거다. 뭐가 좋냐. 애초에 시간낭비가 포커스가 아니었다. 진정한 핵심은 다음 인용문에서 유추할 수 있다.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짧고 무미건조한 말투로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하지요."
"-그녀가 자신의 재능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깨달을 겁니다."
"덕분에 그의 시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로이 그의 마음 밖으로 흘러나오지요."
"하늘이든 나무든 모든 사물을 그 자체로만 본다면."
=> 네 글을 쓸 수 있다.
화가 나는 그 사람에게 휩쓸리는 글도 아니고, 화난 내 마음을 쓰는 글도 아니고. 너만이 쓸 수 있는 단어로 구성된 너만의 글. 모든 단어 하나하나가 다 당신을 가리키지만 정작 당신은 보이지 않는 글. 완전한 창작물을 뜻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셰익스피어와 제인 오스틴을 비교하는 건 아마 두 사람 모두 마음속 방해물을 완전히 떨쳐냈기 때문일 거예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제인 오스틴과 셰익스피어에 대해 알지 못하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제인 오스틴의 작품 속 모든 낱말에는 제인 오스틴이,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모든 낱말에는 셰익스피어가 배어 있지요."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참 좋은 말이다. 작가에 대해 알지 못하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작품 속 모든 낱말에는 그가 배어 있다는 문장. 난 알지 못했던 이 단계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문장도 용기를 준다.
"그렇지만 내 마음의 자유에는 대문도, 자물쇠도, 빗장도 절대로 채울 수 없어."
눈 감고 귀 막으라는 게 아니라 저런 고고한 태도로 비웃을 준비를 하라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화내지 않을 거고, 고요한 마음으로 내 작품을 내 작품답게 쓸 거라고. 마음 속 방해물을 완전히 떨쳐내는 것. "이의를 제기하고, 훈계를 늘어놓고 부당함을 고발하고, 원한을 앙갚음하고, 온 세상을 자기가 겪은 역경과 고난의 증인으로 삼지" 않는 것.
울프는 그걸 말하고 있는 듯 하다.
2. 버지니아 울프가 미래에게 보내는 긴 편지.
"우리가 앞으로 1백 년쯤 더 살고 - 개개인의 짧은 삶이 아니라 진정한 삶이라 할 수 있는 우리들 공동의 삶-매년 5백 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을 마련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쓰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쓸 수 있는 용기와 자유로운 습성을 갖는다면, 또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거실에서 벗어나 인간을 서로의 관계뿐만 아니라 현실성과 관계 속에서 바라보고 하늘이든 나무든 모든 사물을 그 자체로만 본다면, 아무도 떨쳐낼 수 없는 밀턴의 약령 너머를 본다면, 또 우리가 매달릴 수 있는 팔은 없으며 혼자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현실성으로 이루어진 세상이지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진 세상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당당히 직면한다면 언젠가 기회는 찾아올 테고, 셰익스피어의 누이동생인 죽은 시인은 스스로 몇 번이나 내던진 육신 속에 다시 깃들 거예요."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1) 우리가 쓰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쓸 수 있는 용기
2) 자유로운 습성
3) 하늘이든 나무든 모든 사물을 그 자체로만 본다면
4) 혼자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
5)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현실성으로 이루어진 세상이지 남성과 여성으로 이러어진 세상만은 아니라는 사실
그렇다면 언젠가 기회는 찾아올 것이다, 라고 그녀는 말했다. 참 여운이 긴, 그리고 참으로도 긴 한 문장이다. 컴마로 이어지고 이어지는 모든 구절이 그녀가 하고 싶은 모든 걸 축약한다.
자기만의 방에는 쓸 수 없어서 분노한 여성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들에게 남성과 여성은 한이 맺히는 지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울프가 말하는 5)의 문장은 그들의 뒤통수를 쾅 때린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현실성으로 이루어진 세상이지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진 세상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당당히 직면한다면 언젠가 기회는 찾아올 테고, 셰익스피어의 누이동생인 죽은 시인은 스스로 몇 번이나 내던진 육신 속에 다시 깃들 거예요."
성별을 하나의 매어있는 무언가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고나니 저 말이 내 뒤통수도 때린다. 얼얼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현실성으로 이루어진 세상이지 ---로 이루어진 세상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당당히 직면한다면 언젠가는 기회가 찾아올 테고."
난 자기만의 방을 읽으며 미래인이 된 기분이 들어 계속 오묘했다. 이들의 상황과 내 상황이 달랐고 같은 여성이라는 입장이지만 이입하기 어려웠다. 울프가 꿈꿨던 미래가 나의 현재라는 건 어색한 일이었다. 몇 부분은 멍하니 읽었고 오늘의 글에 써놓은 부분은 얼이 빠져서 읽었다. 나보다 한참은 전의 일들을 고민하며 편견과 싸워나갔을 그녀가 이리도 쿨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니.
난 이렇게 쿨한 세상 속에서 전혀 이 정도로 쿨하지 못한데.
그리고 그녀의 쿨함은 단지 성별을 뛰어넘어 내가 매여 있던 높고 낮음에 적용이 되는 듯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현실성으로 이루어진 세상이지 ---로 이루어진 세상만은 아니라는 사실"
이 글을 마치며, 화를 내지 않고 오로지 고요하게 나를 드러내지 않으며 모든 낱말이 나를 말하는 작품을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