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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Feb 08. 2023

[소설] 오답과 중복답안

나도 소설을 쓴다

화자의 마음을 서술하시오. 서술형 10점 짜리 문제였다. 답안 칸에는 줄이 세 개만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현아의 답은 답안 칸을 넘어가 그 뒷편까지 이어졌다.  


현아의 시험지를 들고 교무실에서 정현은 한숨을 쉬었다. 마음이 답답했다. 커다란 돌이 가슴을 퍽 치는 듯이. 맷돌에 꽁꽁 묶인 채로 바다에 한 없이 가라앉는 것처럼.  


“부장쌤. 현아 답안지 보셨어요?” 


책상 판넬 사이로 2학년 국어 교사, 현지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가 정현의 복잡한 얼굴을 보자마자 혀를 내두르며 말을 얹었다.  


“글이 참 좋아요. 그게 문제죠.” 


“그니까.” 


정현은 교무실 한 켠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전기 포트를 돌아보았다. 벌떡 일어나 뜨거운 물을 자신의 보온컵에 따랐다. 뜨거운 김이 얼굴로 확 올라왔다.  


뜨거운 물을 호록 입에 담아 굴렸다. 뜨끈하게 목구멍을 타고 무언가 내려가듯, 현아의 답안을 읽으면 마음이 뜨거웠다.  


“이게 틀린 답은 아니잖아, 김쌤. 그치?” 


시험지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정현이 현지를 불렀다. 현지는 바쁘게 컴퓨터를 두드리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정현이 한 박자 뒤에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현지의 눈이 건조하다가 정현과 마주치자, 순간 다시 생기가 돌았다. 그러나 그녀의 입술은 씁쓸하게 비틀려 있었다.  


답이라.  


“틀린 답은 아니죠. 부장쌤. 근데 정답도 아니잖아요.” 


“솔직히 이게 답이 아닐까, 김쌤?” 


“그게 어떻게 정답이에요. 쌤.” 


현지는 이해는 한다며 작게 웃고 다시 컴퓨터로 눈을 돌렸다. 그녀가 타자를 치던 손을 멈칫하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 참기 어렵다는 듯 몇 초 동안 말을 고르다가 똑똑히 말했다.  


“근데 현아.” 


정현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판넬 위로 두 사람의 눈이 만났다. 


현지가 단단한 눈빛으로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정현에게 쏘아 대는 눈은 오늘 하루 종일 수업 시간에 보았던 눈이 아니었다. 외운 교과서의 해설본만 설명하던 국어교사가 아닌 눈. 


“현아 진짜 어떡해요?” 


말하려고 하던 말이 뚝 끊겼다. 현지가 하려던 말을 입에 쏙 넣고 정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주 간절하게 보는 시선이 정현이 무언가 연륜 있는 묘수를 내놓으길 기대하는 듯 했다.  


정현은 그 눈을 정면으로 받다가 현지가 던진 돌을 마음으로 다시 받은 것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현아 진짜 어떡하지? 


현아가 쓴 답은 분명 정답지에 없는 답이었다. 현지와 정현이 몇 주 동안 열심히 머리를 싸매고 만든 중복 답안에도 없었다.  


그러나 현아의 답은 그 너머에 있었다.

정현과 현지는 똑똑히 보였다. 현아의 답은 분명히 이 세상에 있다.  


“현아 진짜 어쩌지.” 


정현은 먼저 들어가겠다며 현지에게 말을 하고 가방을 챙기며 차 안에서 중얼거렸다. 머리가 아팠다.  


그때 지고 있는 석양을 배경으로 멍하니 운동장에 앉아 있는 현아가 보였다. 짧은 단발머리에 단정한 교복. 무릎까지 오는 체크 무늬 교복치마.  


그녀가 얇은 여름 블라우스를 펄럭거리며 운동장 벤치에 앉아 있었다. 정현은 차 안에서 현아를 보며 숨을 멈췄다.  


현아가 울고 있었다.  


“선생님?” 


정현은 숨도 쉬지 못하고 바로 문을 벌컥 열었다. 달려가 현아를 불렀다. 현아는 놀라 뚝뚝 떨어지는 눈물도 닦지 않고 정현을 올려다봤다.  


헉헉거리는 숨을 진정시키지도 못하고 정현이 마음에 울컥하는 걸 그대로 뱉었다.  


“왜 울어. 왜 여기 있어. 집에 안 가?” 


현아는 울면서 웃었다. 그녀가 손등으로 벅벅 눈가를 닦으며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걸 들으며 정현은 몇 번이고 읽은 현아의 답안이 현아의 목소리로 들리는 듯 했다.  


저 어린 목소리가 말하는 것 같다. 내 답은 교과서에 적혀 있지 않다고. 


“집에 가기 싫어요.” 


“그래도 가야지.” 


정현은 멍한 상태로 답했다. 이럴 때 옆에 상담 교사인 계약직 교사, 성준이 있다면 모든 게 좀 더 간단했을 텐데. 속으로 후회했지만 정현은 현아의 젖은 눈동자를 그대로 마주쳤다.  


현아는 웃으며 또 울었다. 정현도 울고 싶었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정현은 말하고 말았다.  


눈 앞에 현아가 왜 답안지 칸을 넘어서 답을 썼는지. 그 의도가 뭔지. 현지는 그게 다 반항적인 거라고 했지만 정현의 생각은 달랐다.  


왜 다른 답은 다 쓰지 않았는지. 현아의 생기부에는 왜 꿈이 안 적혀 있는지. 하지만 왜 부모님 칸에는 항상 꿈이 정해져있는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정현의 생각은 하나였다. 그리고 그 말이 목구멍 속에서 나올 때 정현의 속에 뜨거운 게 터졌다.  


“네가 쓴 답 있잖아.” 


현아는 그 예쁜 눈을 껌벅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그녀가 알았다며 웃었다.  

“네. 그거요?” 

“어. 그거 답 인정됐어. 현지 쌤도 맞는 것 같다고 하더라.” 

아니다. 현지는 그런 적이 없다. 정현은 잠깐 현지의 이름을 빌려왔다. 후에 자신이 현지에게 들이밀테지만 일단 지금은 자신의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다. 쪽팔리니까. 

고작 고등학교 2학년이 쓴 글에 감동해서 내 인생을 다시 돌아보았다는 게, 쪽팔리니까. 

현아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깔깔 웃었다. 그걸 보며 정현은 복잡하게 그녀를 쳐다봤다. 현아가 다시 빙그레 웃으며 정현을 보았다.  

그녀는 맑은 미소와 함께 답안의 마지막 온점을 육성으로 찍었다. 

그리고 정현은 직감했다. 이게 현아가 쓴 답의 완성이라는 걸. 

“답은 사실 내 안에 있으니까.” 

현아는 단단하게 정현을 보았다. 둘 사이의 눈맞춤은 계속되었다. 누구 하나 피하지 않았다. 현아는 그 적막 속에서 소리치는 듯 했다.  

이글거리는 눈물에 젖은 눈이 악을 쓰며 침묵 속에서 소리쳤다.  

답은 내 거라고. 내 답이라고. 답은 사실 내 안에 있다고. 

그 마음에 압도되어 정현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만약에 정현이 어렸을 때 현아 같은 친구가 있다면 그녀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답할 수 없는 질문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현아야. 얼마나 다치려고 그래.

현아야. 답은 사실 세상에 정해져 있는 걸.

현아야. 

정현이 속으로 몇 십번이나 현아를 불렀다. 그러나 조용한 운동장에서는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현아와 정현이 조용히 서로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정현은 현아를 데리고 조용히 교무실로 올라갔다. 아직 퇴근하지 않은 현지가 놀라 정현을 뒤돌아봤다.  

“부장쌤. 아직 안 가셨어요?” 

“어어.” 

정현이 대충 답하고 바쁘게 책상 밑에 쌓인 교재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찾았다. 철 지난 교사용 학습지 중에 하나였다. 두꺼운 책을 책상 유리판에 올리고 다시 무언가를 뒤졌다. 

현아는 학생들이 다 간 학교에서, 조용해진 교무실을 신기하게 구경했다. 멀뚱히 서 있는 그녀를 보며 현지가 힐끗힐끗 보다가 종이컵 하나를 손에 쥐어주었다.  

뜨거운 코코아.  

현지가 의자를 손으로 가리키며 부드럽게 말했다.  

“현아. 앉아 있어.” 

“넵. 감사합니다. 쌤.” 

현아는 어색하게 앉아 치마를 정리했다. 정현은 아직도 바쁘게 무언가를 찾다가 고개를 불쑥 들었다. 

그녀가 먹먹한 얼굴로 얇은 책 하나와 교사용 학습지를 현아에게 내밀었다.  

“이번에는 정답 처리되었지만.” 

현아가 학습지를 뒤적이다가 정현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정현은 이를 악 물고 강조하여 말했다.  

“다음에는 꼭 교과서에 나온 대로 써야 해.” 

그 말에 귀를 쫑긋 귀울이던 현지가 입을 벌린 채로 판넬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정현이 뒤를 돌아 자리로 돌아올 때, 현지가 정현과 시선을 맞추고 놀란 채로 입을 벙긋거렸다.  

‘정답 처리요?’ 

정현이 한숨을 푹 쉬고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휘저었다. 

‘그렇게 되었어.’ 

현지가 현아를 빤히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아는 멍하니 학습지를 보다가 정현이 준 다른 책을 펼쳤다. 그건 학습지와는 다른 책이었다. 시집이었다.  

세상의 모든 답은 사실 네 안에 있다. 시인 이정빈. 

얇은 하드 커버지의 책을 손으로 쓸며 현아가 비실 웃었다. 그녀가 교무실의 문을 닫고 꾸벅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안녕히 계세요. 쌤들.” 

“어. 집에 안전히 가.” 

현지가 재빠르게 말을 받고 문이 닫히자 마자 정현에게 시선을 쏟아부었다. 무슨 말이냐, 해명해라 하는 눈빛이었지만 정현은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설명은 길어질 게 뻔했으나 지금 할 말은 하나였다.  

“우리가 답을 가르치는 이유가 뭐야, 김쌤.” 

현지는 답하지 않고 경청했다. 물론 정현도 답을 원하고 물은 질문이 아니었다. 그녀가 현아가 떠난 자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속삭이듯 말을 끝맺었다.  

“답을 만들 수 있도록. 그래서 가르치잖아.” 

근데 이미 답을 가진 아이에게 이제 뭘 더 가르치겠어.

그 답을 세상으로부터 지키는 법을 알려줄 뿐이지. 

“퇴근하자. 현지 쌤.” 

“현아는 정말 뭐가 되려고 우리한테 이런 고민을 주는지.” 

현지가 궁시렁거리며 가방을 챙겼다. 정현은 불을 끄며 피식 웃었다. 

“그러게. 현아는 뭐가 될까?” 

“일단 선생님은 안 될 것 같아요.” 

현지가 계단을 걸어 내려가며 정현을 뒤돌아봤다. 그녀를 보며 정현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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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사실 정답은 내 안에 있는데 라는 주제로 쓴 글이다. 수필을 쓰려다가 상상력을 좀 더 길게 뽑아서 소설을 썼다. 부끄럽지만 또 이런 메세지를 전하게 되어서 좋기도 하다. 현재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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