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 쓰레기봉투
질투는 나의 힘 이란 말이 있다. 감정을 태워 앞으로 가라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말에 반대다. 질투를 태워 만든 열정의 연기는 시커멓고 더럽다. 검고 뿌연 연기가 앞을 가리는 석탄기차처럼, 질투는 눈을 가린다.
발 밑에서 나는 하수구 썩은 냄새가 내 마음에서 난다. 악마의 재능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그는 마주치지도 않는데, 나 홀로 힘들다. 나도 안다. 그는 나를 알지도 않고, 세상은 재능이 정해져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터진 음식물 쓰레기 봉지처럼 내 질투가 보기도 싫게 터졌다. 쳐다보기 싫은 나의 닿을 수 없는 한계가 건더기 마냥 둥둥 떠다닌다. 냄새가 난다. 언젠가 나도 온전한 사과의 모습처럼 멋있던 내 재능을 사랑했던 때가 있던 것 같은 기억이 난다. 처음 발견하였을 때, 발개진 얼굴로 그 재능을 어서 보여주고 싶어 속으로 춤을 췄던 때가 있었을 텐데, 언제인가 점점 썩기 시작했다. 에펠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고작 철탑이라는 사실에 세상이 무너진다. 다만, 더 최악인 것은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주변에서 실망하지 않을까 라는 한심한 생각이 마음을 똑똑 두드리는 것이다. 시간은 벌써 새벽이고, 오전에 보았던 일명 악마적 재능의 소유자인 그 늙은 소설가의 글이 내 눈을 가린다. 감정에 몸을 던진다. 어디 한번 해보시던가 하는 마음이다. 물 밀 듯 쳐들어오는 열등감과 질투를 막을 생각이 없다. 천사의 재능이라는 말보다, 악마의 재능이라는 말이 이렇게 샘이 난다. 미워하는 사람조차 경외하게 만드는 그런 재능은 얼마로 살 수 있을까? 아니, 그는 그 재능이 얼마인지 알기는 할까? 가지지 못한 자의 서러움보다는 경외와 질투가 섞인 썩은 내가 진동하여 내 자신이 불쌍하지도 않다. 오히려, 코웃음을 치고 싶을 만큼 못되어 보인다. 감정의 바다에 몸을 던져 내 자신을 잠깐 맡겨본다. 마음이 천둥번개 치는 바다 위 배 선상 끝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다. 쿵쾅대는 심장소리에 귀기울이다 보니 질투가 사그라진다. 꺼져 들어가는 불씨를 잠으로 완전히 죽여버릴 생각이다. 이 질투를 조심히 떠서 나를 움직일 열정으로 만들 연료로 쓸 생각은 없다.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질투를 그 취기로 생각하며 지나쳐 갈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오를 수 없는 나무는 보지도 않는다. 어울리지 않는 옷이기 때문이다. 감정에서 자신감이란 열정은 카페인 같아서 개인적으로 자중한다. 바람잡이가 바람을 잡고, 짜고 치는 타짜들이 한번씩 밀어주면 열정은 인생은 한방이지 라는 생각으로 날 빛더미에 앉히고는 한다.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혼잣말을 해본다. 또 실망의 빛더미에 앉아 차가운 벽에 뜨거운 볼을 대고 눈을 감는다. 언제 열이 올라 실없게 웃었냐는 듯이 푹 꺼진 잿더미 마냥 덤덤하다. 질투는 사라졌다. 실망이 그 빈자리를 곰팡이의 포자처럼 포옥 공중에 퍼지며 자리 잡는다. 실망이라는 곰팡이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젯밤 질투처럼 파도 들어왔다 나가듯 깔끔한 놈이 아니다. 눈으로 보는 실패에서 비롯된 실망은 포실포실한 생김새를 하고 잡을 수도 없는 공중에 퍼져버린다. 떨어졌다. 오랜만에 용기를 내서 내어본 필름 공모전이었다. 짧지만 마음을 담았던 것이었다. 세상에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지만 내 눈에는 작은 그 철탑이 에펠 탑이었기에, 실망이 컸다.
술에 취하면 무슨 기분일까? 온 몸이 마비되고 생각이 경직되고 양 옆은 보지도 못하는 싸움소가 되는 걸까? 지금 내가 그렇다. 뇌를 독한 포도주에 담궈놓은 것 같다. 닿지 못하는 하늘을 향해 계속 손을 뻗는 건 의미가 없는 걸까? 누구도 답해줄 수 없는 질문들만 담배 연기 내뿜듯 뿜는다. 배 속을 풍선처럼 채우고 그 후 긴 숨을 내쉰다. 그 꼴이 담배피는 사람이 따로 없다. 다들 이렇게 상실감을 내뿜는 걸까. 동경심과 질투, 실망감과 상실감으로 배를 채운 나는 심하게 배부르다. 이런 감정은 사실 사치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실제로 배를 곪고, 육체가 고통받는데 나는 고작 이런 감정으로 힘들다 토로하는 게 어처구니가 없다. 값 비싼 감정, 그것이 사실 질투인 것이다. 무언가 가진 게 있어야 비교라도 하는 것이란 말이다. 푹 식은 재가 딱 내 꼴이다. 머리가 점점 식는 게 느껴진다. 시간은 어느새 저녁이고 텅 빈 마음처럼 하늘은 검정색으로 텅텅 비었다. 조금 가진 자는 열등감을 가지고 심하게 가진 자는 지루해지는 게 섭리인 것 일까. 나는 그 경쟁에서 진 패자처럼 슬슬 기어 도망을 가려 한다. 내 손을 쥐어 잡은 다섯 살 꼬맹이 같은 질투에게 다정히 말해준다. 나는 이만 자러 가야 한다고. 큰 눈망울이 이내 젖어 날 쳐다보며, 내 자존심을 건들고 패배감을 안겨주고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쿵쿵 떨어지며 날 힘들게 한다. 그러나, 그 작은 손가락들이 더 내 손에 파고들 때 나는 말한다. 나도 너 사랑한다고. 너가 나 사랑해서 이렇게 난리치는 거 나도 안다고. 고맙고 나도 사랑한다고.
질투는 이내 떠난다. 안대를 풀어주고 떠난다. 내 양 옆에 기차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지만, 냄새가 고약하다. 누군가의 상처가 곪아 썩는 냄새가 고약하다. 질투를 담담히 쳐다볼 수 있다면 그대는 이제 기차에서 내려도 된다. 나는 이미 내린 지 오래다.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가는 기차를 지나 차도를 저벅저벅 걷는다. 질투를 태워 앞으로 나가는 기차들 뒤에서 나는 아직도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다섯 살 질투에게 시선을 맞춘다. 무릎을 꿇고 눈을 맞추면, 그 속에는 내가 있다. 그대도 있지 않을까? 몇 살일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질투는 다섯 살이다. 딱 그만큼 날 앞을 못 보게 만드는 감정이지만, 그만큼 더 진실되고 열망으로 똘똘 뭉친 나의 감정이다. 질투만큼 진실된 감정은 없다. 남을 미워하는 만큼 나를 사랑해주는 나의 감정인 질투에게 그만 작별인사를 해준다. 다시 오지 말고 잘가 라고 하는 나는 어느새 한 뼘 더 자라 있다.
그대는 기차에서 내렸는가? 아니면, 여전히 질투는 당신의 힘인가? 나는 아니다. 질투는 달래주어야 할 나의 가장 솔직한 인격이다. 너무나 어린 나를 마주하는 순간이, 질투하는 순간이다. 이 다섯 살 친구가 나의 방향키를 잡는다면 결과는 너무나 처참할 것이다. 오히려 나는 질투할 때 날 다시 돌아본다. 더 나를 사랑해 준다. 이마부터 발끝까지 입을 맞추고 눈을 맞추고 웃어준다. 사랑스러운 나를 더 사랑한다면, 질투는 썩은 내도 아닌 칭얼거리는 꼬맹이가 되어 있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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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차마 다 못 읽었는데 아주 신나서 날라다닌 폼이다. 그래, 저때 한참 글 쓰고 싶어서 미치던 때다. 너무 부끄럽다..동시에..정말 진심이었구나 싶어서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