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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작가 Jul 23. 2024

너 진짜 작가 하려고 그래?

작가? 놀고 있네

0. “너, 진짜 작가하려고 그래?” 이번 달에만 이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이 질문 뒤에 숨겨진 시선은 타인이 아닌, 내가. 내가 스스로 만든 감옥이다.

1. 너 정신이 있는 애니 없는 애니? 글로만 먹고사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세상에 인세로만 사는 작가 비율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 소영아, 너 맞춤법도 모르잖아. 제발 눈 좀 떠. 두 눈 크게 뜨고 현실을 봐. 이런 소리를 스스로에게 하는 거다.

2. 집에 돌아온 나는 어김없이 <판옵티콘>을 떠올린다.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감옥 설계 방식이다.

3. 중앙에 감시탑이 있고, 그 주위를 원형 건물이 둘러싼다. 이 원형 건물에 죄수들은 한 명씩 격리되어 있다. 감독관은 감시탑 위에서 모든 죄수들을 내려다보며 관찰한다. 하지만 죄수는 감독관을 볼 수 없는 기이한 구조다.

4. 이에 죄수는 항시 감시받고 있다는 ‘감각’을 가지게 된다. 자연스레 감시를 <내면화>하게 되는 것이다. 감독관이 지켜보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도 감시의 시선을 느끼고 규율을 지킨다. 덕분에 감옥은 적은 인원의 감독관으로도 운영된다.

5. 나는 때때로 스스로를 죄수 취급한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나 자신이 죄수이자 감독관이기도 하다는 것. 대한민국이 만든 감옥이라 쓰지만, 실제로는 내가 만든 감옥이다.

6. 너,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 결혼을 못 했어? 당연히 애도 없겠네? 어? 직업도 없어? 작가? 놀고 있네, 작가 같은 소리가 진심이야? 제 손으로 감옥을 짓고 기꺼이 그 안에 들어가 감시에 시달린다. 아무도 내게 강요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감시하지 않지만 제 스스로 그러고 앉아있는 것이다.

7. <나의 해방 일지>의 작가는 답한다. “해방이 하고 싶다”고. “’넌 부족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눈빛. 별 볼일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은, 하찮은 인간이 된 것 같은 느낌. 우리를 지치고 병들게 했던 건, 다 그런 눈빛들이었다”라고.

8. 감옥을 만든 것도, 규율을 잘 이행하는지 노려보는 눈빛을 기꺼이 허락한 것도 ‘나’다. 이 감옥에서 걸어나가기를 선택하는 것도, 해방하겠다! 외치는 것도 결국. 나여야 할 것이다.

9. 이 생에 작가 말고는 딱히 되고 싶은 것도 없으니까. 터벅터벅. 제 발로 걸어나가, 스스로 읽고 쓰기로 다짐한 분량만큼. 매일매일 써내리는 것도 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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